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종이, 정말 오랜만에 팔아보네요"

[인터뷰] 24년째 문구점 운영하고 있는 이종운 사장님

등록 2017.05.17 10:30수정 2017.05.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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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 외부 전경. 불켜진 문구점 불빛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설혜영


몇 년 전 명절 연휴에 텔레비전에서 영화 <미나 문방구>를 봤던 기억이 있다. 공무원을 하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문방구를 운영하다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담긴 따뜻하고 재밌는 영화였다.


이제 문방구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자 추억의 장소가 됐다. 문방구가 남아있지만, 어릴 적 추억의 장소일 뿐 경제 주체로서의 실질적 존재감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기류는 통계에서도 볼 수 있다. 국세청, 통계청 등 조사에 따르면 2014년 1만3496곳이던 전국 문구점은 지난해 1만212곳으로 2년 만에 3284곳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요즘 잘 나가는 거리에서 추억을 상품화한 문방구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지만 학교 앞 문방구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뜨거운 생계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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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총등학교 정문 모습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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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 입구 앞 진열대 색종이, 문구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설혜영


오성문구는 이태원 보광초등학교 앞에 있다. 보광초등학교 앞에는 오성문구 말고도 한 개의 문구점이 더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곳이 더 있었는데 그곳에는 국숫집이 들어섰고 지금은 두 곳이 전부인 상태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고, 문구점이 없는 학교들도 있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색종이 정말 오랜만에 팔아 보네요."

이번 인터뷰는 우연히 문구점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6살 아이와 골목길을 걷다가 문구점에 들어간 것이 계기였다. 6살 아이라면 으레 그렇듯 가게만 보면 무조건 들어가야 직성이 풀린다. 이 때부터 아이가 어떤 것을 집을지, 엄마는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막상 호기심에 들어갔지만 좁은 문구점 통로를 몇 번을 돌아도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찾질 못했다. 민망한 나는 나중에 쓸 요량으로 색종이를 집었다가 문구점의 어려움을 단박에 표현하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한 개만 사려던 색종이를 몇 묶음 집어 들면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지 않을까? 호기심 많은 아이들과의 신경전부터 들어보았다.

- (물건을 훔치려는 아이들을) 잡으면 어떻게 하셨나요?
"옛날에는 손들고 벌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은 가게가 거의 오픈된 구조인데 예전에는 저쪽 구석이 있었다. 큰놈들은 '손들어. 저쪽에 가서' 그러고 잠깐 세워놨다고 보냈다."

- 부모들 반응은 어떤가요?
"무식한 사람들이 용감하다고, '그까짓 거 하나 가지고 우리 애한테 그러냐'고 하시기도 하고. 그러면 '참 용감하시다'고 '데리고 가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참 골치 아픈 일인데도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사장님이 아이들을 예뻐하는 게 느껴졌다.

- 문구점은 아내와 함께 계속 운영하신 건가요?
"나는 오랫동안 청계천8가 쪽에서 동업을 해서 문방구 운영은 거의 집사람이 맡았다. 200평 사무실 얻어서 문구류 도매 비슷하게 하면서 가게 물건을 싸게 사서 가져오고, 사무실에도 내보내고 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대부분 개인 주문으로 하니까. 평수는 넓지, 유지가 안 되고 사무실 유지비도 안 나오니까 닫았다.

그때는 생산자들한테 다이렉트로 들어오니까 괜찮았다. 소매상들이 와서 자기네가 가져간다고 하고 했으니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소매상 죽으니까 사무실에서 가져가는 양도 줄어들었고 (사업이) 빠르게 위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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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점 앞 모습, 스피너를 포함하여 요즘 잘나가는 물건은 여기 다 있다. ⓒ 설혜영


- 요즘 잘 나가는 건 뭐예요?
"특별한 게 없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쓰는 교재가 잘 나갔다. 비행기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만들었는데 요즘은 뭘 갖고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찾는 게 없으니까."

사장님 말씀을 듣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초등학교 추억이 떠올랐다. 고무동력기 세트가 담겨 있던 종이 박스, 아크릴 필통 샘플들을 전시해 놓았던 학교 앞 문방구 모습도.

