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새긴다는 5.18, 이렇게 기억하는 건 어떨까

[제안] '오월길'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조건

등록 2017.05.24 20:14수정 2017.05.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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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7주년 5.18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이 3.1운동, 4.19혁명과 더불어 5.18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5.18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일부의 패륜적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 그 때문이다.

사실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오래전에 이미 끝났다.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후임 대통령에 의해 때 이른 사면이 내려졌을지언정,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의 명백한 내란 행위였다는 사법적 판단도 내려진 상태다. 남은 건 지난 37년간 유예된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5.18 기념사에 담긴 고갱이다.

헌법 전문에 당당히 실리게 될 터이니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동안의 '소심함'을 훌훌 털어내고 5.18이 3.1운동과 4.19혁명 못지않은 민주주의 발전의 변곡점으로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음악 교과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수록되는 것도 그저 허황된 꿈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자면 하루속히 5.18의 감춰진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기억을 그러모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기억은 오랜 세월 감춰진 진실을 규명하는 마중물이자 강력한 동력이 된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고서는, 5.18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5.18을 역사로 공부하는 미래세대 아이들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과거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지만, 미래를 열어가는 등댓불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37년이라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그간의 역사 왜곡과 폄훼에 맞서 진실을 온전히 밝혀낼 기회가 주어졌다. 그 진실을 바탕으로 하여 5.18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명토 박고, 5.18 정신을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전승시킬 더없는 기회가 드디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진실이 값진 역사적 교훈으로 살아 아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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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기총소사의 흔적 전일빌딩 10층엔 헬기 기총소사의 흔적이 기둥과 지붕에 남아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발포명령자를 밝혀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 서부원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불과 한 세대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수백 년 전의 일처럼 멀고 아득한 역사로 여기는 듯하다. 아이들에겐 5.18보다 임진왜란이 훨씬 더 익숙한 이름이다. 하물며, 5.18을 8.15 광복과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과 함께 흩어놓는다면, 시대순으로 배열해내지 못할 아이들이 태반이다.

당장 정규수업시간에 5.18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지금껏 5.18을 비롯한 현대사 영역은 교과서의 '부록'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교과서의 맨 뒷부분이라 진도를 나가기가 쉽지 않은 데다 시험에도 거의 출제되지 않는 탓이다. 해마다 5월 즈음 계기 교육이 정례화되어 있는 광주와 인근 지역을 제외하곤 5.18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는 많지 않다.

그런 그들에겐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5.18의 숭고한 교훈조차 '공자 왈 맹자 왈'이기 십상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조차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대놓고 몽니를 부리는 것도 5.18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실 그것은 불의한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5.18 영령들 앞에서 결코 꺼낼 수 없는 망언이다.

'촛불 혁명'과 정권 교체를 통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막아냈지만, 교과서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을 통해 배우는 5.18은 자칫 형해화한 민주주의를 머릿속에 욱여넣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암기하듯 배우는 민주주의는 값싼 수험용 지식일 뿐이다. 일부 아이들이 '민주화'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교육의 폐해 아닐까.

곳곳에 퍼진 5.18 유적, 지금의 '오월길'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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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에서 바라본 옛 도청의 모습 옛 도청의 복원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건물의 왼쪽 철골 구조물은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면서 훼손된 부분이다. ⓒ 서부원


"외지인들이 지금 광주의 모습을 와서 본다면, 5.18 당시의 뜨거웠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을까요? 도청과 망월동 묘역을 제외하고 5.18을 떠올릴 만한 곳이 어디가 있죠?"

지난 주말, 임시 개장한 아시아문화전당 내 민주평화자료관(옛 전남도청과 경찰청 건물)을 둘러봤다는 한 아이가 건넨 질문이다. 들리는 말투로 보아 거기서 만난 사람 대부분이 외지인이었다면서, 문 대통령의 감동적인 기념사가 가져온 변화일 거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현대 미술관 같은 그곳이 한편으론 낯설면서도 5.18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외지인 입장에서 그곳을 나오면 5.18 답사는 끝나고 만다는 점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마지막 항전지로서 큰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이내 막막해진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장과 시신을 임시로 안치했던 상무관, 당시 민주 인사들이 시국모임을 가졌던 YMCA와 얼마 전 헬기 기총소사의 탄흔이 발견된 전일빌딩이 전부다. 이들은 5.18 사적 제5호로 일괄 지정된 곳들이다.

