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김관진식 안보' 7년, 이젠 달라질까

[게릴라칼럼]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 임명... 파탄난 남북관계, 변해야

등록 2017.05.21 20:22수정 2017.05.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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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김관진'을 검색하면 흥미진진한 기사와 비디오를 볼 수 있다. 최근 내게 큰 즐거움을 안겨 준 검색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료 중 일부는 '흥미롭다'기 보다는 '기괴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이 글에서 몇 가지를 다뤄보려고 한다. 

김관진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부장관(2010-14),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2014-17)을 지내면서 대북문제를 최일선에서 다뤄 온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두 보수정부의 대북정책 과정과 결과는 그의 '업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관진은 북한에 대해 시종 강력한 '응징'과 '타격'을 외쳐 왔다. 예상할 수 있듯. 그는 보수언론에게 매우 인기가 높아, 그의 행적을 다룬 보도는 거의 찬양 일색이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2014년 그를 한껏 추어올리는 기사를 썼다. "2010년 12월 김 실장의 취임 이후 북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억제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 신문이 '도발 억제'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모르지만, 이 호평이 나오기 불과 한해 전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이 미사일 한 발만 발사해도 몇 날 며칠을 그 이야기로 도배하는 신문치고는 꽤나 '쿨'한 평가라 할 만하다.

2013년 2월 12일, 당시 핵실험 장소였던 항북 길주군에서 진도 5.2의 지진파가 감지되었다. 이 기록을 토대로 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BGR)는 핵실험의 폭발력을 40킬로톤(kt)으로 추정했다. 이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탄 폭발력의 2.5배, 2009년 2차 핵실험(13kt)의 3배가 넘는 규모다.

핵실험 축소 혐의에, 비밀리에 북한 접촉까지 한 국방부


흥미로운 점은, 정작 국방부는 북핵실험의 규모를 6-7킬로톤으로, 독일 연구기관의 분석보다 대여섯 배나 낮춰 잡았다는 사실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한국 국방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폭발력을 축소해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더욱 기이한 일은, 핵실험 직전인 2012년에 국방부가 북한과 3차례 비밀접촉을 한 것이다. 당시는 천안함 피격사건의 여파로 공식적 남북관계가 전면중단된 상태였다. 이 모든 사건들이 김관진 국방부 장관 휘하에서 일어났다. 

대북 접촉 사건은 계속 감춰져 있다가 '최순실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 국가기밀까지 보고 받았으며, 그에게 전달된 문서 가운데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부가 북한과 세 차례나 물밑접촉을 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북과 접촉한 사실에 대해 국방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입장 밝히기를 거부했다.

국방부가 북한과 접촉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은 핵실험을 진행했다. 북측은 남한을 빼고 미국과 중국에게만 사전통보를 한 터였다. 이때 처음으로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을 실험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핵무기의 소량화, 경량화를 통해 미사일 탄두에 장착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김관진은 안보 책임자로서 '북핵 3관왕' 기록을 달성했다. 이제까지 진행된 총 5차례의 핵실험 가운데 무려 4번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일어났으며, 그 가운데 3번(3, 4, 5차)이 김관진이 안보수장으로 있을 때 터졌다.

특히 2016년 4차 핵실험 뒤, 북한은 "주체 조선의 첫 수소탄 실험 완전 성공"이라고 선언해 세계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그리고 불과 8개월 뒤 다시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런데도 보수언론이 '북의 도발을 막았다'며 엄지를 치켜든 것이다.

거센 말, 빈약한 안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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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북한과 종북세력이 김관진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려드린다"며 그의 행적을 방송했다. '북한이 무서워한다'는 김관진 재임시 북한은 세 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 TV조선


2013년 4월, 그러니까 북한 이 핵실험을 한 뒤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종편방송 <티브이조선>은 "북한이나 종북세력이 김관진 장관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고 주장하며 관련 영상을 내보냈다.

화면에는 김관진이 국방부 장관으로 전방 부대를 방문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가 경계를 서고 있는 장병들에게 다가서서 말한다. 

"여기서 무슨, 뭐, '쏠까요 말까요'가 나온다든지....자동으로 응징한다! 언제까지? 적이 굴복할 때까지."

나는 이 장면에서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넘버3> 송강호의 '헝그리 정신' 연설이 떠올라서였는데, 말투가 비슷해서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상황의 부조리함이 빼다 박은 듯 닮았기 때문이다.

그가 쇳소리를 내며 목소리를 높여 온 지난 7년 동안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의 위력은 날로 고도화되었다. 안보는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지, 말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화끈한 장면'을 연출해 쾌감을 주는 역할은 <람보>나 <포화 속으로> 같은 영화가 할 일이지, 국방부장관이 할 일이 아니다.

안보는 대개 입보다 머리를 쓰는 과정이다. 안보가 말로 지켜지는 거라면, 홍준표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더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

김정은 사진 노려보는 '레이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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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에이>는 "김정은을 매일 마주보는 사내" 김관진을 '톱10뉴스'의 하나로 꼽았다. ⓒ 채널A


2014년 6월 김관진은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었다. <중앙일보>는 "집무실에 김정은 사진…김관진 또 구원등판"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기사를 냈다.

김관진은 사무실에 북한 지도자의 사진을 붙여놓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적장의 생각을 읽기 위해선 항상 얼굴을 마주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관리가 사무실에 김정은 사진을 걸었다면 같은 보수언론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조선일보>는 그의 별명이 '레이저 김'이라고 보도했다. "그가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할 때 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동아일보의 <채널에이>도 거들었다. "김정은을 매일 마주보는 사내" 김관진을 '톱 10뉴스'의 하나로 꼽은 것이다. 이 방송은 아예 그가 '눈 레이저'로 사진을 떨어뜨리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우습게도 '북한이 두려워한다'는 김관진이 액자 속 사진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교체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몇 배로 커졌다. 한 나라의 안보가 기껏 목청 높이고 사진을 노려보는 방식으로 지켜져 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행태를 언론이 찬미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북핵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대화뿐이라는 것이다. '응징'을 입에 달고 산 그가 이끌던 국방부가 은밀히 북과 접촉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주먹다짐을 하려고 만난 건 아닐 터이니 말이다.

'적장의 생각을 알기 위해' 김정은 사진을 벽에 건다는 김관진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만나서 물어보는 게 빠르고 정확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에게 보고 거부하는 이상한 안보수장

이제까지 꽤 기괴한 일들을 살펴보았지만, 마지막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현안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5월 17일 <JTBC>는 믿기 어려운 보도를 했다. 오늘(21일) 인선이 발표된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이 당시 JTBC와 인터뷰에서 "현재의 국가안보실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거나 자료를 넘겨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폭로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특사를 파견했으며,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예정된 상태이다. 새 정부가 공백없이 안보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다른 나라와 어떤 외교적, 군사적 논의를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현안은 사드와 북핵 문제를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관진은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미국 대통령과 어떤 내용의 전화통화를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어떤 논의를 했는지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보고를 받지 못한 정부는 북핵과 사드 등에 관한 한미 협의 내용을 '다른 루트'를 통해 파악해야만 했다. 전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보 업무를 방해한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그와 보수언론이 외쳐 온 '안보'와 '애국'이 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드러낸다.

김관진은 지킬 가치가 있는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부로 끝났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일들을 벌였기 때문일까? 김관진은 지난 7년간 처절하게 실패한 대북정책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한 나라의 안보를 기껏 당파적 이해관계로 파악하는 김관진의 사고는, 그가 한 나라의 안보를 책임질 기본적 자격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일수록 상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김관진 #국가안보실 #북핵 #핵실험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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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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