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이 꽂혀야 하는 자리

[로또교실27] 학교의 모든 스승은 카네이션을 받을 자격이 있다

등록 2017.05.15 21:35수정 2020.01.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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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스승의 날 아침은 조용했다. 언제나처럼 아침 방송 조회가 8시 45분에 진행되었고 학생회장은 주생활 목표를 발표했다. 평온하고 일상적인 월요일의 시작이었다. 포스트잇과 연필과 지우개가 올려진 내 책상은 금요일 퇴근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해마다 교권이 추락하네, 선생은 있고 스승은 없네 같은 소식을 어지럽도록 들어서 그런지 교무실 분위기는 무덤덤했다. 케이크 한 조각 나누어 먹지 못한다고 아쉬워하고, 치사하게 꽃도 못 받게 한다고 투덜거리는 몇 마디가 있긴 했어도 그러고 끝이었다. 오히려 반가운 건 조퇴 소식이었다. 

'오후에 수업이 끝난 선생님들께서는 네이스에 조퇴 상신하시고 스승님들 찾아뵈세요.'

교무부장님이 보낸 쪽지에 쾌재를 불렀다. 따지고 보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지 교사의 날이 아니지 않은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는 그 무엇, 그 누구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학교 선생 한답시고 내가 스승인 줄 알고 은근히 대접을 기대하는 마음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런데 잠시 뒤 마음의 안정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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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본을 떠서 가위로 잘라 만든 펠트 카네이션 ⓒ 이준수

  
3교시는 수학 시간, 첫 번째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상윤이가 허리 뒤에 뭘 감추고 다가왔다.

"이거 학생대표라서 드리는 거예요."

어디서 들었는지 학생대표 얘기를 먼저 꺼냈다. 컵스카우트에서 각 반 대표 애들을 불러서 펠트지로 카네이션을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보는 공공장소에서 학급대표가 꽃 주기. 이렇게 하면 꽃을 받아도 된다고 했다. 방금 전까지 교사가 꼭 스승은 아니지 않냐며 내면을 다잡고 있었는데 막상 보들보들한 카네이션을 받고 나니 의자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금방 목소리가 높아져 상윤이에게 물었다.

"이거 학교 선생님들 다 주는 거 맞지?"
"네, 선생님도 주고 급식실에도 가고, 행정실 선생님한테도 주고, 또 누구더라..."

상윤이가 긴가민가한 듯이 말을 늘어뜨리자 카네이션 제작에 참여했던 스카우트 대원들이 거들었다.

"그거 우리 학교에 있는 어른들 다 드렸어요. 엄청 많이 만들었어요."

실제로 그랬다. 교무실에 계시는 계약직 교무행정사 선생님, 행정실장님과 주무관님들, 급식 조리원분들, 학교 안전지킴이, 청소 용역업체 소속 미화 도우미분들... 학교에 계신 모든 분들이 펠트 카네이션을 받으셨다. 교육이 어디 분필 하고 칠판으로만 되는 것인가? 아이들이 딛고 다니는 복도, 하루에 수차례 드나드는 화장실, 학교 앞 횡단보도 모두가 배움터다. 그 배움터를 지키며 제 역할을 다 하는 분들은 모두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밥 먹으러 가면서 급식 조리사님께 인사를 건네니 다홍색 카네이션처럼 밝게 웃으셨다. 올해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꼭 필요한 자리에 잘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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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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