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진보집권플랜>, 놀라운 마지막 장

[오늘날의 책읽기]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진보집권플랜> 톺아보기

등록 2017.05.12 10:59수정 2017.05.1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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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길었던 혁명의 계절이었다. 작년 10월, 촛불과 함께 광화문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광장에서 보내야 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이 계절은 세 번이 바뀌었고, 광화문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나 싶더니만 이제는 푸른 잎을 피워내는 중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다.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했다. 보궐선거였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기간도 없이 첫날을 맞이한 문재인 정부는, 오랫동안 비어있던 행정부의 공백을 부지런히 메워가고 있다. 그리고 11일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우병우의 뒤를 이어 민정수석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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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저 : 조국, 오연호 ⓒ 오마이북

떠오른 책이 한 권 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기자와 조국 교수의 대담을 엮은 책 <진보집권플랜>이다. 2010년에 발간된 것이니, MB 정부가 의욕적으로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를 밀어붙이던 시기에 쓰인 책이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집권의 플랜'을 복기하며, 새로 부임한 조국 수석을 압박해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어요?'
'글쎄.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2002년은 너무나 놀라운 해였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광으로도 무척이나 놀라웠는데, 그 해에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잖아. 우리가 이긴 것 같았거든요. 제대로 된 승리, 새로운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랬다. 촛불 광장의 승리가 있기 전까지, 나에게 가장 큰 승리의 경험은 2002년이었다. 당시 취업을 했던 회사에는 '월드컵이 끝나면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는, 전국의 경기장을 쫓아다니며 말 그대로 '기적'을 경험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 최강의 팀과 당당하게 맞서는 태극전사들의 '승리'는 그동안의 월드컵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굴욕적인 패배의 기억을 한 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서도 진보의 집권을 위한 성찰의 가장 첫 번째 꼭지로 지목한 것이, 바로 이 '승리의 경험'이다.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경험은, 비록 그것이 아주 작더라도 개인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동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진보의 집권, 10년'은 분명 너무나 큰 승리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승리에 너무 쉽게 '취해'있었기 때문에, 쓰디쓴 패배의 시간을 오래도록 견뎌내야 했음도 분명하다.


지금 이 책 <진보집권플랜>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19대 대통령 선거의 승리가 전하는 달콤함에 취해있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냉정한 가슴'으로 무장해야 하는 시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진보정권의 성공을 위해 제안한 플랜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 번째는 사회/경제의 민주화이며, 두 번째는 교육의 민주화이고, 세 번째가 남북문제이며, 마지막 네 번째가 바로 검찰개혁이다. 이번에 임명된 조국 수석에게 가장 크게 주어진 과제도 바로 이 '검찰개혁'일 텐데 일단,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어가 보자.

첫 번째 플랜으로 얘기하는 항목은 사회/경제의 민주화다. 나는 이것을 '일터의 민주화'로 조금은 좁혀서 얘기하고 싶다. 이 장에서는 '특권'과 '불공정'을 넘어서는 사회를 포괄적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재벌을 개혁하고 대/중/소기업의 상생에 대해서는 이미 정책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있을 테니, 오늘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민은 모두 '평등'하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당신은 진심으로 '평등'을 인정하고 있는가? 고백하자면 너무도 부끄럽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을, 가방끈의 길이로, 출신 학교로, 직장의 이름으로, 직업의 종류로, 살고 있는 집으로, 갖고 있는 차로,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조건을 들이대며 '차별'의 구실을 찾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은 그 끝을 찾을 수가 없었고, 언제나 누군가에게 비교되며 갖게 되는 '열등감'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내가 '차별'을 인정하니 누군가가 나를 '차별 대우'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나 혼자만 겪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차별을 강요하는 세상을 거부하고, 누군가가 나를 아래에 두는 것도 누군가가 나의 위에 군림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의식적인 재무장 없이 '일터의 민주화'는 요원한 이야기이다.

일터에서의 '위계'를 인정하는 것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우리 위에(혹은, 아래에) 있기 때문은 아니다. 억지로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맞벌이를 하는 여직원이 육아를 위해 업무를 소홀히 한다며 여자를 뽑지 말자'는 얘기를 없앨 수 없고, 직업 선택의 '귀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가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고, 대통령은 첫날의 업무에서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제부터 우리도 할 일이 있다.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가 일하는 일터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것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이 첫 번째 플랜의 일부라고 믿는다.

두 번째 플랜으로 넘어가 보자. 책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바로 '교육'이고, 교육의 지향점은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투자'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교육 제도의 개혁에 대해서는 다양한 제도적인 변혁을 동반하여 고민하고 있을 테니,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주제가 바로 '아이들의 교육' 문제이다. 옆에서 들어보자니, 초등학생은 어른인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논문을 써서 경진대회에 나가야 하고, 고등학생은 물리학 박사과정들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아, 비혼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나의 아이가 아니니 끼어들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정말 '같이' 얘기하고 싶은 질문은 있었다.

