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누워있는 아버지, 꿈결처럼 대화해봤으면

가장 슬픈 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리는 글

등록 2017.05.08 14:22수정 2017.05.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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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째 누워있는 아버지, 꿈결처럼 대화해봤으면 ⓒ pixabay


어버이날이면 뭔가 부모님에게 특별한 것을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방 일이 힘드니 돈은 못 드리고 언제나 글을 쓴다. 올해 부모님에게 드리는 글을 쓰는 건 너무 힘들다.


아버지가 지난가을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 쓰러지셨다. 85세. 왼쪽 뇌세포가 30% 가까이 죽어서 말도 못 하고 오른쪽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고 사람도 갈수록 잘 못 알아본다. 기적이 일어나야지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아버지는 아프기 전까지는 내가 꾸리는 책방 풀무질에 날마다 나오셔서 도와주셨다. 종이 한 장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집에 가지고 갔다. 어머니는 그렇게 남편이 책방에서 가지고 온 종이와 빈 병, 깡통을 모아다가 돈을 벌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책방 살림에 보태 주셨다.

지금은 아버지가 책방에 오시지 않으니 버려진 종이를 모으지 않는다. 종이를 그냥 내다 버릴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아버지가 아파서 누운 지가 오는 5월 18일이면 8개월이 된다. 아니 바로 엊그제 일이 아니라 8년은 된 것 같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아버지는 우울증도 왔다. 잠깐씩 정신이 멀쩡할 때 자신이 마음대로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을 알고 슬퍼하신다. 말을 못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옆에서 하는 말들은 듣는데 그것에 말대답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아니 아버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말을 한다. 우리가 못 알아듣는 거지.

그래서 사람들은 아버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도록 힘을 주는 말들을 많이 하라고 한다. 아버지 병문안을 온 사람들은 '많이 좋아 지셨다. 나를 알아보신다. 밥도 잘 드신다. 얼굴색이 좋다. 곧 나으시겠다' 하면서 아버지가 듣겠거니 하고 좋은 말을 한다. 어머니만 그렇지 않다.


"니 아버지 죽어야 한다. 이렇게 살면 집안 다 망한다. 아버지가 죽어야 너희들이 산다. 여보, 왜 이래. 죽든가, 작대기라도 하나 끌고 다니든가 해야지 내가 못 살아. 여보, 당신 일어나면 내가 파지 일 안 시킬 테니까 어서 일어나요."

아버지는 어머니만은 똑바로 알아본다. 어머니가 그렇게 심한 말을 하고 아버지를 툭툭 쳐도 아버지는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어머니 얼굴을 쓰다듬는다. 어머니는 아버지 볼에 대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 다시 어머니는 아버지는 어서 죽어야 한다고 통곡을 한다.

나는 아버지 꿈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는 아버지가 책방에서 일도 하고 말도 한다. 지난달에 꾼 꿈에서 아버지는 새로 들어온 책들을 아무 곳에나 마구 꽂아 놨다. 내가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타박을 주었고 아버지는 뭐라고 변명을 했다. 그렇게 감정이 상해 있는데 아버지가 말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아버지가 말을 하네, 말을 하네" 하면서 기뻐했다. 내가 아버지 병문안을 가면 때로는 내 손을 꼭 잡고 무어라 말한다. 나는 그냥 상상한다.

"종복아, 며늘아기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 네 어미가 별나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네 어미가 뭐라 그러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새라. 형근이도 잘 키우고. 걔가 키도 크고 잘 생겨서 인물값을 할 거다. 책방도 잘하고. 너는 너무 헤프다. 책방 오는 사람들한테 잘해야지 책도 많이 사는 것도 알겠는데 이곳저곳 너무 후원하지 마라. 내가 통장 정리하다 보니까 만 원도 아니고 2만 원씩 달마다 나가는 곳도 있더구나.

책 한 권 팔아서 이것 빼고 저것 빼면 일 할밖에 안 남는데 자꾸 남들에게 돈 주니까 책방이 어렵지. 그래서 은행에 빌린 돈을 어서 갚아라. 이자나 밀리지 않고 갚는지 모르겠다만. 그리고 같이 일하는 네 형한테 잘해라. 네가 보기엔 항상 못마땅하겠지만 둘째가 원래 몸이 약하고 굼뜨지 않더냐. 지금까지 네가 잘 끌어왔으니 사이좋게 지내며 책방을 꾸려가야지. 그래야 내가 저 세상에 가도 마음이 편하다."

