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긴 머리 주인공 해봐" 이루지 못한 약속

우정을 가슴에 새기고 떠난 단원고 아이들

등록 2017.06.08 11:29수정 2017.06.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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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지식채널e 시청자 UCC공모전 대상작 ‘소년의 밤’ 청소년들에게 친구란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해주는 작품으로 유튜브에서 켑처했다. ⓒ EBS 지식체널e


3명의 소년이 축구를 보고 있습니다. 또 한 소년은 다리 난간에서 어둠으로 더 깊어 보이는 강을 바라봅니다. 3명의 소년 중 한 소년이 다리 난간을 붙들고 서있는 소년에게 전화를 합니다.


"우리 축구 같이 보기로 했잖아."

강을 몸을 던지려는 듯 까치발을 들던 소년은 대답합니다.

"근데 나 지금 가면 늦을 거 같은데 괜찮니?"

소년이 전화를 끄고 혼잣말을 합니다.

"전화하기를 잘한 거 같아."


다리 난간에서 손을 떼고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으로는 이런 문구가 흐릅니다.

"생각한 것보다 더욱 잘한 일이에요."

그리고 네 명의 소년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첼시가 이기자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가 됩니다.

2013년 지식채널e 시청자 UCC공모전 대상을 받은 '소년의 밤'이라는 작품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방황하는 10대라는 타이틀을 걸고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친구는 어쩌면 그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대상, 그 이상으로 힘이 되는 존재입니다.

'친구란 같이 웃어줄 사람, 같이 울어줄 사람, 같이 싸워줄 사람. 친구란 가장 귀한 재산이고 지극한 기쁨이며 애정으로 포장하고 완벽으로 줄을 맨 친구란 하늘로부터의 선물 - U. 샤퍼'

짧은 생애를 세월호에서 마감한 아이들에게도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등이 되어주고, 보듬을 수 있는 품이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슴에 안고 새겼던 친구들의 추억과 우정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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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7반 성민재 있는 듯 없는 듯 진심을 다하며 결정적일 때 도움을 주는 ‘울라프’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친구들은 민재에게 우직한 해결사 ‘크리스토프’를 닮았다고 했다 ⓒ 굿플러스북


착한 올라프, 듬직한 크리스토프 '민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사람 '올라프'를 좋아했던 민재(단원고 2학년 7반 성민재). 민재는 있는 듯 없는 듯 진심을 다하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올라프'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민재에게 우직한 해결사 '크리스토프'를 닮았다고 했지요.

회장선거에 나간 친구 성현이를 위해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섰고 결국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브레인이었답니다. 친구들과의 섬 여행도 앞장서서 이끌고, 졸업하는 날에는 '함께 세계여행 가자'며 계획도 세웠던 민재는 친구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다고 해요.

어느 날,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중학교 친구집에 놀러갔었는데요. 복지사가 놓고 간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답니다. 그날 밤 민재는 자신의 용돈과 아빠에게 애교를 부려 받아낸 돈으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친구의 옷을 사서 갖다 줬다고 해요. 참 따뜻하고 착한 올라프죠.

민재가 수학여행 가기 전, 엄마에게 보고 싶을 때 들으라며 주고 간 노래가 있데요. 이승철의 '그 사람'인데요. 엄마는 친구들에게도 참 따뜻했던 민재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준 노래를 늘 듣는다고 해요.

'그 사람 지울 수 없는데 / 그 사람 잊을 수 없는데
그 사람 내 숨 같은 사람 / 그런 사람이 떠나가네요
그 사람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 /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아
사랑했고 또 사랑해서 /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아 내 사랑아
내 가슴 너덜 거린데도 / 그 추억 날을 세워 찔러도
그 사람 흘릴 눈물이 / 나를 더욱 더 아프게 하네요
눈물 대신 슬픔 대신 /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아줘 내 사랑아
우리 삶이 다해서 / 우리 두 눈 감을 때 / 그때 한번 기억해
그 사람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 /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아
사랑했고 또 사랑해서 /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아
- 이승철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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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깊은 유림이 ‘중2병’을 앓는 친구들을 보듬어주는 유림이는 따뜻하고 속 깊은 아이여서 좀 서운하게 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진심을 전했던 친구였지요. ⓒ 굿플러스북