'왜 그렇게 시키는 거야? 애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거니, 아니면, 좋은 학교에 보내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 거야?'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은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저런 고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좋은' 직업인지, 그 '좋은' 직업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좋은' 직업일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분명,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모호한 미래'가 우리에게 제일 크게 웅변하는 것은 '인간다움'이며 '생각하는 힘'이지 않은가? 아이들을 저렇게 고생시켜야 하는 확신이, 당신에겐 있는가?

나는 특수 목적고로 분류되는 학교 출신이다. 운이 좋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면서 지금껏 살아왔다. 최근 발표된 정책 중 하나를 보니, 특수 목적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한다. 그리되면 나는 모교가 사라져서 잠시 슬프긴 하겠지만,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미적분을 풀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으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세 번째 플랜은 '통일'이다. 저자는 '통일이 밥 먹여준다'며 희대의 사기극이었던 '통일 대박론'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가장 심각한 과제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불안일 것이다. 일단, 이번 정부의 외교 능력을 믿고, 여기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4년 전이었나? 독일에 출장을 갔을 때, 일흔이 가까운 베테랑 엔지니어와 밥을 먹으면서 나눴던 대화를 소개한다.

'한국은 아직 분단국인가?'
'네. 아직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자네는 통일이 되기를 원하나?'
'그럼요. 우리는 다시 통일된 국가로 살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흠. 쉬운 문제가 아니야. 나도 동서독의 통일을 찬성했지만, 그 후로 너무도 오랫동안 곤궁하게 살아야 했어. 제대로 고민해야 해. 무조건 '통일'이 답은 아니야.'


놀랐다. 성공적인 동서독의 통일을 만들어낸 세대가 왜 저렇게 말하는지, 혹시,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해 반감이 큰 것인지 의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무척이나 오랫동안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계기이기도 했다. 혹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심으로 '통일'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제대로 고민하고,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제부터 '북한'은 '종북'이나 '빨갱이'의 색깔론으로만 단순하게 치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매우 중요한 열쇠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오래 고민한 나의 선택은, 물론 '통일 대박'이다.

자, 이제 마지막 네 번째 플랜은 앞으로 책의 저자인 조국 수석이 '신명'을 다해서 개혁해야 할 과제인 '검찰개혁'의 차례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감시되지 않는 권력'인데, 검찰은 너무도 막강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감시되지 않는 '권력'의 집합이다. 이 부분은 임명 첫날, 조국 수석의 일문일답을 일부 옮겨 놓는다.

놀랍게도, 일문일답에서 언급한 사항은 이 책에서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며 언급한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척이나 오래된 계획이란 얘기이고, 이제는 제대로 실행할 일만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민으로서 할 일은 무엇이 있냐고? 검찰이 문을 열고 '밝은 세상'에 나오도록 계속 감시하고, 회유하고, 채찍을 휘둘러야 하겠지!

- 검찰 개혁에 대한 구상이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검찰은 아시다시피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고 영장 청구권까지 갖고 있다.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공정하게 사용돼 왔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문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점은 사실은 지난 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도 과거 정부에서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했더라면 그 게이트가 초기에, 미연에 예방됐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이다. 그 점을 충실히 보좌하겠다."


-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와 관련해서 검찰의 반발이 심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생각인가.
"공수처 신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얘기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소신이기도 하다. 제 입장이기 이전에 두 분의 발언이나 책을 보게 되면 왜 공수처가 필요한지 나와 있다. 또 공수처 신설은 국회의 권한이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협조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정부 때와 같이 청와대와 검찰이 충돌하는 방식이 아니라 검찰도 살고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방지하는 문제에 있어서 청와대와 국회가 합의하고 협력하기를 모두가 희망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잔치는 다시 시작이다'라는 제목으로 국민이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예언서인가?). 이미 국민은 지난 가을부터 계절을 세 번 바꾸며, 여름의 초입에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냈다. '촛불 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고, 문재인 정부는 그만의 '드림팀'을 꾸려가고 있다.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에, 너무도 벅차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과 동시에, 우리도 '나라다운 나라'의 민주시민으로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 이미 겪어보았겠지만,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리고 다시 실패하기엔, 이미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덧붙이는 글 책정보: <진보집권플랜:다시 불꽃을 피우기 위한 신명 프로젝트,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오연호/조국 저, 오마이북 (2010.10월)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2010


#오늘날의 책읽기 #조국수석 #검찰개혁 #문재인정부 #진보집권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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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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