- 제가 어릴 적에는 참고서, 실내화도 문구점에서 사고 했었는데 지금도 판매하시나요?
"참고서는 철수시켰다. 사질 않으니까. 대형마트 이런 데서 문구류, 장난감 같은 게 다 들어가기 때문에 더 위축되는 거다. 마진도 얼마 안 되는데 팔리지가 않는다. 우리가 파는 실내화는 마트 물건과는 질에서 차이가 나는데, 학부모들은 잘 모른다.

요즘은 학생 수도 많이 줄어들었고. 바로 옆 초등학교 사장님도 별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반을 축소해서 부동산으로 바꿔버렸다. 학교 앞 문구점이 다 없어지면 학부모들이 답답해질 거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수익이 안 나니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 같이 동업했던 분들도 많이 슈퍼, 편의점으로 바꿨다."

- 사장님은 그럴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직은 없다. 그것(바꾸는 것)도 무척 피곤하다. 나이도 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조금 늦게 문을 여는 편이다. 그래도 오전 7시 30분에서 8시쯤 집사람이 문을 열고, 내가 저녁 9시까지 한다. 시간상으로 보면 중노동이다. 쉬는 날도 없다. 내가 가게를 정리하자고 하는데 집사람은 '뭘 하려고 하느냐'고 걱정한다. 나이 먹어가지고 뭘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이제는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는 걸 찾고 싶다."

"퇴직금으로 시작한 문구점... 이런 상태서 수익 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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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이 장사가 호황일때 배달을 시켜먹었던 음식점 스티커. 빛바랜 스티커가 현실을 문구점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설혜영


- 수익은 어떻게 되시나요. 월 300만 원은 되시나요?
"순수익이? 그럼 먹고 살지. 집사람이 쭉 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 이런 상태에서 수익이 나겠나."

- 월세도 내시나요?
"우리 집이니까 하지. 월세라면 감당하기 힘들다. 보통 문방구는 부부가 같이한다. 워낙 영업시간이 길어서 혼자는 못 한다."

- 요새 아이들은 뭘 사가나?
"그냥 장난감, 먹는 거. 요즘은 스피너(돌리는 손 장난감)가 잘나간다. 그게 유행이다. 그때 그때마다 틀리다. 옛날엔 선물용도 많이 나갔는데 요즘 나가질 않는다. 유치원 생일 선물 할 때는 꽤 많이 가져갔다. 납품도 하고 했다."

요즘은 선물도 뚝 끊겼다고 하시는데 유치원, 어린이집 친구들 생일 선물을 챙겨주는 문화는 아직 있다. 다만 그 선물이 무척 다양해졌다는 게 차이다. 예전에는 문구세트면 선방했는데 요즘은 간식거리, 치약, 티셔츠, 스티커 등 선물 품목이 무척 다양해졌다.

문구류 선물하면 아이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시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변화된 상황을 설명해드리니 사장님의 눈빛이 달라진다. 요즘 발길이 뚝 끊겨 버린 문구점을 온종일 지키는 사장님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무얼 원하는지 얼마나 궁금하셨을까? 사장님의 눈빛에서 애타는 심정이 느껴졌다.

- 사장님은 문구점을 어떻게 시작하셨나?
"직장 다니다가 1993년인가 노동조합 문제로 관두게 됐다. 노조 설립한다고 해가지고 같이 하자고 전부 다 그러더라고. 그런데 회사에서 개별적으로 사람들이 회유에 해서 하나씩 빠져나갔다. 남아있으면 뭐하겠냐 싶어서 나와 버렸다. 껄끄러우니까, 내가 했던 행동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나온다고 하면서 나왔다.

