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누나가 꼭 데뷔시켜 줄게"... 국민 프로듀서들이 '극성'된 이유

[기획] 11픽→2픽→1픽... 이변 속출 <프로듀스101> 시즌2의 과열 현상

17.06.13 10:29최종업데이트17.06.14 11:41
원고료로 응원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 ⓒ CJ E&M


국민 프로듀서들의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다. 종영까지 단 1회만을 남겨두고도 요동을 치고 있는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아래 <프듀2>) 순위 때문이다. 첫 방송 이래 데뷔권(11위권) 밖을 넘은 적 없던 주학년(크래커)과 라이관린(큐브)은 각각 18위와 20위로 간신히 방출을 모면했고, 20위권에만 머물러 최종 생방송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하성운(아더앤에이블)은 3위로 껑충 뛰었다. 두 번째 순위 발표식에서 1위를 차지했던 김종현(플레디스)은 7위로 내려앉고, 8위였던 강다니엘(MMO)은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변이 속출했다.

'국민 보이그룹'으로 데뷔할 자격을 갖게 되는 건 오직 11명. 보통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우승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종영까지 단 한 회만을 남긴 <프듀2>는 누구도 데뷔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11픽에서 2픽으로, 다시 1픽으로 바뀐 투표 룰 때문. 그동안 여러 연습생 팬들이 '견제픽'(응원하는 연습생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경쟁 상대인 타 인기 연습생을 배제하는 투표)을 하는 게 아니냐던 의혹이 순위로 증명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투표는 1인 1픽. 그동안은 '덜 견제 받는 연습생'에게 유리한 룰이었다면, 마지막은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연습생'에게 유리한 룰. 지금까지 '1픽'으로 투표가 진행된 적이 없어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프듀2> 신드롬급 인기... 주축은 20대 여성팬들

<프로듀스101 시즌2> 파이널 콘서트 예매자 비율. ⓒ 예스24 홈페이지 캡처

시즌1의 인기가 뜨거운 '열풍'이었다면, <프듀2>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급이다. <프듀2>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여자 연습생의 이야기는 남녀 시청자 모두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지만, 남자 연습생들의 이야기는 남자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프듀2>는 <프듀1>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던 세간의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한 점은 '남자 팬 100명 몫을 하는 여성 팬들'의 적극성이었다.

최근 순식간에 매진돼 120만 원대(정가 7만 7천 원) 암표까지 등장한 <프듀2> 파이널 콘서트 티켓의 예매 현황을 보면 구매자의 84.4%가 여성이고, 연령대로 보면 20대가 56.9%를 차지하고 있어 누가 <프듀2>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그저 TV를 시청하고, 호감 가는 연습생에게 투표 정도 하는 남자 국민 프로듀서들과 다르다. 대부분 10대 시절부터 아이돌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이들로,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지를 잘 안다. 자신이 미는 연습생의 데뷔를 위해 매일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계정까지 동원해 투표하는 건 기본. '내 새끼'(응원하는 연습생)가 더 많은 국민 프로듀서들의 눈에 들 수 있도록, 예쁘게 편집된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 이곳저곳에 퍼트리며 '선거 운동'을 한다.

<프듀2> 팬들의 적극성은 투표에서도 드러난다. 아직 <프듀2>가 종료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누적 투표수는 시즌1 총투표수의 3배를 넘어섰다. 11픽인 두 번째 순위 발표에서 시즌1 김세정은 147만 3685표를 받고 1위를 차지했지만, 시즌2 김종현(플레디스)은 1위를 차지하기 위해 279만 5491표를 얻어야 했다.

지하철역마다 도배된 '프듀' 응원 광고

지하철 역사를 가득 채운 프로듀스 101 팬들의 응원 광고. ⓒ 온라인 커뮤니티


선거 운동은 오프라인까지 넘어왔다. 지하철 역사 전광판, 버스 광고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는 "OOO에게 투표해달라"는 광고가 설치됐고, 모 여대에는 "OO여대 프로듀서님, OOO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힌 조공까지 등장했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비용이 들지만, 한껏 달아오른 팬덤에 이 정도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지갑 여는 일을 별로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팬들의 광고를 직접 찾아 감사함을 전하는 연습생들의 '인증'이 이어지자, '내 새끼만 소외시킬 수 없다'는 팬들의 경쟁 심리는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서울 강남역, 홍대입구역, 신촌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에는 여지없이 '프듀' 연습생 응원 광고가 설치돼 있다.