유림아, 잊지 않고 꼭 기억할게

친구들이 생각하는 유림이(단원고 2학년 2반 허유림)는 '4차원 소녀'라고 해요. 친구가 차고 있는 팔찌가 예쁘면 '팔찌'하고 단답형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던 유림이는 신발도 특이한 것을 즐겨 신고 독특한 걸 좋아하는 소녀였답니다. '중2병'을 앓는 친구들을 보듬어주는 유림이는 따뜻하고 속 깊은 아이여서 좀 서운하게 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진심을 전했다고 해요. 

'지유야, 나 유림이야. 우리 틱틱이! 내가 놀리거나 장난쳤을 때 너의 반응이 신경 쓰여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놀리는 건 진심이 없다는 거 알지? 네가 울 때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했어. 그래도 울지 마라. 힘들면 얘기해. 같이 고민 들어줄 수 있어. 우리 꼭 공동체 같은 거 알아? 어디 갈 때 꼭 넷이 가잖아. 지유야 힘들어하지 말고 울지 마. 좋아함 권지유♥혜은이랑 다솜이도.'

카톡방에서 혹시라도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생기면 먼저 나서서 챙겨주고 배려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친구들은 방과 후 활동으로 '보컬트레이닝' 동아리에 함께했는데요. 굉장히 높은 키인 빅마마의 '체념'을 멋지게 소화한 유림이를 보고 놀랐다고 해요.

'행복했어, 너와의 시간들. 아마도 너는 힘들었겠지. 너의 마음을 몰랐던 건 아니야. 나도 느꼈었지만 널 보내는 게, 널 떠나보내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아. (중략)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야.'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친구들은 재미있고 의리 있던 유림이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해요.

중학교 단짝이었던 세 명의 유림이 친구들은 사고 직후, 팽목항까지 내려가서 유림이를 추억했습니다. 소외된 친구들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힘든 친구들을 다독여주던 유림이와의 우정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중학교 친구들은 네 개의 반지를 맞췄답니다.

'Don't / forgot / to / remember'.

반지에 한 단어씩 새겨 넣고 유림이 반지는 납골함 안에 넣었어요. 남겨진 세 친구들은 유림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늘 반지를 끼고 다닙니다.

'안녕 유림아, 여전히 집에 가는 길엔 너의 학교가 보이고 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이제는 너의 생각도 알 수가 없고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눌 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지만... 잘 지내고 있지? 꾸준히 생각하고 기억해 주는 게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보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모아 뒀다가 나중에 만나면 그때 말해 줄게. 좋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어. 많이 보고 싶다.' - 단원중 동창 권지유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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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연극반에 우정을 새기고 간 경미 조용조용한 성격에 꾸미지 않은 외모 때문에 배우와는 무관할 것이라는 생각을 깨고 도전한 오디션에서 경미는 합격했고 연극반 일원이 됐죠. ⓒ 굿플러스북


단원고 연극반의 열정과 우정을 새기고 간 경미

누구나 한번쯤 마음 속에서라도 꿈꿔본 직업이 배우가 아닐까 싶어요. 연극 무대에 서서 자신이 아닌 다른이의 인생을 경험한다는 거, 정말 멋진 일이죠. 고등학교 연극반은 그 꿈을 현실에서 만들고 싶던 아이들의 특별한 동아리죠. 말수도 적고 몸 치장에 별 관심이 없던 경미(단원고 2학년 9반 오경미)는 단원고 연극반에서 연극배우의 꿈을 키웠던 아이였어요.

조용조용한 성격에 꾸미지 않은 외모 때문에 배우와는 무관할 것이라는 생각을 깨고 도전한 오디션에서 경미는 합격했고 연극반 일원이 됐죠. 하지만 말끝을 흐리고 깍듯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음엔 선배들로부터 오해도 받았다고 해요. 경미도 선배들 앞에서 싹싹하게 구는 일이 수학문제 푸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니 말이죠. 나중에야 선배들은 경미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걸 이해했고 경미도 잘 적응했다고 합니다.

