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전날까지 '세입자' 얘기는 없었다

[주장] 대선 정국에서 실종된 세입자 공약... '계속주거권'이 절실하다

등록 2017.05.08 20:46수정 2017.05.0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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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대선 과정에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건 주거 문제다. 쟁점이 되기는커녕 아예 자취를 감췄다. 주거문제만큼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게 또 있나? 물론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거가 삶의 기본"이라는 말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꿈이 "이밥에 기와집"이라거나 "등 따시고 배 부르는 삶"을 소망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집을 빼놓고 사람의 삶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줄잡아 2300만 명이다. 집이 없어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 결혼적령기에 있거나 적령기를 앞두고 있는 사람, 각종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 하우스푸어라 불리는 은행세입자, 거리생활자와 쪽방, 고시원, 지하방, 옥탑방 등에 거주하는 홈리스, 지인에게 얹혀사는 사람, 이혼을 앞 둔 사람 등을 합치면 족히 4000만 명은 될 것이다. 이들이 바로 집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다.

모두 여섯 번의 대선후보 합동 토론회가 있었고 후보 혼자 하는 토론회도 있었다. 방송연설도 방송광고도 많았다. 많은 매체를 통해 대선후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말도 있었고 자신이 당선 안 되면 무슨 일이 날 것처럼 경고하는 협박성 말도 있었다. 후보들은 많은 말을 했다. 하지만 주거 문제는 빠져 있다. 특히 인권으로서 주거권을 말하는 후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선에 주거 문제가 빠져 있다

평화로운 주거, 편안한 주거, 행복한 주거를 보장하려면 '계속거주권(계약자동연장권)' 보장이 필수다. 일정한 룰로 임대료 인상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들은 하나같이 계속거주권에 침묵한다. 공약 한 귀퉁이에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권을 넣어 놓고 역할과 임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 멋진 말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당당한 나라"가 더 정확한 말이다 싶다. 주체가 빠진 말은 힘이 없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 못지않게 "주거가 당당한 나라", 노동자가 당당한 나라 못지않게 "세입자가 당당한 나라", "무주택자가 당당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는 당당할 수가 없다. 한국의 무주택자도 당당할 수가 없다. "나는 노동자요!"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세입자요!", "나는 무주택자요!"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없다.

왜 그럴까. 모두가 답을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아무리 용감해도 "나는 세입자다!" 하고 못 외친다. 이유는 우리 사회가 세입자를 '창피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핵심은 노동 현장과 주거 현장에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는 거다.


세입자들은 상담할 때도 "나는 집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며 시작한다. 분명 집에서 살고 있는데 집이 없다고 한다. 세입자가 사는 집은 집이 아닌가? 분명 집이지만 집으로 느끼지 못한다. 집을 소유한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온갖 차별과 모멸감을 느낀다. 자존감 훼손을 경험하고 '가난한 내 삶'을 한탄한다.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세입자들은 말한다. "집을 살 수만 있다면 당장 살 텐데, 그 놈의 돈 때문에..."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계속거주권이 보장되면 그가 어디에 살든 "사는 곳이 내 집"이 된다. 민간 임대주택에 살아도 당당해 질 수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모두 공공임대주택 공약을 내어 놓았다. 다른 선거에 못지않은 규모다. 심상정 후보는 75만호(임기까지), 문재인 후보는 65만호, 안철수 후보는 75만호, 홍준표 후보는 60만호, 유승민 후보는 15만호 이상 공급을 약속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서민들의 요구가 크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후보가 재원대책을 구체적으로 내어 놓지는 않아서 실행 여부는 지켜봐야한다. 일단 공약 자체는 환영한다.

2년 이사 제도는 반인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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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연합뉴스


공공임대주택 공약도 중요하고 더 많은 규모로 공약하고 실행해야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주거권보장 문제다. 2년마다 이사 제도는 '임시거주'를 법에 명문화한 것으로 주거권을 파괴하고 주거안전과 생활안정을 해치는 반인권적이고 반사회적인 제도다. 계약기간 동안만 적용되고 재계약에는 적용이 안 되는 '5% 상한규정'은 임대인이 폭리를 추구할 수 있게 한 규정이다. 2년제와 5% 상한 조항 모두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들어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기본권을 파괴하는 반인권 법률인 것이다. '임대차보호법'이름으로 세입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언제 줄지도 모르는 집을 준다는 말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2300만 세입자를 날마다 고통에 빠뜨리는 권리박탈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유럽과 여타 문명국 모든 나라의 세입자가 한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는데 왜 한국은 세입자의 계속 거주 여부를 2년마다 임대인이 결정하게 하는가? 무한 갑질을 법으로 보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집을 소유한 사람은 편안한 주거가 보장되고 집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불안에 떨어야 하는가?

