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

[그림책 읽는 아버지] 안녕달 <왜냐면…>

등록 2017.05.25 20:07수정 2017.05.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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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묻습니다. 궁금하기에 묻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보기에 아주 마땅하구나 싶은 이야기를 묻기도 하지만, 어른으로서는 도무지 생각해 보지 않던 이야기를 묻기도 해요. 때로는 어른이 새롭게 생각해 보도록 북돋울 만한 이야기를 묻기도 합니다.

안녕달 님 그림책 <왜냐면…>(책읽는곰 펴냄)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까닭'을 아이가 물으면서 이야기를 엽니다. 이렇게 아이가 묻기 앞서 '어린이집을 나서는 모습'에서 다른 이야기가 있기도 해요.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 어머니한테 '종이가방에 담긴 무엇'을 건네요.


눈치 빠른 어버이라면 어린이집 교사가 무엇을 주는지 쉬 알 만해요. 이다음에 아이가 '비가 오는 까닭'을 묻는 데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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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책읽는곰


엄마, 비는 왜 와요?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 (3∼5쪽)

새는 왜 우는데요?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놀려서야. (6∼9쪽)

비가 오는 까닭은 여러 가지로 들려줄 수 있어요. 물방울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빗방울이 되는 흐름을 수수하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바닷물이며 냇물이며 샘물이며 우물물이며 도랑물이며 …… 온누리 모든 물이 하늘을 날고 싶어서 바람을 타고 다니다가 구름이 되고, 구름으로 실컷 놀고 나서 다시 예전 보금자리인 바다이며 내이며 샘이며 우물이며 도랑이며 …… 신나게 뛰어들며 돌아가려고 비가 내린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이러면서 아이더러 '하늘 나는 기쁨'을 생각해 보도록 슬쩍 북돋울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날다가 바닷물로 풍덩 뛰어드는 재미'를 생각하도록 신나게 북돋울 수 있고요.


그림책 <왜냐면…>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한테 "새들이 울어서" 비가 온다고 말합니다. 새들이 왜 우느냐고 아이가 묻는 말에는 "새보고 더럽다고 놀려서" 운다고 말해요. 아이는 어머니 말에 자꾸자꾸 더 묻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이가 자꾸자꾸 물을 수 있도록 실마리를 남긴다고 할 만합니다. 처음부터 모두 다 알려주기보다는 아이가 새롭게 궁금해 하도록 북돋운다고 할 만해요. 어머니 혼자 꼬치꼬치 밝혀서 지식을 주기보다는 아이하고 천천히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시나브로 알도록 이끈다고 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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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하늘에서 새가 운다. ⓒ 책읽는곰


왜 물고기는 계속 씻어요?
안 씻으면 등이 가려워서 견딜 수 없어서 그래. (14∼17쪽)

어느 모로 본다면 "새보고 더럽다고 놀린"다든지 "물고기한테 효자손이 없다"는 대목은 좀 억지스러울 수 있어요. 새나 물고기를 놓고서 사람이 섣불리 '더럽다'고 말할 수 없기도 하겠지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는 이 같은 대목을 찬찬히 살펴야지 싶어요. 그러나 좀 억지스러워 보여도 재미난 이야기 꾸러미를 엮을 수 있겠지요.

아이는 어느 말이든 다 받아먹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가 아이한테 '씻기'를 말하는 까닭이나, 또 새랑 물고기랑 씻기를 어우러서 이야기하는 까닭은 다른 데에 있으리라 느껴요. 하늘에서 내리는 물하고, 아이가 그만 바지에 쉬를 싼 일을 살며시 빗대었다고 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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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어머니는 아이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야기꽃을 피운다. ⓒ 책읽는곰


왜 물고기는 효자손이 없어요?
물고기가 먹던 걸 자꾸 뱉어서 효자손이 더럽다고 도망갔거든. (22∼25쪽)

왜 물고기는 먹던 걸 자꾸 뱉는데요?
물고기 밥이 너무 매워서 그래. (26∼28쪽)

아이가 무엇을 할 적에 어른으로서 나무라거나 다그치기는 매우 쉽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무엇을 할 적에 아주 쉽게 '잘못'이라고 못을 박기도 쉬워요. 바지에 쉬를 싸든, 놀다가 옷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든, 유리잔이나 접시를 떨어뜨려 깨뜨리든, 심부름으로 맡긴 돈을 잃든, 책을 읽다가 그만 찢든, 양말에 구멍을 내든, 아이로서는 문득 어느 일을 겪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다그친다고 해서 아이가 제대로 배울 만한지 모르겠어요. 꾸지람이나 꾸중을 자꾸 듣는 아이는 어느새 꾸지람이나 꾸중에 길들면서 아무것도 못 배울 수 있어요. 잘잘못을 가리려는 마음을 내려놓고서, 아이하고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나누려는 마음이 되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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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효자손을 부러워하는 물고기 ⓒ 책읽는곰


그림책 <왜냐면…>은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을 다룹니다. 덧붙여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어버이도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는 모습을 다룹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생각을 살찌울 적에 무럭무럭 자라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도 어버이 나름대로 생각을 살찌울 적에 살림을 기쁨으로 지어요.

무언가 나무라거나 꾸짖을 만한 일이 있다고 해도 살그머니 숨을 돌려 보아요. 다그치려던 말을 내려놓고서, 아이가 찬찬히 생각을 기울이면서 새삼스레 배울 수 있도록 이야기를 지어 보아요. 왜냐하면, 다그치거나 나무랄 적에는 서로 힘들거든요. 왜냐하면, 이야기를 함께 나눌 적에는 부드러이 흐르는 말마디에 묻어나는 사랑이 피어나거든요.
덧붙이는 글 <왜냐면…>(안녕달 글·그림 / 책읽는곰 펴냄 / 2017.4.17. / 13000원)

왜냐면…

안녕달 지음,
책읽는곰, 2017


#왜냐면… #안녕달 #그림책 #어린이책 #아이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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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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