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흥건하던 할머니의 짜장라면, 그립습니다

스승이자 친구였던 할머니와의 추억

등록 2017.05.15 20:02수정 2017.05.15 20: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짜장라면 광고 캡쳐. ⓒ 농심 짜왕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짜장 라면을 먹을 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먹을 줄 몰랐다. 내가 짜장 라면을 올바른 방법으로 끓여 먹은 것은 가스레인지보다 키가 커졌을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보통 할머니가 끓여주셨는데, 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는 짜장 라면을 일반 라면처럼 끓여주셨다. 면을 삶은 후, 물을 버리지 않고 수프를 풀어주셨다. 10년이 넘게 나는 짜장 라면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설명서를 읽고, 정석으로 끓인 짜장 라면을 할머니랑 나눠 먹으며 함께 얼마나 웃었는지.


걷기 시작할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쁘셨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집에 오면 할머니가 계셨다. 늘 내 식사를 챙겨주셨다. 날 학원에 보내는 것도 할머니 몫이었고, 나랑 만화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할머니 몫이었다. 준비물 살 돈도, 초코우유 사 먹을 돈도 할머니 속바지에 있는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내가 아플 때면 나보다 더 아파하셨고, 내가 기쁠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그랬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서운한 건 없었다. 늘 낮에 챙겨주시지 못한 사랑을 퇴근 후에는 챙겨주시려고 노력해주셨으니 말이다.)

우리 할머니는 항상 온화했다. 내가 학교에서 혼나도, 학원에서 혼나도, 집에서 사고를 쳐서 부모님한테 혼나도 할머니는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대하셨다. 집에서 뛰어놀다가 흔들의자를 부셔 먹었을 때, 밤늦게까지 게임하다 혼날 때 등 할머니는 항상 내 편이었다. "그러면 안 돼"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잘못을 일깨워 주시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자"라는 말로 내 인성을 바른길로 이끌어주셨다. 당신의 자녀들 모두를 결혼시킬 때까지 키워서 그런 것일까. 연륜이 있어서였을까. 아무튼, 할머니는 항상 온화했다. 그렇기에 할머니 방은 항상 내 은신처이자 안식처였다. 나중에는 게임기를 할머니 방에 갖다 놓고, 할머니 방 TV에 연결해서 했으니 말이다.

그랬던 할머니가 나를 못 알아보기 시작하셨다. 치매 때문이다. 20살이 다 된 나에게 "준원이 어디 있냐"며 "갓난아기 지금 자고 있는데 불을 올려놓고 와서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셨다. 밤 10시, 새벽 2시 등 가리지 않고 그러셨다. 내 눈에서 얼마나 눈물이 흘렀던지. 할머니가 치매 속에서도 나를 기억해주는 게 한편으론 고마웠지만, 가족이 잠든 새벽에 몰래 나간 할머니가 집에 찾아오지 못할까 봐 무섭기도 했다. 결국 친척들과 회의 끝에,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셨다.

a

할머니는 내 스승이자 친구였다. ⓒ pixabay


할머니는 내 스승이자 친구였다


비록 할머니는 까막눈이셨지만, 나는 할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타인을 용서하는 방법과 타인의 자신감을 끌어 올리는 화법을 배웠다. 사람의 소중함도,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다는 사실도 할머니가 가르쳐줬다. 어른들에게 깍듯하게 대하면서도, 동시에 능글맞게 다가가는 법도 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노인정에서 몸으로 익혔다. 맛없는 음식도 꿋꿋하게 먹고 맛있다고 착각하는 능력(?) 역시도 할머니의 짜장 라면이 선사한 것일 테다. 일전에 만났던 한 여자친구는 내게 "너는 그냥 소금 덩이를 줘도 맛있다고 하겠다"라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요즘은 '황혼육아'라는 신종 키워드로 할머니‧할아버지의 손주 육아를 설명한다. 이 키워드는 한 세대를 뛰어넘는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가르치는 양육방법이 달라졌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들만의 노년을 즐기셔야 하기 때문에 황혼 육아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보다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많은 방면에서 케어를 받아야 한다. 은퇴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 역시도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내가 우리 할머니를 추억하는 것처럼, 할머니의 손주 육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님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손주를 할머니‧할아버지가 키워야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키우게 됐을 때, 덜컥 겁부터 먹거나 어려운 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까막눈이었던 우리 할머니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활자가 주는 지식보다 몇 배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삶 역시도, 나의 재롱으로 훨씬 활기찼을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 할머니는 3년 전 이맘때(4월 30일) 돌아가셨다. 천국에서도 내가 할머니의 손자임을, 당신의 손으로 날 키웠음을 뿌듯해하실 거라 믿는다.
#할머니 #손주 #황혼육아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