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고졸 신화' 강조하는 언론, 문제 있다

야간대학 나왔는데 '고졸'이라 할 이유없어... '성공 신화화' 문제 없는지 되돌아봐야

등록 2017.05.24 11:13수정 2017.05.2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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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그는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경제금융비서관, 국무조정실장 등 정권과 무관하게 요직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로 평가된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의 내정을 두고 "거시경제 통찰력과 조정 능력을 겸비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라 평가했다.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사령탑"이기에 "위기의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경제수장의 최적임자"라는 게 인선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몇몇 언론에서는 김 후보자의 선임을 두고 '고졸 신화'라는 말을 헤드라인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는 실로 우스운 일이다. 그가 최종학력이 고졸이었던 건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덕수상고 졸업 후,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이었던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다니며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경제기획원 등 공직을 밟으며 미시간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에는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교환교수로 일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여전히 '고졸 신화'라며 치켜세우는 것은, 야간대학을 대학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야간대학 역시 고등교육법에 의거한 '대학'이다. 그를 두고 이 시점에서 '고졸 신화'를 이야기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고졸 신화'라는 환상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언론의 태도 역시 비슷하다. 언론에는 '고졸 학력으로 삼성전자 상무이사직을 역임'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그의 경력을 오독한 것이다. 양향자 최고위원은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그가 메모리사업부 DRAM 설계 등 중책을 맡을 수 있었던 건 한국디지털대에서 인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이며, 삼성전자 상무이사직을 맡은 것 역시 성균관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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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 ⓒ 남소연


'고졸 신화'를 최대한 좋게 해석하더라도, 이는 '야간대학 나온 흙수저가 경제부총리가 된다'식의 개천용 서사의 확장에 불과하다. 이런 신화는 다른 고졸 학력의 청년들을 채찍질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저 사람은 고졸로 경제부총리가 됐다는데, 또 저 사람은 고졸로 삼성전자 상무가 됐다는데 너는 왜!"


하지만 경쟁의 출발선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온 한국사회에서 보통 '고졸'이 그런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건 환상이다. '성공의 신화화'는 실패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좌절감만 키울 뿐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의 신화가 언론에 반복해 등장하는 것은, 같은 학력 조건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두 발만으로 레이싱카와 속도 경쟁을 해야 하는 경주장에 몰아넣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16년 학벌 철폐를 주장했던 학벌 없는 사회는 스스로의 해체를 선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재생산이 불가능한 삶은 같은 학벌이라는 심리적 연결도 끊어 내 버리고 모두를 파편화하고 있다. 학벌 사회는 교육에서 비롯하지만 그 본질은 사회 권력의 독점에 있다. 그러나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기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과연 '고졸 신화'는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시 한번 선언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지금까지의 한국사회의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에서 '고졸 신화'를 다시금 노래하는 것은 이를 모두 의도적으로 망각해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김동연 #문재인정부 #김동연경제부총리후보자 #양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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