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놀이가 훨씬 좋아

[시골 아버지 살림노래] 선물이란, 육아란 무엇일까

등록 2017.06.12 16:53수정 2017.06.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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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육아일기)를 적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었다면, 아이들이 제법 큰 요즈음은 아이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아이랑 고맙게 배우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와 지내는 나날은 '육아일기'보다는 '살림노래'가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배우고 누리는 나날이라는 마음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공책에 짤막하게 적어 놓는 살림노래를 이웃님과 나누면서 '살림하며 새로 배우는 기쁨'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글쓴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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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좋은 아이들하고 지내는 삶을 돌아봅니다. ⓒ 최종규


밥보다 훨씬 좋아

지난주에 두 아이를 이끌고 일산에 있는 이모네 집에 찾아가서 하룻밤 묵었지요. 이동안 두 아이는 그야말로 기운차레 놀았어요. 작은아이는 '우리 집에 없는 온갖 플라스틱 자동차 장난감'에 꽂혀서 밥을 멀리한 채 놀이에 빠져들고요. 일곱 살 작은아이는 스스로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밥은 굶어도 좋다'는 길을 골라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오늘 즐겁게 누릴 놀이는 '장난감 자동차'이기 때문에 이를 실컷 누려 보도록 풀어놓습니다. 일곱 살 아이한테 많이 작은 장난감 자동차에 이 아이는 몸을 구기면서 앉아서 해사하게 웃습니다.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아주 신이 납니다. 이 아이 마음속에는 이토록 멋진 장난감 자동차가 눈앞에 있을 뿐 아니라, 두 살 조카는 아직 이 장난감 자동차를 어떻게 몰거나 탈 줄 모르니, 오직 혼자 차지하며 실컷 누릴 수 있어요. 타고 끌고 내리고 타고 끌고 내리고 …… 이를 몇 시간이고 해도 지치거나 따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다시 이끌고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조용히 얘기해 보았어요.

"이모네에 있는 장난감은 모두 플라스틱이야."
"알아."
"알아도 그게 그렇게 재미있지?"
"응. 그렇지만 내가 앞으로 만들 장난감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나무야."
"그래, 네가 앞으로 플라스틱이 없는 새롭고 멋진 자동차를 지어 보렴. 달리는 자동차뿐 아니라 나는 자동차도, 또 장난감 자동차도."
"응, 내가 만들 자동차는 바퀴가 없어도 달리고 날 있는 자동차야."


즐거움을 누린 뒤에는 꿈을 꾸고, 이 꿈을 꾸면서 새롭게 거듭나거나 피어나는 마음이 된다면 넉넉하겠지요. 우리는 모두 아장아장 걸음을 내딛으면서 함께 배우고 자라는 사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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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네 집에서 이모네 아기가 갖고 노는 장난감에 꽂힌 작은아이. ⓒ 최종규


아이를 키우는 길

아이를 키우는 길이란 무엇인가 하고 되새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 우리한테 찾아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키우는 길'이란 늘 하나라고 생각해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살림을 슬기롭게 짓자는 생각으로 아이들하고 살아갑니다. 아이를 키운다기보다는 아이한테 살림을 물려줍니다. 아이를 돌본다기보다는 아이하고 살림을 차근차근 새롭게 짓습니다. 아이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아이하고 살림을 새로 짓는 길을 함께 배우고 같이 익히면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사회에서는 흔히 '아이키우기(육아)'라는 말을 쓰는데, 저희가 저희 보금자리에서 이제껏 살아온 나날을 되새기면, 지난 하루하루는 언제나 '배움짓기(살림짓기)'였구나 싶어요. 아이하고 즐거이 배울 살림을 찾아나서는 길이었어요. 아이하고 기쁘게 배울 사랑을 스스로 찾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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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조용 흐르는 마음을 읽는 '아이와 누리는 살림'이에요. ⓒ 최종규


사는 보람

어버이로 사는 보람이라면 바로 '웃음'이지 싶습니다. 곁님하고 짓는 즐거움이라면 이때에도 웃음이지 싶어요. 글을 쓰거나 책을 짓거나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는 기쁨도 언제나 웃음으로 드러나고요. 사진 한 장을 찍는 자리에서도 웃음을 담거나 느끼거나 나눌 수 있기에 꾸준하게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지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는 어버이 기운은 어디에서 샘솟나 하고 돌아보면, 이때에도 웃음이로구나 싶어요. 즐거이 웃으면서 먹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기에 어버이는 늘 보람을 누려요. 사는 보람을 누리지요. 책상을 짜거나 평상을 짤 적에도, 짐을 바리바리 들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도, 밤에 잠자리에 들 적에도 새삼스레 웃음꽃을 가슴에 품으면서 흐뭇합니다.

기다림

아버지가 서울에서 바깥일을 보고 사흘 만에 돌아오니, 두 아이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이것저것 했다고 참새처럼 노래합니다. 이 노랫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차리고, 이 노랫소리를 헤아리며 잠자리에 들어요. 이 노랫소리를 그리며 새 아침을 열고, 이 노랫소리를 새롭게 지필 살림을 떠올리며 빨래부터 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글을 쓸 적에는 어떤 새로운 길을 걸으며 배우는가 하고 설렙니다. 나날이 자라는 아이들 곁에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이끄는 살림에서는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새삼스레 깨닫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함께 지필 수 있는 불씨이기에 기다릴 테지요. 함께 따뜻하게 쬘 불이기에 기다리면서 즐거울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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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쥔 숟가락에 얹힌 메추리알 ⓒ 최종규


네 손에는

네 손에 쥔 숟가락에 메추리알 하나. 메추리알은 간장 국물에 담겨 펄펄 끓는 동안 겉이 가무스름하게 옷을 입는데 속은 그예 노랗구나. 한입 살짝 베어물어 속을 들여다보고는 "이것 봐! 속은 아직 노래!" 하고 신나서 소리를 치네. 네 작은 한입처럼 너희 어머니랑 아버지도 어릴 적에 메추리알을 야금야금 베었고 속은 아직 노란 빛깔이 감돌아 참 재미있네 하고 느꼈지. 네 손에는 오래된 어제가 담겼고, 네 손에는 새로운 오늘이 흐르며, 네 손에는 눈부신 모레가 자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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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마음이지 싶습니다. ⓒ 최종규


선물이란

지난주에 두 아이를 이끌고 이모네 집에 찾아가서 큰아이하고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아이들아, 선물이란 무엇인지 아니?"
"음, 좋은 거?"
"좋은 거는 뭘까?"
"받으면 즐거운 거?"
"받으면 즐거운 거는 뭘까?"
"음, 받고 싶었던 거?"
"받고 싶었던 거는 뭘까?"
"음, 잘 모르겠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서로 마음으로 만나도록 사랑을 담으면 모두 선물이 돼. 따스한 말 한 마디가 선물이 되지.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을 그림으로 하나 그려서 주면 그 그림도 선물이 되고. 이모 좋지?"
"응."
"자, 그러면 이모한테 그림을 하나씩 그려서 선물해 보자."
"알았어. 좋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살림노래 #아이키우기 #아버지 육아일기 #삶노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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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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