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1100원에, '호갱님' 됐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여행12]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 쿠바

등록 2017.05.24 11:19수정 2017.05.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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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살사쇼 쿠바 전역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한 공연이 열린다. 가격은 대게 3cuc이상이다. 현지인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 조수희


1100원짜리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뒤 불현듯 원래 아이스크림 가격은 40원이었단 걸 깨달았다. 쿠바의 두 가지 화폐 시스템 때문이었다. 하나는 외국인 전용 CUC(쿡), 다른 하나는 내국인 전용 CUP(쎄우페). 1 CUC의 가치는 원화로 1100원쯤, 1CUP의 가치는 원화로 40원이다. 20배가 넘는 차이다. CUC 화폐는 CUP에 비해 화려한 신권이다. 쿠바 정부는 두 가지 화폐를 구분해 발행하지만, 내국인도 CUC를 쓰고 관광객도 CUP를 쓸 수 있다.

이따금 CUP와 CUC를 혼동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 잘 살펴보고 내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돈을 받은 쿠바 사람들이 "CUP를 내야지 너 CUC를 냈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날름 CUC를 받아 챙겼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제대로 돈 내라고 짜증을 냈지만.


아이스크림만이 아니었다. 여느 관광객이 그렇듯 쿠바 여행 초반에는 버스 타는 법을 몰라 택시를 이용했다. 숙소에서 쿠바의 상징 혁명광장이 있는 곳까지는 택시로 10 CUC였다. 나중에 보니 같은 거리를 현지인이 타는 버스로 가면 0.4CUP였다. 정부에서 대놓고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도 했다. 트리니다드라는 도시에 가면 스페인이 쿠바를 점령했을 당시의 유적이 남아있는 사탕수수밭이 있다. 현지인의 입장료는 1CUP, 외국인의 입장료는 1CUC이다.

쿠바인은 내게 돈을 받아내려 억지를 부렸다. 쿠바의 마지막 날, 아바나의 명소 말레꼰(우리말로 방파제)를 걷고 있었다. 한 쿠바 남성이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영어 하는 쿠바인이 많지 않았기에, 어쩌다 보니 대화를 했다. 그는 자신은 절대 관광객 상대로 사기 치는 사람이 아니며 단지 외국인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기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쿠바에서 마지막 밤이니 근처 클럽에 가서 놀자고 제안했다. 입장료도 없고, 술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공짜라는 말에 한번 가볼까 싶었다. 클럽에 도착하자 그는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맥주를 내게 내밀었다. 당연히 나는 그가 사는 줄 알고 맥주 한 캔을 비웠다. 웬걸, 그는 내게 계산서를 들이밀었다. 계산서를 보니 입장료 이천 원, 술 두 잔, 세금 포함 만 이천 원이 나왔다. 내가 시켜 달라고 하지도 않은 맥주를 네가 시켰으면 당연히 사야 하는 것 아니냐 화를 내자, 그는 능청스럽게 "나 돈 없어. 네가 사. 입장료도 내"라며 답했다. 그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탁자에 내 몫의 맥줏값과 입장료만 내고 줄행랑을 쳤다.

관광업에 뛰어드는 사람들

쿠바의 노인 노인은 자기 사진을 찍은 댓가로 1cuc를 요구했다. 마침 정말 돈이 없어, 줄 수 없다고 했다. 노인은 내 손을 꼭 잡고는 진지한 얼굴로 오늘 밤 자기가 남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 조수희


쿠바에서는 전 국민이 관광업에 목을 매는 듯하다. 열흘 동안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2번의 사기를 당했고, 수도 없이 바가지요금을 냈다. 숙소에서 만난 몇몇 한국인들은 자기도 쿠바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시가를 사라고 협박하고, 방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던 아침 식사 비용을 체크아웃할 때 청구했다. CUP와 CUC를 착각해 바가지요금을 낸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쿠바 경제의 유일한 돈줄은 관광객이다. 전시대 이후 미국의 경제 통제로 쿠바는 가난해졌고, 농사용 화학비료를 만들 시설도 없고, 수입도 못 해 궁여지책으로 유기농업을 했다. 자동차 수입이 어려워 60년대 이전에 수입한 올드카를 고쳐 탔고 아니면 마차를 탔다. 당연히 수출도 불가능했다.

쿠바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투명한 바다, 전 세계인의 아이콘 체 게바라, 헤밍웨이가 사랑한 다이끼리와 모히토, 세계 최고의 쿠바산 시가, 정렬의 라틴댄스 살사가 있다. 관광객 유치하기 좋은 조건이다. 그런 이미지들 때문에 쿠바를 향한 환상을 품고 여행을 왔고, 순진한 관광객이 되어 주머니를 탈탈 털렸다.

쿠바에서는 국가직인 의사, 경찰도 쿠바인들의 평균 월급인 10CUC을 받고 동네 식당 요리사도 10CUC을 받는다.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잘 때 10~25CUC 정도를 냈고, 민박집 아줌마가 해주는 5~10CUC 짜리 저녁을 먹었다. 쿠바 의사의 한 달 수입을 한 끼 저녁 식사로 지급한 셈이다. 국가는 숙박비 수입의 50%를 가져가지만(그 덕에 교육과 의료는 무료다), 식사 수익은 온전히 민박집 주인이 가진다. 쿠바에서 의사보다 민박집 주인이 부자다.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집 있는 사람은 민박집을 하고 싶어 하고, 차 있는 사람은 택시 기사를 하고 싶어 한다.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라지만 그건 옛말이다. 쿠바의 명동쯤 되는 오비스뽀에서 퓨마와 아디다스 제품을 파는 스포츠용품 가게를 봤다. 미국 뮤지컬의 상징 캣츠 공연이 곧 쿠바에서 열린다는 포스터도 있었다. 비누, 휴지, 세제 등 생필품을 파는 질 떨어지는 쿠바산 제품 상점은 파리가 날리는데, 유럽 수입품 화장품가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민박집 아줌마는 한국인 관광객이 놓고 간 LG 화학 생활의 샴푸를 애용했다. 쿠바산 세제는 빨래용으로만 썼다. 몇 년 있으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생겨 체 게바라 초상화를 인테리어로 쓸지도 모른다.

쿠바 사회는 자본주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고속버스 문에서 내려 민박집으로 향하는 순간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어이 중국 여자애! 어디가? 택시 필요해?"라며 달려들었다. 10년 전에는 주택매매도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집을 사고, 팔 수 있다. 쿠바 사람은 부자가 되고 싶어 너도나도 관광산업에 뛰어든다. 체 게바라가 꿈꿨던 이상적 공산국가는 관광객들의 눈먼 돈에 묻혀 사라지고 있는 걸까.
#쿠바 #세계일주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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