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중 360일 화장, 이래야 '인정'하는 사회

화장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유

등록 2017.05.22 14:40수정 2017.05.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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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여성 ⓒ pixabay


내가 화장을 처음 시작한 나이는 20대 중반이다. 올해 32살인 걸 감안하면 화장하며 산지는 7년쯤 되었다. 또래에 비해 꾸미는 것에 늦게 관심을 가진 탓도 있지만 이른 나이에 화장하는 것을 집에서 반대한 것도 한몫했다. 엄마는 일찍 화장하면 피부가 망가진다는 논리로 20대 중반이 돼서야 화장하는 것을 마지못해 찬성했다. 그때부터 회사에 출근할 때,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 있을 때 등 365일 중 최소 360일을 화장하는 삶이 열렸다.


로드샵부터 외국 명품 브랜드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화장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다양한 제품과 정보들이 쏟아졌다. 탄력, 미백, 수분, 트러블, 황산화 등등 어떤 제품이 좋다는 정답 없이 화장품의 세계라는 바다 위에 표류하는 유랑민이 되었다.

이른 나이에 화장하는 것을 반대했던 엄마의 태도는 금세 돌변했다. 나이가 몇 살인데 화장을 못하냐고 성화다. 눈썹을 다듬어야 인상이 깔끔하다, 나갈 때 루주(립스틱) 좀 바르고 나가라,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것도 못하냐고 핀잔이다. 가르쳐 준 적이 있어야 해보지, 내가 언제 화장을 해봤겠는가. 덕분에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회사 동료들이나 화장품에 관심 있다는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것도 사봤다, 저것도 사봤다 하며 화장품을 늘려갔다. 종국에서는 사과박스 하나만큼의 화장품을 1/3도 체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 이 제품이 좋더라 하는 입소문의 '카더라'통신은 소문으로 그칠 뿐, 나에게 잘 맞는 화장품이 없었다.

하루는 회사에 화장을 하고 갔는데 커피를 마시다 보니 립스틱이 지워졌다. 화장을 하는 여성이라면 동감 할 이야기인데 일반 립스틱은 너무 쉽게 지워진다. 자주 덧발라 주어야 하는 립스틱을 새로 덧바르고 나오니 지나가던 남자 상사 한 분이 "오늘은 화장했네?" 하며 신기하다는 얼굴을 하신다.

나는 속으로, '어제도 하고, 엊그제도 했으며 몇 년 동안 내내 화장 안한 적이 없는데요'라는 말을 삼키고, "립스틱을 새로 발라서 그래요"하며 웃어넘겼다. 관심 없는 척, 쿨한 척하지만 여성의 화장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홍색 립스틱은 바른 티도 안 나는 듯, 붉은 색이 강한 립스틱을 발라야 화장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화장도 기술인데, 나는 기술 연마를 게을리한 염색체만 여성인 민낯의 존재가 기분이다. 화장을 안 하는 것이 미덕인 것은 미성년까지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회사 갈 때 가방 안에 화장품 파우치가 들어있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길 가다 보면 초등학생, 고등학생 할 것 없이 모두 나보다 화장을 곱게 한 여학생들이 많다. 피부 좋고 앳된 친구들의 화장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곧 원하지 않아도 매일 화장해야 하는 날이 올 거야.'

청소년의 화장을 선호하지 않는 학교와 사회는 성인이 되면 반대로 화장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로 돌변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게 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는 말로 화장할 것을 종용한다. 미리 화장해볼 자유도 없지만, 성인이 되면 화장을 안 할 자유도 드물어진다.

20살을 넘긴 여성에게는 민낯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반대로 20살 미만의 학생들에게는 화장한 얼굴이 어색한 거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는 연령 상관없는 화장의 시대는 언제 도래할까.

오늘도 립스틱과 눈 화장까지 해야 화장한 얼굴로 인정받는 회사에 출근한다.

#화장 #화장에대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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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낯선 일반인입니다. 낯익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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