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가격 안 올린 미용실, 이유 들어보니

[인터뷰] 성아 미용실 운영하는 유숙희님

등록 2017.05.16 16:04수정 2017.05.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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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텔레비젼에 나왔던 사진 액자가 벽에 걸려 있다. ⓒ 설혜영


장흥에서 배운 미용기술, 아이 키우고 다시 개업한 미용실.


그 때 장흥읍에서는 한 곳밖에 없었던 신식 미용 전문학원에서 미용을 배우신 분이시다. 미용학원보다는 미용실에서 미용보조를 하며 미용을 익히는 게 더 익숙했던 시절 유숙희님은 A코스를 밟았다.

결혼 하고 아이를 낳고 여성이 내일을 갖기 쉽지 않은 시절 38살,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자마자 미용실을 개업하셨다. 처음에는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어 전문 미용사를 고용하여 함께 일을 하면서 미용실의 터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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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내부 모습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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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내부 모습 ⓒ 설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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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내부 모습 ⓒ 설혜영


- 예전에는 어떤 스타일을 원했나?
"다 똑같았다. 무조건 빠글빠글하면 최고였지. 그 때는 빠글빠글한 게 예쁜 시절이었다. 요즘은 구불구불 스타일로 바뀌었다."

복고는 머리스타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팅파마가 바로 예전의 미용기술 고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때 당시는 드라이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우리나라 파마는 처음 불 파마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빠르면 한 시간이면 파마가 완성되지만 그 때 당시에는 거의 반나절 또는 하루 종일이 걸리는 중노동이었다고 한다. 기분전환을 위해 파마를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의 큰 결혼식이나 행사를 앞두고 하는 드문 일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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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 손님에게 중화제를 바르고 계시는 모습. 신기하게도 손님도 전직 미용사였다. ⓒ 설혜영


말씀을 나누는데 파마가 되기를 기다리는 손님이 말씀을 보태신다. 알고 보니 전직 미용사. 유숙희 사장님보다 12년 선배이신 이 분은 서대문 미용학원에서 미용을 배우셨다고 하신다. 불 파마는 석탄불을 피워 달군 쇠틀로 파마를 하는 것이다. 불 파마를 많이 하면 머리가 푸석푸석해지고 나중에는 툭툭 끊어졌다. 또 말씀을 듣다보니 생전 처음 듣는 머리카락 장수 얘기도 나왔다.

머리 팔아 재봉틀 사던 시대

정말 유행도, 기술도 돌고 돈다. 예전에 유행하던 가발이 지금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다만 다른 건 그 때는 가발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때라 진짜 머리카락을 모아서 가발을 만들었다. 머리 장사가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양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머리 팔아요!"를 외쳤다. 어떤 집은 머리 팔아서 재봉틀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자매 몇 명 머리를 모았겠지만 그 정도로 머리카락이 제 법 돈이 됐다. 그래서 비녀 꽂으신 어르신들은 속 머리를 잘라서 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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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미용실 유숙희 사장님 ⓒ 설혜영


이민 간 학생 성인되어 일부러 인사하러 오기도 해

-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얼마 전에 동네에서 공공근로를 하시는 분이 오셨는데 머리를 하다가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아무리 등을 때리고 흔들어도 깨어나질 않으시는데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119를 불러놓고 기다리는데 딱 돌아가시게 생겼다. 다행히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파마를 풀고 기다리는데 정신이 돌아와서 깨어나셨다. 그 때 우리 부모님 돌아가실 때보다도 더 놀랬다. 깨어나서 말씀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지병이 있었던 것 같다. 너무 미안하다며 찰밥이며, 반찬을 해가지고 동네분에게 들려 보냈더라. "아줌마 나는 이런 거 필요 없고. 아줌마가 깨어나서 괜찮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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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미용실 그 때 그대로인 미용 요금표 ⓒ 설혜영


- 미용 가격을 안올린 이유는?
"서민미용실인데 어쩌겠어요. 내가 살림을 하고 살아서 그런지 올릴 수가 없더라고 30년 단골한테 올릴 받을 수가 없다. 이제는 오히려 손님들이 "가격 좀 올리세요" 한다. 중학교 때 온 사람이 지금까지도 오는 사람이 있다. 여기 살다가 부천으로 이사 갔는데도 지금까지 온다. 몇 명이 지금까지 다니는 분들이 있다. 편해요. 물어볼 필요도 없고. 단골이란 게 그래요. 학교 유학을 간 친구도 방학 때 오면 머리 자르러 바로 온다. 미국으로 이민으로 갔는데 서울에 왔다가 일부러 인사하러 왔더라.

그리고 중요한 건 임대료가 한 번도 안 올랐다는 거다. 첫 미용실 자리에서 딱 한번 이사를 했다. 지금까지 25년간 여기서 계속 하고 있는데 처음 임대료 그대로를 받고 있다. 그러니 내가 요금을 올릴 수가 있겠는가 생각을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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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안에 택배들이 줄지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설혜영


말씀은 편하게 하시지만 택배 보관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꼬치꼬치 여쭤보니 어떨 때는 4-5일 동안 택배를 안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사장님은 "찾아가겠지. 놓고 가세요!" 하신단다. 안 그러면 택배 하나 때문에 다시 와야 하니까. 사장님은 벌써 몇 년째 거동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들을 방문해서 미용 봉사도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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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주민과 얘기 나누는 모습 ⓒ 설혜영


"여태 살면서 누구하나 뭐 가져가고 그런 게 없어요. 잊어버리고 그런 게 없어요. 밖에 나둬도 절대 안 가져가니까. 가을에는 쌀, 보리쌀, 고추를 같이 사서 나눠 먹는다. 필요할 때 부동산처럼 열쇠도 맡아주고 맡기고 간다."

동네 목이 좋다. 골목이 시작되는 초입이라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인터뷰를 하시는데도 사장님은 미용실 문 앞에 걸쳐 있는 대나무 자리 사이로 골목길을 지나시는 분을 다 보고 계신다. 그리곤 꼭 한마디라도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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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잡곡, 야채를 저럼하게 공동구매하는 모습. ⓒ 설혜영


"어딜 왔다 갔다 하나? 거기 계란 떨어졌는가?"
"어 우리집 떨어졌어."
"그럼 내일 갖다 놓을게. 아니다 가져가라 우리는 내일 받으면 되니까."
"마침 사다 놓은 게 떨어졌어."
"아무래도 없을 것 같더라고."

우리 동네 택배 보관소, 복덕방, 수다방 성아 미용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사장님의 올해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68세. 70을 코앞에 둔 나이다. 내 눈에는 도저히 그 나이로는 안 보인다고 말씀드리니. 하시는 말씀.

"즐겁게 사니까 그런가 봐요. 내가 인덕이 많다. 진짜 많아요. 멀리 이사 가신 분들도 뭐라고 갖다 주고 싶다고 갖다 주시고. 지나가다가 사탕이라도 내주고 가시고, 이 동네가 정이 많다. 정이 많은 동네예요."
#인터뷰 #불파마 #동빙고동 #성아미용실 #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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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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