문재인 후보의 '정치적인' 사과

다시 드러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말만 차별에 반대한다고 사과 아냐

등록 2017.04.28 17:07수정 2017.04.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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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회관 나서는 문재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통합정부추진위 주최로 열린 '통합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회 축사를 마친후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성소수자 인권단체 및 시민사회 단체의 거센 저항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반응이 빨랐다. 27일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JTBC 대선 토론에서의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문 후보는 국회에서의 토론회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분들에게 아픔을 드린 것 같아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동성애는 허용 여부나 찬반의 문제가 아니며 각자의 지향이며 사생활의 문제라고 언급해 문제로 지적된 것보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성소수자들과 그 가족들의 깊은 슬픔을 알고 있으며, 자신은 세상 그 어떤 차별에도 반대하기에 이념의 산처럼 차별의 산 또한 넘어서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성애 허용하면 '성추행' 발생? 그것도 혐오다

그렇다면 문재인 후보의 사과는 충분한 것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 사과에서 문 후보가 '군대 내 동성애'를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자. 그는 '동성애 반대'라는 자신의 말이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며 거기에 반대하는 의미였다는 해명을 했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의 의견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 이유가 병영 내에서의 동성애를 허용할 경우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데, 아직 이를 해결할 마땅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작용의 예시로 동성애 강요나 상급자들에 의한 스토킹, 이로 인한 성희롱·성추행의 발생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실상 내용만 늘었을 뿐 기존의 것과 전혀 변함이 없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문 후보의 말과는 달리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언급한 성희롱과 성추행은 성범죄로서 이미 처벌 조항이 군형법 내에 마련이 되어있다. 우려하는 폭력이 발생한다면 해당 법률에 근거해 적법한 판결을 내리면 될 뿐이다. 그런데 부러 허용하지 않는다는 선언까지 할 이유가 뭔가.

또한 그가 말한 부작용은 딱히 '동성애'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성을 향한 성적 욕망 역시도 그 사이에 불균등한 권력 관계가 개입하면 성애가 아니라 폭력이 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지금도 군대 내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여군 대상 성범죄가 그 증거 중 하나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군대 내 이성애도 금지해야 하나? 왜 유독 동성간의 성애는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일탈적 행위와 동일시 시키고 금기의 대상으로 삼는가? 이것이 사회에 존재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같은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차별에 반대한다면서 '제도적 배제'는 방치

또한 '동성혼'과 차별금지법에 대한 부분도 앞뒤가 안 맞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동성간 결혼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이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으며, 사회적 합의도 충분히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반대 입장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문 후보는 바로 직후에 '그러나 동성애로 인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언급을 한다. 또한 비슷하게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그는 강력한 차별 시정을 위해선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포괄적 차별 금지 조항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별도의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역시도 법안이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기에 공론을 모으기 전에는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한다.

묻고싶다. 누군가가 단지 자신의 배우자가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부부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이 차별이 아닌가? 그리고 누군가가 뻔히 차별을 겪는 것을 알면서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그것을 방치하는 일이 아닌가?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 이런저런 핑계나 대며,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건 인권에 대한 깊은 지식이 아니라 최소한의 논리적 사고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모순이 아닌가. 특히나 언급한 문제들은 특정 집단이 부당하게 제도 밖으로 밀려나 있거나 아예 법률 자체가 부재해서 생기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의 오용과 공백을 감지하고 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대통령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아닌가.

왜 소수자에 대한 '대통령 후보의 의무'를 유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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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토론 참석한 문재인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열린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2017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계속해서 '합의 부재'나 '공론 부족'을 언급하며 자신의 의무를 지워버린다. 하다 못해 그런 것들을 형성하는 데 차기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말조차도 없다. 그저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일이라며 얼버무릴 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그것은 정확히 문 후보가 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일이다. 그 자리에 부여된 임무가 무엇인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기본권이 보장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소수자들도 이 국민에 포함된다. 하지만 문 후보는 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이런 일들이 시기상조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사과가 무엇을 남겼는지 살펴보자.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았고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편견 가득한 입장을 재확인 시켜주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그는 대통령 후보로서 사실상 직무유기 선언까지 해버렸다. 이건 그냥 나쁜 사과가 아니라 최악이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번드르르한 말과 듣기 좋은 선언 몇 번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그만한 권력과 의무가 있고 정말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 또한 있다면 있다면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정책 비전 정도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국민을 설득하는 것 역시도 대통령의 일이다.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가 심하다고 해도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직접 나서서 여론을 형성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줄도 알아야 한다.

흥미롭게도 문재인 후보는 사과 초반에 정치인으로서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하니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정치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면 냉철한 현실 판단과 전략의 구성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논쟁적인 사안에선 발을 쏙 빼고 헌법적인 가치를 내동댕이치며, 단지 스스로의 지위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다시 생각을 고쳐먹길 바란다. 대통령직은 전혀 그런 자리가 아니니까.
#성소수자 #문재인 #차별 #대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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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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