2년마다 이사, 보증금과 임대료 폭등 문제는 내 눈 앞의 문제다. 2300만 세입자와 1300만 예비 세입자의 운명을 임대인의 손에 계속 맡겨 놓을 것인가. 이것이 정의인가? 인구 절반의 주거안정을 파괴하는 법률을 존치시키면서 주거권을 입에 올리는 건 그야말로 립 서비스이고 세입자와 무주택자 대중을 속이는 행위이다.

여섯 번의 대선 토론에서는 이 립 서비스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나머지 10명한테서 목소리가 나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세입자들은 봄이 오면 장미꽃 보러 갈 여유도 없고 장미꽃 구경하러 갈 마음도 안 생긴다. 임대인한테 전화가 올까 불안 불안한 삶을 산다. 세입자 대중들이 묻고 있다. "왜 그래야하지?" 대선후보들이여, 응답하라!

개혁한다면서 계속거주권을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국민의당, 민주당, 정의당은 현재 계속거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계속거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현재 2년제를 4년제로 바꾸겠다는 것이고 정의당은 6년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주거의 권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타고 태어난 것인데 누가 무슨 자격으로 4년 또는 6년으로 제한할 수 있단 말인가! 노동3권을 2년, 4년, 6년만 보장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마 노동3권을 4년만 보장한다고 말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집 소유 여부로 삶에 차이가 나면 안 된다. 자신이 소유한 집에 사는 사람은 평균 11년 사는데 세입자는 3.5년 밖에 못산다. 이건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에 반하는 것으로 차별을 제도화한 결과다. 척박한 땅에 용감한 목소리를 낸 주인공이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박 의원은 계속거주권을 발의한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힘찬 박수를 보낸다.

곧 대선이 끝난다. 정의당은 6년 거주권 주장을 멈추고 계속거주권을 주장하기 바란다. 안철수 후보, 문재인 후보 진영도 더 이상 4년제 주장하지 말고 계속거주권을 보장하는 법을 만들기 바란다. 계속거주권은 2300만 세입자, 1700만 예비 세입자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다. 무주택자 대중에게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동안 전월세 폭등으로 국민의 반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벼랑 끝에 걸렸다.

공정한 사회, 새로운 사회, 새 정치, 인권강국, 새로운 대한민국, 노동이 당당한 사회라는 말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전세 폭등, 월세 폭증 때문에 세입자 대중의 가처분 소득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소비 여력이 없어졌다. 국민 절반의 삶과 아이들,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과 아픈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쓰이고 경제 순환에 쓰여야 할 돈이 다주택자들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이게 행복한 대한민국의 길인가?

세입자 착취 구조 끊고 민생우선 정당으로 변신하라

세입자들이 착취되는 구조는 현행 주거법률과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다. 집을 매점매석하고 독점해서 세입자를 갈취하는 체계를 해소, 극복하지 않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은 없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주거권 보장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많은 국민들은 체념하거나 분노할 것이다. 체념한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는 역사가 보여 주었다. 절망적인 삶에 분노한 국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 행동 하겠다"면서 역사의 전면에 나설 것이다.

변화와 개혁, 혁신을 외치는 정당들에게 부탁한다. 부디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는 민생우선 정당으로 변신하시라. 삶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 할 주거권보장에 도움이 되는 정당이 되어 달라. 특히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는 정당은 스스로의 말을 행동과 실천으로 증명하기 바란다. '변화'에 변화 없고 '혁신'에 혁신 없는 정당 원치 않는다. 주거권 보장을 위하여 모두 함께 힘을 모을 때다.
덧붙이는 글 최창우 기자는 집걱정없는세상 대표입니다. 이 글은 필자 페이스북에도 싣습니다.
#주거권 #계속거주권 #계약자동연장 #전월세 상한제 #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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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창우입니다.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뜨겁습니다. 옳은 일이랄까 상식이랄까 나름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때론 슬퍼하고 때론 즐거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 여인의 남편이고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30년 동안 살아오면서 가난 때문에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 현실에 눈감지 않고 할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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