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후보에게 전달된, 금호고 대통령 선거 '당선증'

[bulgom의 혁신교육 현장 (9)] 금호고, '모의투표' 진행... "박근혜처럼만 하지 마세요"

등록 2017.05.22 19:24수정 2017.05.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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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호고의 '대선 모의투표' 사진 전시회 작품.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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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호고의 '대선 모의투표' 사진 전시회 작품. ⓒ 윤근혁


'19금, 투표연령 제한법'을 겨냥한 '합법적인 반란'이 전국 3개 고교에서 일어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그동안 '공직선거법 위반' 걱정에 '학교 안 투표'를 벌이지 못했던 학교들이 이번엔 대선 하루를 앞두고 대선 후보 모의투표를 벌이기로 용기를 낸 것이다(관련기사 : 교육선진국은 학교 모의투표 '대박', 한국은 '쪽박').

스스로 입 닫은 교사들, 학생 주도 선거 '학습' 진행

22일, 이들 학교 가운데 하나인 서울 성동구에 있는 금호고를 방문했다. 이날 오전, 이 학교 본관 3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지난 8일 벌인 모의투표 모습 사진과 19대 대통령을 향한 바람을 담은 '소망나무'가 보였다. 대선 모의투표 전시회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 개교한 혁신학교인 이 학교는 대선 하루 전인 지난 8일 학교 차원에서 대선후보자 13명의 실명을 내걸고 모의투표를 벌였다. 참여 학생은 이 학교 1학년 학생 157명이었다. 신생학교이기 때문에 1학년만 있는 이 학교의 투표율은 97.5%였다.

이 학교 교사들은 선거기간에 맞춰 <사회>와 <역사> 교과 프로젝트 학습(생활주변 주제 문제해결학습)을 펼쳤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지지후보의 공보를 직접 만들고 공약 발표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선거 '학습'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어느 후보에도 치우치지 않는 '엄정 중립' 태도를 보였다. 교사들은 스스로 입은 닫은 반면, 학생들의 입을 열도록 한 것이다. 학교도 중앙선관위로부터 "대선 개표일 뒤에 모의투표 개표를 하면 학교 안에서 모의투표를 해도 무방하다"는 답변을 받은 뒤였다.

모의투표 날인 지난 8일 이 학교 모의투표장 옆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는 홍보물이 붙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플라톤)

어른들의 대선 개표일 하루 뒤인 지난 10일 투표함을 열었다. 결과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뽑혔다. 특표율은 29.9%(47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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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증을 받기 위해 금호고 학생 대표 앞에 선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 노슬아


2등은 어른들이 1등으로 뽑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차지했다. 득표율은 22.9%(36표)였다. 이어 3등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22.2%(35표)였고, 공동 4등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10.2%, 16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10.2%, 16표)였다.

이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지난 17일 오후 5시쯤 모의투표 결과 1등을 차지한 심상정 후보(정의당 상임대표)가 학생들 앞에 섰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이다. 금호고 학생대표 11명으로부터 당선증을 받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손 그림을 그려 완성한 당선증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귀하는 금호고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셨으므로 이 당선증을 드립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청렴한 민주정치에 대한 책임을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 금호고 학생 일동"

두 손으로 당선증 받은 심상정 "영광이다"

이날 국회의원회관을 찾아 심 후보에게 당선증을 직접 전달한 허정연 금호고 학생회장은 "그냥 우리 학교 모의투표 결과로 당선증을 만들어드린 것뿐인데도 심 후보는 1시간 동안 우리와 깊은 대화를 나눠주셨다"고 회상했다. 이 학교 노슬아 교사(역사)도 "그날 심 후보는 '이 당선증은 나에게 참 영광스러운 것이다. 19금 선거법이 빨리 없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심 후보는 당선증을 들고 자신을 찾아온 학생들을 위해 1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눈 것. 정치인이 기자들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게 이날 행사에 참여한 교사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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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고 학생들이 심상정 상임대표에게 전달한 당선증. ⓒ 노슬아


조호규 금호고 교장은 "대선이라는 좋은 교육기회가 있는데, 민주시민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이 이를 체험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관념적인 교육일 뿐"이라면서 "이제 (학교 안 모의투표 허용이라는) 물리적인 여건이 형성됐는데도 교장과 교사들이 안 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경기지역 1개 고교와 경상도지역 1개 고교도 학교 안에서 모의투표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다. 학교 밖 모의투표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학교 안 모의투표가 진행된 것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시민교육하려면 대선 기회 활용해야"

22일, '금호고 1기 학생들이 19대 대통령에게 바랍니다'란 큰 안내판이 적힌 소망나무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걸려 있었다. 모두 이번 모의투표에 참여한 학생들이 쓴 내용이다.

"박근혜님처럼만 하지 말아주세요!"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투표제한 나이를 낮춰주세요."
"공부에 찌들어 살기 싫습니다. 도와주세요."
#대선 모의투표 #당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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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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