그가 몰라서 간과한 거지만, 5.18 사적은 현재 지정된 것만 모두 27곳에 이른다. 제1호 전남대 정문부터 마지막인 제27호 광천동 들불야학 터까지 사적지가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광주시는 5.18 사적들을 '오월길(5.18 road)'라 하여 5개 주제로 18개 코스를 조성해놓았다. 사적지를 직접 답사하며, 민주, 인권, 평화라는 5.18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데에 있다. '인권 길 횃불 코스'라고 명명된 옛 도청 주변을 제외하곤 걸어서 둘러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스에 따라 주마간산 식으로 걸어도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도 아닌 데다, 그렇다고 직접 운전해서 둘러본다고 해도 대로변이거나 접근하기 힘든 좁은 곳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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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사적지를 알리는 표지석 광주 시내에는 27곳의 5.18 사적지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접근성이 떨어져 찾는 발길이 뜸하다. 사진은 사적 15호로 지정된 '광주-목포 간 도로변 민간인 학살지'다. ⓒ 서부원


사적지마다 횃불을 상징하는 큼지막한 표지석과 안내문은 잘 갖춰져 있다 해도, 그곳까지 찾아가기가 힘드니 무용지물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월길'을 홍보하는 책자는 곳곳에 비치되어 있지만, 수록된 지도와 안내만으로는 거리에서 헤매기 일쑤다. 내비게이션에서 사적지를 검색할 수 없을뿐더러, 병기된 주소를 입력해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뜨거나 엉뚱한 곳을 알려주기도 한다.

광주시민 중에서도 '오월길'에 대해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다. 우선 홍보가 부족한 탓일 테지만, 길은 나 있되 걷는 이들이 드물다 보니 이름조차 생소해 하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의 '자유의 길(Freedom Road)'이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제주의 '올레길' 등의 형식만 본떠 급조된 보여주기식 콘텐츠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시내 가로등 곳곳에 매달려 있는 '오월길' 이정표는 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치돼 있다. 5.18 정신을 길 위에 구현하기 위해 조성한 '오월길'이, 적어도 지금까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안내책자 속 콘텐츠로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현하고자 하는 5.18 정신의 내러티브도 사적지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조처가 병행되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이가 건넨 질문을 곱씹으며 감히 제안해본다. 광주 시내 5.18 사적지들을 중간 정류장 삼아 오가는 518번 시내버스의 노선을 조정하고 확대해 '오월길' 셔틀버스로 운영하면 어떨까. 아시아문화전당을 기점 삼아 기존의 18개 코스를 주제별, 지역별로 묶어 정기적인 노선을 편성하는 것이다. 해설자가 버스에 동승한다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적지 번호만으로 내비게이션을 통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직접 승용차를 운전해 광주를 찾은 외지인에게는 맞춤형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접근성이 좋아지고 찾는 발길이 시나브로 늘어나다 보면, 그들을 위해 사적지마다 해설사가 상주시켜달라거나, 주차할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자연스레 뒤따르지 않겠는가.

나아가 '오월길'을 자전거 도로로 연결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시내에는 이미 간선도로를 따라 거미줄처럼 자전거 도로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인근 상점의 가판대나 광고판이 점유하거나 가로수의 뿌리가 웃자라 노면이 파손된 곳이 부지기수라 유명무실해진 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개구리 주차'까지 합세하여 자전거는커녕 사람들이 통행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다.

적어도 5.18 사적지를 잇는 길만이라도 자전거 도로를 '부활'시키자. 올려다봐야 보이는 기존의 '오월길' 이정표를 바닥에 옮겨 그리고, 전용 건널목을 만들어 자전거를 타고 사적지를 둘러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애먼 4대강에서 자전거를 타기보다 5.18 사적지를 자전거로 답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5.18 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상징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덧붙여 KTX와 SRT가 서는 광주송정역에 시내의 5.18 사적지를 연결하는 셔틀버스 노선을 만들면 '오월길'이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면 역을 비롯한 사적지 주변에 자전거 대여소와 거치대를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광주가 민주주의의 성지라면,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성지 순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게 먼저다.

현장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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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청에서 바라본 광장과 금남로 풍경 임시 개장된 민주평화자료관(옛 도청 건물) 창문에서 내려다본 광장과 금남로의 모습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광장에서는 '난장'과 집회가 열리는데, 5.18의 마지막 항전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민주대성회가 열렸던 분수대와 헬기탄흔이 발견된 전일빌딩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서부원


아이디어를 메모하다가 문득 옛 도청의 원상 복원을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옛 도청 자리에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면서 5.18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도청 본관 건물을 훼손한 데 대한 항의로, 지금까지 광장 한쪽에서 시민과 방문객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역사의 현장이 사라지면 기억도, 정신도 가뭇없이 지워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다.

그러고 보면 '오월길'에 대한 내 제안 자체가 허황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 도청을 비롯한 현장 자체가 시나브로 훼손되고 사라져가는 마당에, '한가하게' 사적지 표지석을 찾아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오월길' 운영에 대한 고민보다 옛 도청의 원상 복원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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