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실패를 원하는 그들이, 우리의 적입니다

[오늘날의 책읽기] 칠레의 실패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복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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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crazyli)등록 2017.05.25 08:12
여기 남미의 한 나라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이념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 나라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득권 자본가의 핍박에 견디지 못한 민중은, 드디어, 1938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부를 세웁니다. 하지만, 열정과 이상만으로는 그들의 나라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없었고, 끝없는 자본가와 '남미를 수중에 유지하기를 원했던' 미국 정부의 방해로 4년도 채 지나지 않아 기득권에게 자리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부를 세우기 위한 투쟁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1970년이 되어서야 그들에게 허락된 새로운 정부는 간신히 찾아옵니다. 그러나 공고한 기득권과 미국 정부의 집요한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군대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버립니다.

이렇게 30여 년의 투쟁을 통해 간신히 얻게 된 정부는, 단 3년의 짧고도 고된 집권을 무력의 위협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민을 위해 평생을 투쟁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무너져가는 대통령 궁 안에서 자살을 하고야 맙니다. 네, 아옌데 정권은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이 나라는 그후로 어떻게 되었냐구요? 군부를 장악한 피노체트라는 독재자에게 90년까지 학살과 강압을 통한 지배를 당해야 했구요, 아직도 그때의 상처는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피노체트의 지지세력이 2010년 총선에서 부활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죠. 피노체트파를 이끄는 것은 그의 딸인 루치아 피노체트입니다. 역사는 때로는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기도 하죠?

왜 갑자기 칠레냐구요? 제가 요즘 너무 무섭거든요. 기나긴 혁명의 시간을 끈기 있게 견뎌낸,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승리로 마무리된 촛불 혁명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도, 한 편으로는 문득문득, 힘들게 잡은 기회를 속절없이 놓쳐버리지는 않을까 자꾸만 두려워집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대선 직전에 '기적'을 보여준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한 마디가, 비운의 아옌데를 소환해 냈어요.

'마크롱은 적과 경쟁자를 구별할 줄 아는 후보이다.'

이 말은, 언젠가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언급되었던, 아옌데에 대한 그의 친구들의 평가와 정확하게 일치했거든요. '적과 경쟁자의 구별'. 요즘과 같이 다양한 갈등이 수시로 출동하는 사회에서는, 너무도 필요한 능력이잖아요.

그래서,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를 집어 들었지만, 이는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일생을 통한 그의 투쟁과 실패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고, 비극적인 그의 마지막 연설은 끝내 꺼억꺼억,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저들이 무력을 장악했으니, 우리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변혁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범죄행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민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저들의 횡포에 섣불리 대응해선 안 됩니다. 학살은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도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존엄하고, 더 나은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의 권리, 그것을 지켜내야 합니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돼선 안 됩니다. 저들에게 압도당해서도, 살육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중 발췌.

칠레의 혁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한 정치인의 의미 있는 투쟁은 인민의 지속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칠레 (혹은, 남미 전체)를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미국의 조직적인 방해와 개입은, 칠레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는 토양을 일구지 못하게 했습니다(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에 가깝습니다만, 민중의 힘으로 독립된 정부를 구축하고자 했던 그들의 투쟁을 혁명적 '민주주의'로 칭하겠습니다).

아옌데의 집권이 두려웠던 미국과 친미 성향의 칠레 기득권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볼까요?

첫째, 아옌데 정부에 참여한 정치세력을 분열/약화시킨다.
둘째, 칠레 군부와의 접촉을 확대한다.
셋째, 비 마르크스주의 정치세력과 정당을 지원한다.
넷째, 반 아옌데 성향 언론사를 지원/육성한다.
다섯째, 이들 언론사를 통해 아옌데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전복하려 할 뿐 아니라, 쿠바와 소련이 칠레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는 선동을 조장한다.

전략은 너무도 간단해요. 아옌데를 지지했던 민중을 나누고, 그들끼리 치열하게 싸우게 함으로써, 민주적인 정권에 공급되어야 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차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진보의 과정에서 가장 큰 방해꾼은, 언론과 자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이러한 '불치병'이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을 뽑은 것만으로 '완치'된 것일까요? 절대 그럴 리 없잖아요. 기울어진 상태도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요. 칠레의 국민도, 그들의 편인 아옌데를 뽑았습니다. 짧은 집권 기간 동안, 그들의 삶은 분명히 나아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집요한 방해는 결국, 그들을 분열시켰고 아옌데는 실패했습니다.

여기서, '실패한' 아옌데 정부가 바랐던 '칠레의 미래'를 살펴볼까요? 저는 이것이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희망'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옌데의 정부는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의 모든 측면에 통합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이 같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단순히 선거의 차원을 넘어 시민이 매일매일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아옌데는 이러한 '과정의 공유'를 통해, 칠레라는 국가의 작동 방식뿐 아니라 칠레인들의 행동방식까지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옌데는 이것이 혁명적 '신인류'를 창조해내는 칠레적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로부터의 혁명'은 자생적으로 같이 성장했어야 하는 '인민으로부터의 뒷받침'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막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명확히 이 답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광장에서의 오랜 투쟁을 통해 끌어내린 '박근혜 정부'이며, 우리를 계속 지배했다 믿고 있는 기회주의자로 가득한 '기득권'이며,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입니다. 결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로부터 간신히 회복한 '평화'를 쉽사리 빼앗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를 믿어요. 살바도르 아옌데를 몰아낸 칠레 정부가, 2017년인 지금까지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암흑'이 이 땅에서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명확해요. 바로, 칠레의 기득권이 썼던 방식, 그 반대로만 하면 됩니다. 글을 조금만 다시 뒤로 돌려서, 아옌데를 무너뜨렸던 전략의 반대 방향을 정리해 볼까요?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정치세력이 좀 더 통합되고 융합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합니다.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안정시킴으로써, 북의 도발이 더 이상 정권의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시민이 나서서 우리의 희망을 명확히 표현함으로써, 더 이상은 그들이 조작하는 위협에 우리의 미래가 놓여있지 않음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언론과 대안을 가진 비판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언론을 제대로 구분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성립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시민 스스로가 정부가 제대로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이런 지침을 제대로 따르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깨어있는 우리의 관심만이 '새로운 민주시민'으로서의 대한민국 '혁명적 신인류'의 탄생이며,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옌데 정부는 끝내 갖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으로부터의 든든한 뒷받침'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지들, 저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메시아가 될 생각도 없고요. 그저 인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칠레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내 바지 자락이나 발에 입맞춤하려는 사람들은 기적을 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적을 이룰 수 없어요. 기적은 인민들 손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아옌데의 이 발언에서, 저는 그의 실패를 직감했습니다. 지나친 기대는 결코 채워질 수 없으니까요. 2017년, 지금까지 우리에게 허락된 기적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것 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광장에서의 우리가 만들었던 연대의 벅찬 감동을 잊지 말아요.

지금이야말로, 광장에서 그 작고 여린 촛불을 모아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냈던 '우리'와, 우리의 바깥에서 '우리가 실패하기만을 바라는 적들'은 제대로 구분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냈던 2009년의 봄은 결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계속, 전진할 것을 믿습니다.

"문재인과 더불어 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해 주십시오." -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발췌
덧붙이는 글 책정보: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정인환 옮김,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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