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 채용 맡겼더니... 대기업, 6년간 25만 명 줄었다

[분석] 2010년~2016년 고용노동부 통계, 300인 이상 대기업 채용 24% 감소

등록 2017.04.29 21:44수정 2017.04.2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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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곡선. 가로축이 세율, 세로축이 세수다. 오른 쪽으로 갈수록 세율은 높아진다. 세율이 100%면 세수는 0가 된다는 것이 래퍼곡선의 이론이다. ⓒ 프레이져인스티튜


'래퍼곡선'은 음식점에 있는 냅킨에 처음 그려졌다. 래퍼 교수는 지난 1974년 미국 워싱턴의 한 음식점에서 도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후보 쪽 관계자들과 만났다. 세수와 세율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냅킨을 집어 역 'U'자형 곡선을 그렸다.

세율이 100%면 세수는 '0'. 가령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100만원을 모두 세금으로 내면 일을 안 한다는 것이다. 세금 높이면 투자와 근로 의욕 저하로 세수도 줄어든다는 게 래퍼 곡선의 '논리'였다. 냅킨 위 곡선은 "세금 깎아주면, 일자리 늘고, 경기 살아난다"는 강력한 우파 논리로 발전했고, 도널드 레이건 정부의 세금 인하 정책으로 이어졌다.

"새누리당 정권 10년 동안 민간에게 모든 걸 맡기고 전경련 해달라는 대로 세금 깎아줬는데 고용이 됐는가 성장이 됐는가?" (28일 밤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

"기업 투자를 많이 하고, 일자리를 만들게 하고, 일자리가 많아지면, 서민복지 자연스럽게 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래퍼곡선 따라 세금 깎아준 우리나라, 대기업 채용 '후퇴'

그동안 우리나라 정부도 래퍼곡선의 논리를 따랐다. 역대 정부는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깎아줬다. 국회 예산정책처 재정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법인세 최고세율은 27%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에는 25%로 내려갔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22%까지 내려갔다. 박근혜 정부는 최고세율 22%를 유지했다. 비과세 감면을 빼면 법인세 실효세율은 10% 중반 수준이다.


2016년 기준 명목법인세율이 30%대 수준인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멕시코보다 낮고, 최근 기업 규제 완화로 경기가 살아나는 일본(23.4%)보다 낮다. 이 정도면, 기업들에게 나쁜 환경은 아니다.

그런데 좀처럼 효과가 없다. 세금을 깎아줬지만 대기업들은 채용을 줄였다. 대기업이 돈 벌면, 중소기업도 그 효과를 누린다는 낙수효과는 사실상 미미했다. 대선후보들의 경제 부문 토론에서 유권자들이 살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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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6년 300인 이상 사업장(초록색 선) 채용 변화 추이 ⓒ 고용노동부


지난 2010년 105만 명이었던 300인 이상 사업장의 채용은 지난해 80만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통계(고용부문 년고용통계)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지난 2010년 채용 인원은 모두 105만2208명이다.

채용 인원은 2011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2011년에는 111만1539명이 채용됐고, 2012년 106만2182명으로 줄었다. 2013년에는 87만9986명으로 감소했고, 2014년 87만2974명, 2015년에는 79만1799명까지 낮아졌다.

2016년 80만3011명으로 전년보다는 다소 높아졌지만, 여전히 80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0년에 비하면 채용 인원이 25만명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이중 절반(36만2136명) 가량은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임시직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기존 고용 계약이 만료된 뒤 다시 재계약하는 사람도 포함돼 있고, 중복된 수치가 있을 수 있다"면서 "신규 채용과 중복 채용은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데, 중복 채용을 빼면 신규 채용 수는 더 줄어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 포스코 등 대기업은? 낙수 효과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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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주최 TV토론 참석한 대선후보들 중앙선관위 주최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합동토론회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스튜디오에서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30대 대기업으로 좁혀보자. CEO스코어 자료에 따르면, 30대 그룹 대기업 계열사 253개사 근로자 수는 지난해 93만124명이었다. 지난 2015년(95만27명)에 비해 1만9903명, 2.1% 줄었다.

삼성은 희망퇴직과 사업부 매각 등으로 1만3006명 줄였고, 현대중공업 그룹도 4912명, 포스코도 1456명 감소했다. 30대 그룹 중 신세계 그룹이 고용을 가장 많이 늘렸는데, 증가 규모는 1천명대(1199명) 수준에 불과했다. 

2015년에도 30대 그룹 272개 계열사에 101만3142명이 고용됐는데, 2014년(101만7661명)에 비하면 5000명(4959명) 가량 줄어든 것이다. 2014년에도 30대 그룹 계열사들의 고용은 전년 대비 1.3%p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기업들은 세금 등 정부 정책보다는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움직였다. 윤정혜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2013년 보고서에서 "경기침체기인 2011년 1월 이후 대규모 사업체 채용인원은 급감하고, 중소사업체는 둔화됐다"면서 "경기변동이 중소 사업체보다 대규모 사업체 채용 변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대기업이 돈 벌면 중소기업도 덕을 본다는 낙수 효과도 미미했다.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중소기업연구원)를 보면, 삼성전자의 매출이 1% 증가할 때, 2차 협력업체의 매출 증가 효과는 0.07%, 3차 협력업체는 0.005%에 불과했다.

현대자동차의 매출이 1% 증가하면, 1차 협력업체는 0.43% 올라가고, 2차 협력업체는 0.05%, 3차 협력업체는 0.004% 매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리터 물 한통 부으면, 3차 협력업체에는 물 한 방울 찔끔 떨어지는 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조관계 약화

중소기업연구원은 '낙수효과에 관한 통계분석이 주는 시사점' 보고서에서 "1차와 2차, 3차로 내려갈수록 파급효과의 크기는 줄어들고, 1차 협력업체 중심으로 대형화되고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조 관계는 약화되고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대기업이 돈 벌어 중소기업에도 파급돼 모두가 부유해지는 인과관계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연구원은 또 "고도 성장과정에서 대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할 것이지만,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대기업 위상 약화는 불가피하다"면서 "대기업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래퍼곡선은 두 극단이 있다. 세율이 100%면 세수가 '0', 세율이 0%여도 세수는 '0'이다. 대기업들은 세금을 더 깎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 아예 세율을 '0'으로 만들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을까? 최소한 지금 결과를 보면, 마냥 세율을 내리는 게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단순히 볼 때 래퍼곡선의 최적 효율점은 역 'U'자 곡선의 정점인 세율 50% 구간이다. 세금 수입도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래퍼곡선 #낙수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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