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광주에서 만난 팀 샤록은 누구인가?

미국의 5·18항쟁 개입 전략 담긴 체로키 파일 폭로한 미 탐사보도기자

등록 2017.05.07 20:30수정 2017.05.0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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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왼쪽)가 7일 오후 광주 광산구 송정역에서 팀셔록을 만나고 있다. 팀 셔록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이 주고 받은 비밀전문 '체로키 파일'을 공개한 미국인 언론인이다. ⓒ 연합뉴스


[기사 보강 : 7일 오후 10시 14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7일 오후 광주 광산구 송정역에서 '광주의 진실'을 폭로한 미국 탐사보도기자 팀 샤록(Tim shorrock.66)을 만났다. 샤록이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The Nation)>에 기고할  문재인 후보 인터뷰 기사를 위해서였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 정책,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역할, 19대 대통령 선거의 의미 등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특히 이날 문 후보를 인터뷰한 샤록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샤록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들과 전두환 신군부 사이에 오간 비밀 전문인 이른바 '체로키(Cherokee) 파일'을 공개해, 당시 미국의 5·18민주화운동 개입 전략을 밝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샤록이 1996년 입수해 폭로한 체로키 파일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특전사를 동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던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해줬고, 당시 5.27 도청진압 때도 신군부와 일정을 협의했다.

샤록은 지난 2015년 5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극우 인사들이 주장하는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600여 명 개입설'에 대해 "한마디로 (극구 인사들이) 조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샤록이 입수한 체로키 파일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미국이 북한의 군사 통신망도 감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이 광주에 잠입했다면 당연히 미국 감청망에 걸렸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샤록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기록, 1985, 아래 <넘어 넘어>)의 영문판인 <광주일지>(Kwangju Diary, 설갑수 옮김, 1999)에 체로키 파일의 일부를 싣기도 했다. 샤록은 '워싱턴의 시각'(The view from Washington)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워싱턴 지하창고'에 묻혀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샤록은 지난 2005년 절판된 이후 10년째 재출판 되지 못하고 있는 <광주일지>에 대해 "(광주항쟁 당시) 광주 소식은 억눌려 있었고, 지금도 영문판이 절판됨에 따라, 억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영문판을 재출간함과 동시에 한·미 양국 정부를 상대로 추가 정보를 공개하라는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록은 또 "박정희의 역사를 잘 아는 나로서는, 한국인이 (2012년 대선 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반대파(야당)가 분열되어 있었다"며 "사실, 그런 분열은 미국에서도 흔하다. 진보적인 변화에 대한 일종의 반동"이라고 분석했다.

광주광역시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해 지난 2015년 5월 21일 샤록을 초청, 광주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샤록은 현재 광주에 머물면서 체로키 파일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사건 일자와 시간대별 분류 및 정리, 문서 해제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앞서 그는 지난 1월 광주시에 체로키 파일 등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부의 5.18 관련 3530쪽 분량 59개의 기밀 문서를 기증했다.

샤록은 지난 4월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연구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이 12·12사태 일으켰고, 중앙정보부를 자기 휘하에 넣었고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모두 그의 아래에 있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희생자라고 언급하며 자기합리화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밀서류에서는 발표명령자를 찾을 수 없었지만, 발포명령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 군부 내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1980년 5·18 당시 미국 정부는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거나 군사력을 사용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전두환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 미국 정부가 어떤 경위로 한국 정부에 군사력을 사용해서 5·18을 진압하도록 허용한 것인가를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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