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들도 민주주의를 누렸다

<숲 속의 평등>에서 찾는 인류 미래의 희망

등록 2017.05.24 16:15수정 2017.05.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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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반 행보가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평가의 핵심은 촛불민심을 과감하게 국정에 반영한 데 있다. 검찰로 대표되는 개혁대상을 군과 외교, 민생으로 확장해 가는 대통령의 의지도 그러려니와 파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의 발탁에서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

박근혜정부에서 철저하게 사유화된 권력이 시민의 몫으로 되돌려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권력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강화하고 영역을 확장한다.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다수 시민에게 봉사하던 권력이 소수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은 역사에서 수많은 사례가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자율과 자치는 위협받게 되는데 그래서 민주주의가 강조된다. 시민의 자율을 회복하기 위해 혁명과 폭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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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숲속의 평등> 책 표지 ⓒ 토러스북

그렇다면 오랜 옛날 수렵채취 시대의 우리 조상은 어떤 민주주의를 갖고 있었을까. 인류 초기의 정치적·사회적 행동들은 어땠을까. 원시인들이 민주주의를 누렸을 거라고 여긴다면 좀 의아할 것이다.

이 책 <숲속의 평등>이 다루는 내용이다. 돌도끼를 휘두르며 펄쩍펄쩍 뛰는 원시인의 야만스런 모습을 연상한다면 오해다. 오늘날과 비슷하거나 더 발달된 평등주의 기풍과 평등주의 정치질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고대인의 사회를 빗 댄 '숲 속'에서 이룬 평등 이야기다. 평등이라는 말은 이타주의 심성이 없고서는 성립될 수 없다. 평등이 무너진 현장에는 이기주의와 권력욕이 창궐한다.

이 책이 입증해 보이는 가설들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인간에게 내재된 유전적인 이타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타주의가 인간의 기본 속성이라는 가정은 적자생존이라는 오랜 다윈주의와 대립한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보엠은 공산주의를 일컬어 그 의도는 존중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근거로 삼았다고 비판한다. 공산주의나 극단적 종교와는 반대로 인간본성은 경쟁과 약탈과 억압, 파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고 가족 간의 유대와 체계적인 사회생활을 한다는 연구로 유명한 제인구달에 대한 연구센터 센터장답게 저자는 침팬지 사회의 위계와 평등주의를 책의 앞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44쪽에서 63쪽에 걸쳐 고블린, 무스타스, 프로도, 사탄, 윌키라는 이름을 가진 침팬지들의 행동특성과 집단 내에서의 지위와 그 변동 과정을 상술하고 있다. 사냥과 짝짓기, 영역다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대립과 갈등을 풀어가는 침팬지 행동 특성은 오늘날의 인간집단보다 우월한 측면도 있다.

타자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현대 인류의 독재자 모습은 없다. 침팬지 집단의 우두머리인 '알파 개체'는 기껏 잔소리꾼, 협박꾼, 개별적 폭력 행사자 정도이다. 평등주의의 흥미 있는 유형이라 할 것이다.

'강자를 길들이는 거꾸로 된 위계'가 이 책의 부제다. 아래로부터의 권력. 아래로부터의 통제. 이것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다. 인민주권이 작동하는 체계 아니겠는가. 숲 속에 살던 원시인, 고대부족이 그랬다는 것을 이 책은 시종 입증하고 있다.

원시사회를 지나 부족사회로 옮겨 온 뒤에 이러한 평등주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야만적인 폭력이 전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반 권위주의적인 제재방식은 고대 부족사회의 특징이라고 이 책은 역설한다. 수군거림과 여론이 잘못된 행위에 대한 큰 억지력이 된다는 것을 고대인들은 알고 있었다.

고대사회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뉴기니(New Guinea) 사회와 파나마의 쿠나족, 엥카족. 분노라는 감정이 아예 없는 에스키모인 우트쿠족. '죽다'라는 말이 없는 마사이족. 이들은 극단적인 거리두기와 조롱, 불복종, 배척을 통해 도를 넘는 강자를 길들였다.

물론 무리로부터의 집단 이탈도 무례한 강자에 대한 통제 방식이 되기도 했다(193-206p). 대량 살육과 지구환경 파괴 위에 서 있는 현대사회가 주의 깊게 되새겨야 할 인간본성의 희망이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주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숲속의 평등 - 강자를 길들이는 거꾸로 된 위계

크리스토퍼 보엠 지음, 김성동 옮김,
토러스북, 2017


#숲속의 평등 #평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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