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것

헬렌 피어슨의 <라이프 프로젝트>를 읽고

등록 2017.06.13 14:29수정 2017.06.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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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표지 헬렌 피어슨의 〈라이프 프로젝트〉 ⓒ 와이즈베리

사다리가 걷어차인 세상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예전엔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희박해 보이는 세상이죠. 문재인 대통령도 경제민주화를 위해, 부와 계층의 편중을 해소하고자 열심히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양극화가 손쉽게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죠.

사회적 계층의 쏠림은 대물림된다는 게 통계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7만 명의 아이들을 70년간 추적한 지상 최대의 인간 연구 보고서가 나온 바 있습니다. 그 보고서는 한 세대의 아이들을 출생부터 죽음까지 추적한 종단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영국의 과학자들이 1946년 3월 한 도시에서 태어난 5,362명의 아이들을 시작으로, 1958년 1만7,415명의 아이들, 1970년 1만7287명, 1991년 1만4,062명, 2000년 1만9,519명의 아이들 출생 정보, 키와 건강, 지능과 학교성적, 사회적 계급, 성인이 된 후의 직업과 소득을 관찰하고 기록한 보고서입니다.

"출생 코호트 연구로 인해 밝혀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생의 첫 몇 년이 나머지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좋은 직업을 얻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간단히 말해, 부모의 처지가 자녀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1946년에 태어난 아이들이나 2000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나 똑같이 해당하는 이야기다."(들어가는 글)

헬렌 피어슨의 <라이프 프로젝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그녀가 '출생 코호트 연구자들', 다시 말해 한 세대의 아이들을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추적하는 종단연구자들을 4년 동안 만나 진행한 150건의 인터뷰에 근거해 쓴 것입니다.

물론 그들과의 인터뷰 외에도 학술지나 신문기사 혹은 다른 연구논문들도 광범위하게 참조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적 계층이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각각의 세대를 아우르고 있는 1946년 출생의 코호트, 1958년의 코호트, 1970년의 코호트, 1991년의 코호트, 그리고 2000년의 코호트 연구에 대한 보고내용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1958년의 코호트는 어떤 이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지, 다시 말해 불리한 인생의 출발 속에서도 역전된 중년기와 노년기를 맞이한 그 요인에 대해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1958년 코호트는 어떤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아이들이 온갖 고생을 하다 실패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데, 그에 따른 가장 큰 특징을 '유년기의 자제력'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70년 코호트는 어떨까요? 그 연구를 지휘한 엘리스 설리번은 어떻게 사회적 계급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지, 어떻게 최상위 사회계급과 최고의 직업과 최고의 소득을 얻게 되었는지, 그것을 사립학교와 명문대학과 연계하여 살펴봤다고 알려줍니다.

"그 결과로 얻은 수치들을 처리해봤더니, 흥미로우면서도 복잡한 그림이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남성들의 경우, 사립학교와 출세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었다. 때문에 가족 배경과 시험 성적이 똑같더라도 사립학교 출신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립학교의 남학생들은 유력한 동문들과의 인맥 덕분에 출세에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엔 중고등학교보다는 대학을 어떤 곳으로 진학하느냐가 큰 영향을 미쳤다."(361쪽)

이상과 같은 코호트 연구가 궁극적으로 말해 주는 게 무엇일까요? 가난한 환경 속에 자라난 아이들보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사회적인 높은 지휘와 계층에 설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더 많다는 점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설 수 있는 뜻이겠죠. 그것이 곧 사회적인 부와 계층의 대물림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아주 놀라운 결과 보고서가 하나 있었습니다. 2005년에 경제학자 블랜든이 빈곤층 아이들 가운데 고학력자가 된 요인을 조사하기 위해 1970년 코호트의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이 그것이라고 하죠. 이른바 빈곤층에 태어났어도 충분한 동기와 지원만 있으면 언제든 위로 올라 설 수 있다는 발표였습니다.

"그녀의 보고서 <대세를 거슬러(Bucking the Trend)>는 어린 시절 부모의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예를 들어, 5살에 부모가 책을 읽어주고 10살에 부모가 교육에 관심을 보여주면 그 아이는 30살이 됐을 때 빈곤에 시달릴 확률이 현저히 낮았다."(260쪽)

이와 같은 코호트 연구가 발표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아무리 빈곤층의 흙수저 인생 속에 태어났다 해도, 부모의 따뜻한 격려와 교육 열정이 있으면 그 아이는 불행한 인생궤도를 벗어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겠죠.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이혼하는 가정이 많은 이 때에 자라나는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 땅의 부모들이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야말로 사회적인 계층의 쏠림과 대물림 현상이 가속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비단 영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개선해보고자 대통령도 발 벗고 나서고 있는데, 그에 따른 사회적인 합의가 온전히 이뤄질 때에만 가능하리라 봅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죠. 인생의 목적을 사회적 계층 이동과 소득의 증가에만 두기보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가치를 올바르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 말입니다. 그런 점은 이 책에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아무쪼록 열악한 흙수저 인생을 안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부모의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라이프 프로젝트 -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헬렌 피어슨 지음, 이영아 옮김,
와이즈베리, 2017


#경제 민주화 #라이프 프로젝트 #코호트 연구 #부모의 격려와 교육열정 #사회적 계층의 쏠림과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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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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