<프로듀스 101 시즌2>의 주 시청층인 20대 여성들이 모여있는 서울의 한 여대에는 '한 표'를 부탁하는 연습생 팬들의 이벤트가 한창이다. ⓒ 독자 제보


'내 새끼 데뷔'를 위한 팬들의 간절함에서 시작된 열기는, 작은 변수 하나에도 순위가 요동치자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팬들의 신경전과 전략? 전술 또한 치밀해졌다. 조직적으로 상대 연습생의 부정행위를 폭로하거나 비방 댓글을 다는 '네거티브', '악마의 편집'과 루머에 대응하는 '여론전', 기자들을 대상으로 '언론 대응'까지. 카카오톡 비밀 채팅 기능을 이용해 '가짜 뉴스'와 '가짜 여론'까지 생성까지 한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기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뒤지지 않는다. 같은 <프듀2> 팬들끼리도 다른 연습생 팬들의 극성스러움을 '정치질'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어느 팬덤 하나 잠잠한 곳이 없다. 모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일 뿐이다.

사실 아이돌 팬덤에서 지하철·버스 광고, 적극적인 투표, 온라인 영업, 언론 대응 등은 흔한 일이다. 다만 <프듀2>가 화제인 이유는, 아직 정식 데뷔 전인 연습생들에게 이런 '열성 팬덤'이 생겼기 때문. 하지만 '어떤 분야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는 '데뷔'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프듀2>의 연습생들은 이미 데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100% 국민 프로듀서들의 투표에 의해 데뷔가 결정된다'는 <프듀>의 틀은, 누가 가장 빠르고 큰 팬덤을 구축하느냐를 보고 데뷔시켜주겠다는 뜻과 다름없다. 여기에 '어쩌면 <프듀2>가 내 새끼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간절함, 고만고만한 규모의 팬덤끼리 부딪치면서 생긴 경쟁 심리까지. 팬덤이 극성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팬덤 부추기는 <프듀>, 흔들리지 말자

1차, 2차, 3차 투표 순위. 강다니엘, 김종현, 박지훈, 옹성우, 이대휘, 황민현 연습생(가나다순)이 고정적으로 11위에 안착해있다. ⓒ CJ E&M


여기에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하기 위해, 팬들의 신경전과 여러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초반부터 '견제픽'을 걱정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았는데도, 3차 투표에서 2픽을 허용한다든가(시즌1은 3차 투표부터 1픽이 시작됐다), 마지막 생방송에서 공연 평가를 통한 베네핏(가산 표)를 주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가 반발 여론에 부딪히자 입장을 바꾸는 등, 한껏 날카로워진 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에 3차 투표가 한창이던 9회 마지막에 12위인 황민현(플레디스)의 순위만 공개하면서 팬들의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첫 2픽 투표였기 때문에, '견제픽'을 누구에게 줄지 고민하던 많은 국민 프로듀서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셈이라, 팬들의 짜증은 한껏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11위까지 데뷔할 수 있는 만큼, 데뷔 커트라인인 12위 연습생만 공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20위 밖 연습생들이 방출되는 투표였으니만큼, 제작진의 설명은 어쩐지 옹색하게만 느껴졌다. 여기에 이른바 '피디픽'이라 불리는 몇몇 연습생에게 편중된 방송 분량에, 팬들의 응원은 점점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라는 결사 항전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같은 팬들의 간절함이, 대다수 일반 대중에게는 피로감을 준다는 데 있다. 정제되지 않은 폭로와 싸움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때로는 기사를 타고 대중에게 전해지면서, 대다수 일반 대중들은 프로그램 자체는 물론, 연습생에게까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아직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지겹다'라는 이미지만큼 나쁜 게 또 있을까.

Mnet은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악마의 편집'이든, '분량 몰방'이든, Mnet의 의도는 프로그램의 재미와 인기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팬들이 제작진의 부추김에 들썩여 과도한 응원전을 펼친다면, 결국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이 가장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데뷔'가 지상 최대의 과제처럼 느껴지겠지만, 진짜 승부는 데뷔 이후다. 뉴이스트, 핫샷, 오프로드, 탑독, 원펀치 등 이미 데뷔해 앨범까지 내고도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해 다시 연습생이 된 소년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아이돌의 세계는 <프듀2>보다 훨씬 험난하고 치열하다. 소수의 극성 팬덤으로는 아이돌의 생명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화나고 치사해도 어쩌겠는가. 팬들은 언제나 죄인인 것을. 내가 사랑하는 연습생의 '꽃길'을 위해, 내 새끼의 이미지를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프로듀스 101 프듀 10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