갑자기 나오게 됐으니 막막하게 할 게 없었다. 고민하다가 집사람이 사촌언니가 문구점을 했는데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몇 번 가서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이게 우리 살림집이었는에 여기에서 문구점을 시작하게 된 거다. 그때 만만한 게 없었다. 다행히 문구점은 자본이 크게 많이 안 들어가길래 퇴직금을 밑천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때 큰애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그럴 때였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애들 이름은 모르겠는데 단골 엄마가 체육복 외상을 해달라고 해서 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는 일들이 몇 건 있었다. 쭉 믿고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렇게 할 줄 몰랐다. 그런 건 기억에 남더라고. 대부분 좋은 관계 유지하는 단골이 많았다. 아이들이 필요할 때마다 사가라고 지금도 돈 미리 맡겨놓는 분들도 계시고. 편의 봐주면 고맙다고 반찬도 갖다 주시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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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 내부 상품 진열 모습 ⓒ 설혜영


사장님과 대화는 끊길 틈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인터뷰 내내 손님이 한 분도 안 오셨다. 종종 동네 분들이 지나가시면서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가셨지만 1시간이 넘도록 물건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분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저녁때는 여기서 텔레비전을 보나 집에서 보나 똑같으니까 문 열고 있는 거지."

- 초등학교 학습준비물 제도가 원망스럽지 않으세요?
"장사가 안 되니까 원망이 되긴 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획일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창의성을 발휘한다면 대의적인 면에서 (정책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당장 먹는 데 지장이 있는 문제니까 원망스럽기 하지만. 사익이 개입돼서 문제가 생긴다면 서운할 수 있다.

장단점이 있을 거다. 외부의 업체가 맡아서 한다면 원하는 물품이 원하는 시간에 딱딱 들여올 수 있을 테고, 동네 문구점엔 선생님이 원하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물품이) 획일화되어 있다 보니 아이들 사고 방식도 획일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어른 돼서 찾아온 아이들 "이름 기억 안 나도 얼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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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 상품진열 모습 ⓒ 설혜영


- 예전에는 이 앞에 오락기도 있었던 것 같았는데.
"돈을 집어넣으면 상품이 나오는 오락기가 있었는데 사행성 문제 때문에 없애 버렸다. 게임기는 오락실에서만 하게 돼서 치워야 했다. 그것도 주요한 수입원이었는데 점차 없어져 버렸다. 추억 삼아 오는 손님들이 있는데 게임기가 왜 없어졌느냐고 물어본다. 뽑기 뜯는 것도 찾고, 가게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린다고 하고.

우리가 예전에 먹던 뭐가 있다고 올려놓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보니 올라가 있더라. 요즘 그거 보고 왔다는 사람들도 있고. 꼬마였던 애가 애를 낳아가지고 와서 엄마 어렸을 때 뭐 했다 뭐 했다 설명해줄 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그렇게 나이 먹었나 생각한다."

- 아이들 얼굴이 기억이 나나요?
"알겠더라. 이름은 기억이 안 나도 얼굴은 기억이 나더라. 기억해주면 '아저씨 어떻게 기억이 나냐'고 놀란다."

사장님 말씀을 듣는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문구점 모습, 어릴 적 추억들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로 문구점은 너무나도 같은 모습이라는 게 신기했다. 나도 아이 손 잡고 초등학교 운동장, 학교 앞 문구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곧 없어질 위기의 문구점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 마디.

- 문방구가 계속 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예전 기억을 갖고 찾아온 분들의 얘기가, 등굣길에 점포 진열대가 앞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몰려서 '뭐 주세요' 떠들고 사가던 게 제일 기억이 남는다고 한다."

이웃에서 공자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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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 이종운 사장님이 길건너 보광초등학교를 바라보고 계신다. ⓒ 설혜영


사장님 말씀을 듣는데 주옥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문구점 추억에서 시작된 얘기가 육아철학에서 사교육 문제, 정치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24년 간 아이들을 가까이 지켜본 사람만의 경륜이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의 무게만은 아니었다. 당장 나에게 손해를 미치는 변화가 있는데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너그러움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장님과의 만남은 지역에서 시민 운동에 몸 담으며 '개인'보다 '우리'를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다른 차원의 시민의식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장님과 비교한다면 나는 매우 목적의식적인, 변덕스러운 공동체주의를 추구해온 것 같기도 했다.

사장님처럼 사는 게 정답이라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생각과 삶의 태도에서 일관된 공동체 지향성을 갖고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우연한 대화의 시작에서 깊은 생각을 발견하고 나를 비춰봤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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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문구점 내에 진열된 아이들의 간식거리 ⓒ 설혜영


#보광초등학교 #인터뷰 #문방구 #오성문구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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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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