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에 나는 '적폐'가 되었다

[주장] 함부로 '문빠'라 하지 마라

등록 2017.05.23 10:21수정 2017.05.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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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한경오'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이 SNS에 최근 사태에 대한 소회를 조심스레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에 대해서 '씁쓸하네요.'라는 댓글을 달았더니 '그것을 넘어서 답답합니다.'라는 답글이 달렸다. '씁쓸함을 넘어선 답답함'이 무엇일까 싶어 그간 일상의 분주함으로 그다지 관심을 둘 시간이 없어서 그냥 대충 듣고 지나쳤던 '문빠', '한경오' 등에 대한 내용을 검색한 후에 큰 틀에서 <오마이뉴스>에 '[주장] '한경오 vs. 문빠'라니, 이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그러나 기사가 버금에 배치되었음에도 113개나 달렸고(그 중 필자의 답변 10개 포함), 4만 6천 명 이상의 조회수(5월 22일 오전 7시경)를 기록했다.


기사가 승인된 후, 기사에 대한 반응과 소위 '한경오'와 '문빠'의 대결구도를 걱정하는 기사 혹은 '한경오'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포스트에 올라온 글들을 관심 있게 지켜본 심경은 복잡하다. 그에 대한 느낌을 적는다. 

상근기자와 시민기자에 대한 이해 부족

동의할 수 없는 댓글 중 하나는 '기사는 사실만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실만 나열한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오마이뉴스> 독자 중에는 상근기자와 시민기자를 구분하지 않고 읽는 독자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민기자의 입장과 <오마이뉴스>의 입장이 상치될 수도 있고, 시민기자로서 <오마이뉴스>를 비판할 수도 있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편이면서 아닌 척 호도한다는' 식의 댓글들도 이어졌다. 필자는 '시민기자'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고, 2003년부터 정식 승인기사 2,425건 중에서 <오마이뉴스>을 옹호(?)하는 기사를 쓴 적은 단 한 건도 없다. 게다가 필자는 '정치'와 관련된 기사보다는 '사는 이야기'를 주로 써왔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 삶의 자리에서 느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오마이뉴스>라는 장을 통해서 오랫동안 풀어왔던 것이다.

다양한 장들이 있지만, 나는 <오마이뉴스>를 택했고, 나름 진보적이고 건강한 언론이라 생각했기에 때론 기사가 아니더라도 애정이 어린 비판의 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봐온 <오마이뉴스>는 자신들을 향한 비판의 소리라도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승인을 해줬다. 2003년부터 14년 동안 내가 경험한 <오마이뉴스>다.


이런 댓글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이 바로 '기레기'라고 못을 박고 댓글을 다는 독자도 있었다. 그 어떤 판단이라도 좋고, 규정도 좋지만, 댓글을 달 때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너무 순진한 기대인가?

기사의 댓글 중에서 상당수는 일방적인 '욕설 수준'의 댓글이었다. 사실관계를 벗어난 것도 있었고, 심지어 '한경오'를 혐오하게 하는 '가짜뉴스'도 있었으며,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양산해 내며 '한경오'에 대한 혐오를 증폭하는 이도 있었다. 댓글을 타고 블로그나 SNS에 들어가 보면, 어떤 분들은 살아온 과정들과 그의 관심사를 통해서 나와 다르지 않게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이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익명에 가까우며, 심지어는 진실이 아님에도 '한경오'를 혐오하는 이들의 전폭적인 격려가 이어지고 있었다. '씁쓸함을 넘어서 답답하다'는 지인의 호소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한경오'에 대한 분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았고, 그들이 이토록 절박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들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안다고 할지라도 이런 방식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전 필자의 기사에 달린 댓글의 시작 내용은 이렇다.

'미사여구 가득 찬 궤변을 길게도 싸질러놨다.'

이렇게 시작하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무리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긍할 수 있을까?

물론 모두가 그렇게 평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런 상황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SNS에서 친구로 지내며(온라인 공간) 이런저런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이 있음을 공유하고 나누던 이들 중에서 친구 삭제를 한 일도 있고, 나 역시도 친구사이를 끊어버린 예도 있다. 소위 '문빠'와 '한경오' 논란만 아니었어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사이였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안타깝게 여기는 바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하기만 하면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당시에도 서거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봉하까지 다음날 달려갔던 소위 '노빠'였고, 지난겨울부터 봄에 이르기까지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달려가길 마다치 않았으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호 1번을 찍었고, 당선에 환호했고, 그의 정책에 마음이 다 편안해졌고,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하고, 행여라도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기꺼이 손해도 감수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를 사랑한다는 사람에게 적폐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서로 미워할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힘쓰자고 당부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기레기'로 몰려야 하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나는 문재인 정권을 지지할 것이고, 이전 노무현 대통령처럼 지켜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적폐의 대상이요, 기레기라고 부르는 이들과는 싸울 것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함부로 '문빠'라고 하지 마라. 품위가 있어야 '문빠'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자칭 '문빠'라고 해서 다 '문빠'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한경오'의 잘못과 몇몇 개인 기자들의 행위를 옹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합리적인 비판과 지적이나 주장이 아니라 혐오를 키우는식 마녀사냥식의 공격을 퍼붓는 이들과는 싸울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이명박 정권 때는 한마디로 소통이 없고 온갖 사기와 거짓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불의한 권력에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팔았으며, 학자적인 양심을 저버렸다. 대놓고 쏟아지는 거짓말과 그런 거짓말이 통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아오면서 국민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학습했다. 그 학습의 결과는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이 창출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연장선이 되었고, 불통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박근혜 정권의 말로는 탄핵이었다. 촛불집회는 성숙한 국민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나라가 일베스러운 나라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준 혁명의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12월, 촛불집회를 보면서 제2의 6월 항쟁이 되리라 판단했으며, 그것이 미완의 6월 항쟁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사회적인 약자 혹은 자신들이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일베적인 분노표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일베'의 행동은 가히 인간의 행동이 아니었다. 진상규명을 외치며 단식하는 유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일베, 나는 그들을 모조리 쏴 죽이는 꿈을 꿀 정도로 그들이 미웠고, 측은하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수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특히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 대한'이라는 것의 대척점에 선 것을 나는 '일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일베스러움이 지금 '한경오'를 향해 자행되고 있다. 소위 '한경오'도 난감한 상황이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건강한 비판과 토론이 이어지지 않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견해를 내놓아도 비난의 화살만 돌아오는 형국, 여기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잘못에 대해서는 뼈를 깎는 반성을 하되, 막무가내로 가해지는 잘못된 폭력행사에 대해서는 필사의 각오로 맞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지금의 태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이 못마땅하다. 이런 태도야말로 오히려 '한경오'사태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털고 가야 할 것은 털고 가야 한다.

증오와 갈등을 넘어서 미래를 바라보자

감정과 증오의 댓글은 당장에 시원할지 모르겠다. 나는 또 이 글을 쓰고 댓글공세에 며칠을 끙끙거릴 것이다. 그러나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무조건 '적폐, 기레기'라고 쌍욕에 가까운 댓글을 달기 전에, 필자의 살아온 과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그간 써왔던 기사의 맥락이라도 한 번 짚어보고 댓글을 달았으면 좋겠다.

나는 분명히 함께 할 동지라고 생각했는데, 적폐로 규정되고 기레기로 전락을 시켜버리니, 그대들과 어찌 함께 갈 수 있겠는가? 진정,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길 바라는가? 지켜주고 싶은가? 그렇다면, 품을 더 키워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니다. 오로지 증오와 갈등만 부추기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의 배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빠 #한경오 #적폐 #기레기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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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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