경미가 배우에 도전하게 된 첫 작품은 <일등급 인간>이었답니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같은 작품인데요. 거기에서 경미는 인간의 등급을 올려주는 인간개조회사 사장 배역을 맡았다고 해요. 늘 바지만 입고 다니던 자신에게 사장 배역은 정말 딱 맞다고 생각했다는 군요.

무대에 선다는 것은 녹록지 않았어요. 걸어 나오는 동선부터 발목이 잡히는 거예요.

"걷는 게 이상해 나갔다 다시 들어와."

연출 선생님의 지적은 계속됐고 다른 배역을 맡은 아이들도 고단한 연습에 힘들어 했어요. 거기다가 경미는 술주정뱅이 회사원으로 등장하는 극 중 광고 주인공으로 1인 2역을 해야만 했다는 군요. 술 취해본 적 없는 경미는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지요.

"술 취한 사람은 그렇게 걷지 않아."
"눈을 더 게슴츠레 뜨고!"

연습에 연습이 계속되면서 아이들이 지쳐가던 어느 일요일, 연출 선생님은 야외무대가 있는 동막골로 가자고 제안하셨죠. 소품과 세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핑계였지만 선생님은 연습으로 지친 아이들에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거지요.

오랜만에 야외에서 신나게 놀던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직접 삼겹살을 구워주셨다고 해요. 옆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싱싱한 채소를 얻어와 쌈도 싸먹고 정말 배불리 먹었던 연극반 아이들.

그런데 정말 재미난 일이 있었데요. 이웃 농장 아저씨가 "예술을 하려면 요 맛도 좀 알아야지, 자, 조금씩 맛만 봐라"하시고는 막걸리 한 잔을 따라 놓으신 거예요. 그걸 경미가 제일 먼저 마시고 아이들이 차례로 한 모금씩 마시며 한 순배 돌았는데 다시 경미가 한 모금 꿀꺽 들이키고는 "캬아아" 소리까지 내더랍니다.

그리고는 연거푸 몇 입 더 마시더니 일어나서는 비틀거리며 춤을 추듯이 걸어가더래요.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지요. 그리고 나서 경미는 술주정뱅이 연기를 실감나게 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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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한 첫 작품은 <일등급 인간> 경미는 인간의 등급을 올려주는 인간개조회사 사장 배역을 맡았는데 늘 바지만 입고 다니던 자신에게 사장 배역은 정말 딱 맞는다고 생각했데요, ⓒ 굿플러스북


드디어 안산청소년연극제 무대에 서는 날, 분장을 해주던 선배들이 경미를 보면서 말했데요.

"너 내년에 머리 기르고 다른 역할 해 봐. 이거 봐, 너 되게 예뻐."

경미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싱긋 웃어 주었다는 군요. 선배 말대로 내년에는 긴 머리 주인공 역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 말이에요.

경미가 첫 도전한 연극은 '안산청소년연극제 금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단원고 연극반에게 안겨 주었지요. 주인공 역할을 멋지게 보여준 같은 반 다인(단원고 2학년 9반 편다인)이도 뮤지컬배우의 꿈을 이룬 것처럼 무척 기뻐했다고 해요.

경미를 통해서 들여다본 단원고 연극반은 청소년시절을 누구보다 알차게 지내는 것 같아요. 연극반 아이들과 단단하게 엮어왔던 열정과 우정을 추억하며 경미는 다인이와 함께 별이 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지도 모르겠어요. 경미야, 잘 지내고 있지? 넌 정말 멋진 배우였어!

* 이 기사는 '단원고약전'(관련 스토리펀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약전을 집필해주신 단원고약전작가단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도서 구입이 어려운 작은도서관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했으며 목표치 달성으로 전국 100곳의 작은도서관에 보낼 예정입니다. 이 기사는 펀딩에 게재된 기사이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단원고약전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국의 공공도서관에도 비치될 수 있도록 오마이뉴스에 다시 한번 게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단원고약전 #잊지말자 416 #친구와 우정 #세월호 진상규명 #단원고약전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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