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블라우스 입고 <노무현입니다> 본 '추다르크'

추미애 대표, 자연인과 정치인의 사이에서... "성공하는 정부 만들어야죠"

등록 2017.06.17 14:59수정 2017.06.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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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 김성욱


금요일 저녁 여의도에 추미애 대표가 나타났다. 엄숙한 국회 당대표실이 아니라 영화관에서였다. 오전 공식행사 때 입고 있던 파란색 재킷 대신 핑크빛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몰의 한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했다. 두 시간여 런닝 타임이 지나고 추 대표는 한동안 허공을 응시한 채 자리를 지켰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잠시 눈가를 닦기도 했다.

"노무현 시대가 올까요... 부분이요. 수많은 애도의 사람들, 그분들이 정말 대통령의 사람이구나 했던 거요. 대통령께서 노무현 시대가 올까요... 반문하시고 '그런 시대가 온다면 내가 없어도 되지 뭐'라고... 지금 이제 3기 민주정부가 됐잖아요. 그게 참 무겁고... 유시민 (전) 장관 말 멋있더라구요. 목적지까진 못 가겠지만 그 다음 파도가 계속 오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을 몰랐던 분들의 마음, 대통령 묘소를 아이들 손잡고 찾아간 그 마음이, 그 시대를 염원하는 마음이, 대통령께서 이루고자 했던 꿈이고. 거기에 미안함과 동시에 참으로 안타까운 게 있어서..."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티타임에 소감을 묻자 추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련한 정치 리더로서 강단 있고 단호하던 평소 모습과 달리 그녀의 말은 툭툭 끊겼다.

"차들 마시면서 해요."

아, 티타임이지만 아무도 '티(Tea)'를 마시진 않는다. 20명 남짓한 기자들은 좁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트북을 꺼내고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놓칠세라 받아 치기 바쁘다. 거대한 카메라들은 그녀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린다. 눈 주위로 손이라도 올라가면 특히나 더더욱. 탁자에 놓인 핸드폰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그녀가 이를 모를 리는 없다. 그녀는 5선 의원이니까. 아니, 애초에 언론인들을 초청한 건 그녀였다. 금요일 저녁을 즐기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은 이 광경을 잠시 신기하게 쳐다보다 각자의 길을 간다.

노무현과 추미애,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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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 김성욱


"구체제 타파를 위해 통합이 필요하니까 절대 나누기하고 깨면 안 된다, 분열하면 안 된다는 거였는데,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 지점으로 다시 돌려놓는다고 해도 통합해야 한다면서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있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은 있었죠. (중략) 저는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당의 진로에 대해 (노 대통령) 탄핵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막아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고 탄핵으로 결론이 났을 땐 당을 이끌고 관리해야 하는, 샌드위치 같은 입장이었죠."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다. 더욱이 추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묘하다. 추 대표는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에 가담한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녀는 당이 쪼개질 때 노 전 대통령이 지지한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새천년민주당 쪽에 남았고, 처음엔 탄핵에 반대했지만 결국 탄핵 당론에 찬성했다. 추 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같은 해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의 참패와 함께 낙선했고, 곧장 미국으로 떠난다. 13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노 전 대통령 '친구'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여당 대표가 됐다.

"이후 인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소통할 기회가 없는 거예요. 정치적으로 관심 받고 다 노출이 되기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찾아 뵈려고 했었어요. (중략) 제가 이제... 내려가면서... 조문하러 내려가면서, '봉하에 가서 뵙자고 한 게 일주일 전이었는데' 하면서 후회가 됐어요."

그녀의 표정은 영화가 끝난 뒤 넋을 잃었던 표정 그대로 다시 돌아가있었다.

'삼천포로 빠지는 엄마'와 '추다르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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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 김성욱


"(미국에서) 이제 겨우 집 얻어서 아이들하고 살면서, 그전엔 제가 반찬 한번 만들어준 적 없고 학교 갔다 오면 따뜻한 밥 한번 차려준 적 없었는데, 엄마가 하루 종일 아침도 해서 먹여 보내고, 제가 그때 반찬도 다 만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우리 아이들이 엄마도 이런 것 할 줄 아는지 처음 알았대요. 엄마 맞네, 이러고(웃음)."

미국 생활 시절을 회상하면서 추 대표는 '엄마'로서의 자신을 술술 드러냈다.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추다르크(잔다르크의 이름을 딴 추 대표의 오랜 별명이다)' 이미지가 익숙한 이들에겐 낯선 풍경이다.

그녀는 노무현 시대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 분(노 전 대통령)은 사실 제 감정과 비슷해요. (중략) 영화에서 대통령이 중학생 때 분납금을 못 내서 뺨 맞았다고 나오잖아요. 저도 어린 시절, 초등학생 시절에 분납금 못 내서 수업 듣지 말고 집에 돌아가라고 하면 가방 싸서 집에 가버리고, 선생님이 사라는 교재도 안 사고. 저는 주산을 어린 시절에 배웠어요. 제가 여상 언니들 사이에 끼어서 3학년 때부터 주산을 배웠으니까, 5학년 땐 3급 시험을 볼 정도로요. 근데 5학년 때 선생님이 주산교재를 사라는 거예요. 근데 난 그 교재가 필요 없는 '선수'인데 사라고 하니깐, 살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사라고만 하는 교사 눈치를 보니까,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 내가 판사돼서 저런 사람 혼내주고 싶다, 그러면서 선생님에게 저항하고 책 집어 던지고 필요 없다고 하고 집으로 가고. (중략) 근데 무슨 얘기 하다가 삼천포로 빠졌지?"

하고 말이 새기도 했다. '정치인' 추미애가 아니라 '자연인' 추미애가 보이는 듯했다. 주말을 앞둔 저녁이라 그런가, 하는 찰나에 이어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첫 번째 '파도'가 목적지까지 못 가면 두 번째, 세 번째 파도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올 때마다 우린 파도를 타지 못했어요.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고 온 국민이 애도하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판판이 깨지고 졌잖아요. 이제, 이제는 <노무현입니다> 보고 눈물 흘리기만 해선 안 되겠죠. 지금 맞이한 이 기회가, 노무현 대통령이 '노무현 시대가 올까요'라고 하는데, '당신께서 바라는 시대가 이런 것입니다'라고 영정 앞에 바칠 수 있는 성공하는 정부를 만들어야죠."

라고 했다. 부드러웠던 그녀의 눈매는 다시 매서워지기 시작했고,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정부 탄생까진 모두가 열성적이었는데, 그 정부를 뒷받침하고 지키는 동력은 상실했었던 것이죠. 당도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 시정할 것은 시정할 능력을 갖고 울타리가 돼줘야 하는데, 그땐 손 놓고 분열했고, 무너졌던 것이죠. 그게 노무현 정부 실패의 원인입니다. 이제는 손 놓지 않을 겁니다."

목소리는 커졌다.

"협치를 얘기하고 있지만 지금 야당 주장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돼요? 얼마 없잖아요. 이게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여의도가 만들었어요? 아니에요. 국민이 만든 나라, 국민이 만든 기회잖아요. 근데 왜 발목 잡고 왜 국정공백을 못 메우게 하냐는 거죠. 빨리 일 좀 하게 해달라는 거죠."

어느새 그녀는 다시 영락없는 추다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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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여의도 IFC몰 CGV에서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 김성욱


#추미애 #노무현 #노무현입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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