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가 얻은 24%, 우려할 필요는 없다

[게릴라칼럼] 대선과 한국 보수의 미래

등록 2017.05.10 11:01수정 2017.05.10 11:01
55
원고료로 응원
a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사실상 패배 승복 발표를 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 기적이 쉽게 일어날 리 없으며, 원할 때마다 일어난다면 그건 기적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오직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 꿈을 꾸던 정치인이 있었을 뿐이다. 이미 몇 달 동안 유권자 의견을 물어 온 여론조사가 있었고, 무엇보다 탄핵 정국 이후 일관되게 표출된 민심이 있었다.

그런데도 '막판 뒤집기'니, '골든크로스'니 하는 허황된 꿈을 꾸던 정치인은 대체 뭘까? 물론 선거 막판에 여론조사의 공표를 막아 '불확실성의 착각'을 유도하는 공직선거법 108조 1항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지도자를 뽑아 온 과정이 대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숙의와 선택의 절차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라를 어떤 꼴로 만들어도 거듭 재집권의 소망을 이뤄주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공-일베-여성혐오의 '막장주의' 실패

'빨갱이,' '종북,' '귀족노조,' '전교조'...


과거의 전례를 보면, '불온 도장 찍기' 하나로 꽤 만족스러운 효과를 발휘했다. 홍준표 후보는 여기에 '보험'으로 남성 우월주의('사나이 성깔', '센 척')와 '여성 혐오' (이들은 설거지하고 밥솥을 열기 위해 태어난다)도 모자라 '성소수자혐오'까지 끌어왔다.

반공주의-일베-근본주의 개신교를 아우르는 한국식 혐오 정치의 '마의 삼각지대'를 찾아낸 셈이다. 하지만 덕지덕지 갖다 붙인 이 가공할 무기는 아무 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물론, 홍 후보가 얻은 24%는 결코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수치다. '생각보다 많이 나온' 표 때문에 우려하고 있는 시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샤이 홍 지지자'의 존재는 선거 막판에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지난 3월에 리얼미터가 발표한 탄핵 찬반 여론조사를 보라. 박근혜 탄핵에 대해 '인용 찬성'을 표한 비율이 76.9%였고,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20.3%였다. 나머지는 2.8%는 '잘 모른다' 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탄핵에 대해 '기각'과 '모른다'고 답한 사람들을 더하면 23.1%로, 홍준표의 득표율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표금지 직전의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이 42.4%로 실제 득표율과 거의 일치하지만, 홍준표는 18.6%로, 실제 득표율과 꽤 큰 격차를 보인다.

그렇다고 이 '숨은 홍 지지자'들이 안철수나 유승민 후보로부터 옮겨왔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와 유승민은 각기 18.6%와 4.9%였으나, 실 득표율은 21.4%와 6.76%로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홍준표가 '막말'로 표를 끌어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는 당사자는 물론, 많은 언론이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험한 말을 내뱉어서 갑자기 인기몰이한 게 아니라, 끌어올 수 있는 23-4%를 끌어온 것뿐이라는 것이다. 영어속담으로 말하면, '성가대에게 포교하는 꼴'이다.

'홍찍홍'은 결국 '홍 찍어도 홍은 안 된다'는 의미였던 셈이다.

막말의 종말

대선에서 패한 홍준표는 '한국당을 재건한 데 만족한다'고 자위하지만, 정말 그가 당을 '재건'을 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는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제명된 사람을 복귀시키고 탈당자를 끌어오는 등 무리수를 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대선을 치르기 전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판이다. 당내 의원들이 대선에서 패한 홍준표에게 더 너그럽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5년 반 전,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한나라당 당대표 자리를 쫓겨나듯 떠난 사람이다.

물론, 홍준표가 성취한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 보수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명박이나 박근혜조차 '격조' 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진솔'해진 셈이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보수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문제는 보수 지지자들조차 얼굴을 들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던 '샤이 보수'가 홍준표의 추가 득표로 나타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홍준표나 한국당 입장에서는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여론조사와 득표 사이의 괴리, 즉 5.4%는 '차마 내 입으로' 홍준표를 지지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이다.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를 말하던 유권자들조차 홍준표의 선택이 수치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새누리당의 탈당파들이 신당 바른정당을 만들면서 내세운 표어가 "깨끗한 보수, 따뜻한 보수"였다. 결국 대다수 의원이 홍준표와 회동한 뒤 '구당'으로 복귀했으나, 결국 "더러운 보수, 냉혹한 보수"를 자처한 셈이다.

한국 시민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보내며

a

문재인 당선 예측에 세월호광장에서도 환호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종료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내 세월호광장에 모여 방송사 출구조사결과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는 결과가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 권우성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진 유일한 연령대는 60대 이상이었다. 20대, 30대, 40대, 50대 모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과 크게 비교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이 이념적으로 소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박정희 체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 즉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하고 경험할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었다'고 믿으면서도 이들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는 현실이 이 점을 대변한다.

공교롭게도, 대선 당일 <조선일보>에 한국 노인의 빈곤 문제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한국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1위며, 75세 이상의 고령층조차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 노인 계층은 이념적으로만 소외되어 있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선에서 홍준표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졌다.

다행스럽게도, 선거 결과는 우리 시민 대다수가 최소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의 초현실적일만큼 기막힌 일들이 최고통수권자와 측근에 의해 자행되어왔기 때문이다.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 국정을 무자격자에게 일임하다시피 한 몰상식, 통수권을 개인의 사익추구의 도구로 쓴 탐욕과 부패, 수백의 어린 목숨들이 꺼져가는 순간에 지도자가 어디서 뭘 했는지도 모를 어처구니없는 무책임과 무능력.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도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불의와 타락에 맞서 한국 사회를 지켜 낸 한국시민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한다.
#홍준표 #막말 #대선 #종북 #문재인
댓글5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