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평상 짜고, 겉절이를 하는 하루

[시골 아버지 살림노래] 아이한테 글월 띄우기

등록 2017.06.01 11:10수정 2017.06.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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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육아일기)를 적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었다면, 아이들이 제법 큰 요즈음은 아이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아이랑 고맙게 배우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와 지내는 나날은 '육아일기'보다는 '살림노래'가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배우고 누리는 나날이라는 마음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공책에 짤막하게 적어 놓는 살림노래를 이웃님과 나누면서 '살림하며 새로 배우는 기쁨'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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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뚝딱 짜낸 책상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작은아이 ⓒ 최종규


하루 만에 책상 짜기

낮 두 시부터 책상을 짭니다. 어떤 책상을 짤는지 며칠 동안 생각해 보았고, 아침에 틀이 섰어요. 아이들 밥을 차려 주고서 이십 분쯤 평상에 누워서 등허리를 펴고는 곧바로 톱을 들고 나무를 켭니다. 먼저 웃판을 단단히 짭니다. 나사못을 스무 개쯤 박습니다. 다음으로 책상다리를 켜서 나사못을 박습니다. 책상다리가 튼튼하도록 받침나무를 잘라서 나사못을 박지요. 속에 짧은 받침나무를 대고, 바깥으로 긴 받침나무를 대요. 이러고서 웃판을 한 겹 덧댑니다.

제법 묵직한 책상이 되는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에요. 모래종이로 삭삭 겉을 훑어서 부드럽게 하고는 곧바로 옻을 바릅니다. 두 아이가 곁에서 이모저모 거들었기에 네 시간 만에 책상 하나를 다 짜서 옻까지 발랐습니다. 평상도 책상도 하나를 하루에 뚝딱 하고 짤 수 있구나 싶어 스스로 놀랍니다. 앞으로 더 손쉽게 짤 테고, 아이들도 머잖아 저희 살림을 손수 짜내겠지요.

겉절이를 하는 밤

낮에 읍내마실을 하면서 우체국을 들르고 배추를 두 통 장만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지런히 배추를 썰어 절여 놓습니다. 이러고 나서 양념을 마련하지요. 두어 시간 남짓 이대로 둡니다. 아이들이 잠듭니다. 밤에 겉절이를 합니다. 곁님하고 큰아이가 겉절이를 얼마나 잘 먹는지, 배추 한 통으로 담근 겉절이는 며칠이 안 되어 사라집니다. 배추 두 통 겉절이는 며칠이 갈 만할까요. 잘 먹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욱 신나게 김치를 담급니다.


즐겁게 먹는 젓가락질을 지켜보니 새롭게 기운을 내어 여러 가지 김치를 담급니다. 겉절이를 담그고 나서 큰 통에 옮겨 놓는데, 다 옮기고서 손에 묻은 국물을 쪽 빨아 보니 "이야, 내가 담근 김치인데 이렇게 맛있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손맛이란 맛있게 먹어 주는 살붙이를 그리면서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손맛이란 즐겁게 먹으며 기쁘게 하루를 지을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시나브로 깨어나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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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담그는 아버지'로 지내는 하루가 뻑적지근하지만 보람이 커요. ⓒ 최종규


한 방울 짜내기

손님이 많을 적에 두레상 구실도 하는 평상을 아침에 마무리합니다. 못을 마저 박고 옻을 발라서 말렸지요. 한낮 더위가 가라앉은 뒤에는 매화나무에서 매실을 두 아이하고 함께 땄어요. 두 아이는 사다리 타는 재미를 한껏 누립니다. 딴 매실을 손질할 적에는 힘들어 하기에 거의 혼자서 다 합니다. 이러고 나서 저녁을 새로 지어서 차리니,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뭇소리 없이 말끔히 밥그릇을 비우고 또 비우고 자꾸 비워요. 신나게 뛰논데다가 심부름을 제법 했으니 밥이 잘 들어갑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서 나란히 누울까 하다가 설거지하고 부엌일을 더 합니다. 한숨 돌리고서 밤에 일어나서 할까 하다가 한 방울 힘을 더 짜내어 치웁니다. 행주를 빨아서 물기를 짤 적에 힘을 한 번 더 주면 몇 방울 주르륵 떨어지듯이,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나절에 기운을 다 썼네 싶으면서도 한 방울 기운을 더 짜낼 수 있어요. 이 한 방울이 있으니 어버이 자리에서 살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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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 새로 짜서 마무리짓던 날. 두 아이가 옻 바르기를 거들어 줍니다. ⓒ 최종규


예부터 "밥이 약이다" 하는 말을 합니다. 몸을 살리는 밥을 알맞게 살펴서 제대로 지어서 먹으면 바로 밥 한 그릇이 약이요, 다른 약은 없어도 된다는 뜻이에요. 이와 달리 밥을 엉터리로 먹는다든지 아무렇게나 먹는다면, 제아무리 값지거나 비싸거나 대단한 밥을 먹어도 몸이 망가지거나 아프겠지요.

더 헤아려 본다면, 밥 한 그릇을 먹을 적에 서로 즐겁게 둘러앉아 도란도란 웃음꽃이 피어나는 자리일 적에는 '돈으로 쳐서 값싼 밥'을 먹어도 더없이 즐거워서 몸이 좋아해요. 이와 달리 제아무리 '돈으로 쳐서 값지고 비싼 밥'을 먹더라도 무섭거나 메마르거나 짜증스럽거나 싫거나 미운 마음으로 수저를 듣다면, 몸에 매우 나쁘고 도움이 안 되지요.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마주하며 돌보느냐 아니냐'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밥을 지어서,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밥상을 차려서 나누느냐'를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 있을 적에는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하루가 되어요. 우리가 '안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 있을 적에는 기쁨도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없이 괴롭거나 고달픈 하루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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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마실 나온 아버지가 띄운 엽서를 받은 작은아이가 신이 난다며 이 엽서를 들고 달립니다. ⓒ 최종규


글월 띄우기

우리 집 아이들 바깥마실을 나오면 언제나 "언제 집에 가?" 하고 묻습니다. 바깥일을 다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갈 테지만, 집처럼 바깥에서 재미나게 뛰놀거나 노래하거나 춤출 수 없을 적마다 갑갑하구나 하고 여겨요.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거든요. 이와 달리 버스나 기차나 전철이나 길에서는 노래를 하거나 춤추기가 어렵습니다. 바깥에는 우리만 있지 않은걸요.

두 아이는 읍내쯤 되는 마실이면 "같이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다가 으레 "그냥 집에서 놀래" 하고 고릅니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 혼자 바깥마실을 다녀오면서 볼일을 보는 날이 느는데요, 이렇게 혼자 집을 나설 적에 글월을 하나 적어서 큰아이 책상에 올려놓곤 합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글을 안 읽기 때문에 작은아이한테는 따로 남기지 않아요. 다만 먼 마실을 나오면 두 아이 모두한테 다른 고장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장만해서 글월을 띄우지요. 두 아이가 집에서 새롭게 짓는 놀이와 살림과 배움을 생각하면서 글월을 적어서 띄웁니다. 두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간추려고 짧은 이야기로 엮어 글월을 써서 띄워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살림노래 #육아일기 #삶노래 #아버지 육아일기 #살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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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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