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써도 불만인 사람들, 이걸 몰라서야

[서평] 제현주, 금정연 지음 <일상기술연구소>

등록 2017.05.30 10:19수정 2017.05.3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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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술'이라는 명칭을 봤을 때 내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른 건 라즈베이파이, 아두이노와 같은 사물인터넷 개발 기술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손뜨개나 목공이려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가운데 뭐가 됐든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금손'과는 거리가 먼 데다가 최신 기술에 늘 어려움을 겪는 개발자여서 그런지 '기술(테크놀로지)'은 확실히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먼저 드는 단어였다.

<일상기술연구소> 표지 ⓒ 어크로스

그런데도 이 책, <일상기술연구소>를 굳이 읽은 건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내게 '기술'은 늘 억압과 배제, 박탈감의 다른 말이었다.


따라가지 못하면 무시당하고, 무리해서 따라가 봤자 본전치기, 따라잡아도 몇 개월 후면 또다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있는 끝없는 술래잡기 게임이었다. 그러한 '기술'이 생활인, 자유, 이런 단어와 조합되어 있다니. 너무나 생소한 부제 때문에 되려 호기심이 발동해 덜컥 책을 구매해버렸다.

"내일은 막막하고 마음은 불안한 시대, 좋은 일상을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을 연구합니다".

첫 페이지에 새겨진 이 문구는 이 책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 책이 다루는 일상의 기술은 정말 작은 단위다. 돈 관리, 일 벌이기, 함께 살기 등.

여기에 기술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싶을 정도로 사소해 보이지만, 글을 읽다 보면 왜 이것을 '기술'이라고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된다. 각자의 활동들에 문제의식과 원칙이 있으며 숙련된 테크닉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돈도 관리하고 일도 벌이고 다른 이와 함께 살기도 하지만, 그것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하지는 않는다. 돈의 가치로 환산되지 않고, 누군가 요구하는 공부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일상 자체가 '고민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결정하는 건 자본이지, 우리가 아니므로.


'좋은 일상'을 만들기 위한 <일상기술연구소> 연구 대상들은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 활동들이다. 이 활동 자체만으로는 돈을 벌기 쉽지 않고, 따라서 돈으로 환산되지도 않는다. 대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건 나와 무엇에 대한 새로운 '관계'다. 돈과 새롭게 관계 맺기, 일과의 관계를 바꾸기 등등 일상에 대한 나의 태도(attitude)가 변화되면서, 결과적으로 다른 것들과 새롭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예컨대 '돈 관리의 기술' 항목에서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내가 이러려고 돈 버는 건데"라는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진 분들을 보면 돈 쓰고 되게 행복해하거든요. 그렇지 않고 돈을 펑펑 쓰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만족하지 못하니까 돈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이 생기는 거죠.' - 43쪽

돈을 관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라, 는 지침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월급의 절반을 적금으로 부으라거나, 하루에 커피 한 잔씩을 줄이라는 말은 없다. 대신 나의 욕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참고하여 균형점을 찾아 나가야만 '돈 관리'가 된다고 코칭한다.

그런가 하면 '생활 체력의 기술'에서는 "운동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운동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새해 첫날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해 한 달을 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은 끈기가 없거나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운동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잘해 본 적이 없고 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운동 자존감'이 떨어져 운동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모두 문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뒤엎고, 나 자신과 운동·돈과의 관계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나의 일상을 '제대로' 아는 것

회사 내의 업무는 아주 작은 프로젝트라도 세분되어 있는데, 내 일상은 단순히 출근 이전·퇴근 이후의 삶 정도로만 인식된다. 일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활동이 있는데도, 그 활동들의 내용과 목표, 심지어 존재 여부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그저 대충 감으로 짐작하곤 한다. 가족들과 한 집에 살고는 있지만 이것을 '함께 살기'라는 활동으로 인식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기술연구소>가 가진 진짜 힘은 일상을 톺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얼마나 많은 활동이 내 일상 속에 있으며, 또 그 활동 가운데 문제적인 요소가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나의 일상을 '제대로' 아는 것, '좋은 일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출발점이 있을까?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구체적인 실천 노하우도 훌륭하지만, 일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데에서 이 책은 '생활인'들의 '필독서'가 될 만하다.

일상기술연구소 -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

제현주.금정연 지음,
어크로스, 2017


#일상기술연구소 #제현주 #금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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