정말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했을까. 이렇게 말을 하고 싶다고 내가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어버이날 읽어드리면 아버지는 몇 구절을 알아들을까. 사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일주일 한 번도 채 안 간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려고 마음은 먹는데 책방 일이 바쁠 때도 있고 다른 일도 있어서 그렇다.

사실 아버지를 만나러 버스 세 번 갈아타고 세 시간 가까이 가는 동안 나는 책도 읽고 졸기도 하고 내가 다녔던 옛길을 다시 걸어보면서 추억에 빠지기도 해서 좋다. 하지만 막상 아버지를 만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그냥 먹을거리 드실 때 조금 도와준다거나 햇볕이 좋은 날 휠체어에 아버지를 태우고 바깥 나들이를 잠시 간다거나 아버지에게 혼잣말을 하듯이 말을 건다거나 할 뿐이다. 내가 아버지 손맥을 잡을 수 있지만 그것이 아버지를 낫게 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작대기라도 하나 짚고 걸으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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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째 누워있는 아버지, 꿈결처럼 대화해봤으면 ⓒ pixabay


부모님 슬하에 사형제가 있다. 내가 셋째. 큰형은 아버지에게 날마다 간다. 막내도 회사 가까이 아버지가 있어서 자주 들르고. 나랑 둘째 형만 2주일에 한 번쯤 간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아버지가 고이 돌아가시기를 바란다. 현대의학으로 더 이상 아버지 병세가 좋아지지 않으면 이렇게 사시는 것이 무슨 뜻이 있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어머니 말고는 차마 아버지 앞에서 그런 말을 못 한다.

지난주에 아내가 일하는 출판사 대표가 아버지 병에 좋다는 물약을 보내 주었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먹이는 것이 어떠냐고 큰형에게 물었더니 "셋째야, 네 마음을 알겠는데 그런 것 소용없다. 아버지 병에 좋다는 것은 지금껏 다 해봤어"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또 눈물이 울컥 나왔다. 그 말을 안 해도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큰형이 다시 확인을 해 주니 더 서러웠다. 거짓말이라도 "그러니. 그것 드시면 정말 낫는대니. 한 번 해 보자. 영국에서 구했다고 참 고맙기도 하지"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는 반식물인간이다. 이렇게 5년을 사실지 10년을 더 사실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참 힘들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 기운이 달리니 한 번 아프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내가 아는 기독교 수사님은 아버지가 낫도록 새벽마다 기도를 한다고 한다. 책방에 오면 좀 어떠시냐고 물어본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그냥 그래요" 하고 얼버무린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 낫는데 조금이라고 도움이 되라고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봉투에 담아서 손글씨로 '아버님이 어서 나았으면 좋겠어요. 풀벌레도 힘드시죠. 용기 잃지 말아요'라고 써서 내게 주기도 했다. 내 덧이름이 풀벌레다. 그 돈 5만 원은 돈 많이 버는 사람들 5백만 원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사실 아버지를 아는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은 병원비에 보태라고 많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하게 살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아버지 병문안을 올 때마다 돈을 주고 간다. 이렇게 아버지가 많이 아프니까 사람들 본 모습을 알게 된다. 참 씁쓸하다. 그래도 돈을 주건 안 주건 병문안을 오는 사람은 다행이다. 발길 한 번 안 주는 사람도 있다. 큰형 말을 빌리면 '인간말종'이다. 아무튼 아버지가 아프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정말 누군가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싶다. 그 사람이 돈이 있건 없건.

어버이날 쓸데없는 소리만 했다. 그냥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싶었다. 이번 글은 나 스스로 쓴 거다. 누가 나보고 쓰라고 하지 않고 나 스스로 답답해서 써 본 거다. 이 글이 아버지 병을 낫게 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안다. 특히 어머니께 힘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냥 되새김질하고 오히려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큰형이나 둘째 형, 아우에게도 볼 면목이 없다. 말로만 효자 노릇을 하는 내가 밉다. 오, 하늘에 계신 높은 분이시여, 우리 아버지 좀 낫게 해 주세요. 어머니 말마따나 작대기라도 하나 짚고 걷게 해주세요.

2017년 5월 6일 토요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못난 셋째 아들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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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째 누워있는 아버지, 꿈결처럼 대화해봤으면 ⓒ pixabay


#부모님 #어버이날 #책방 풀무질 #은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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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019년 6월 11일까지 26년 동안 꾸렸어요. 그 자리는 젊은 분들에게 물려 주었어요. 제주시 구좌읍 세화에 2019년 7월 25일 '제주풀무질' 이름으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새로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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