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는 음식들이 입으로 오기까지

[숲책 읽기] 새 살림 말하는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등록 2017.06.23 14:44수정 2017.06.23 14:44
0
원고료로 응원
무엇을 먹느냐는 무엇을 하며 사느냐 하고 이어지지 싶습니다. 하루하루 매우 바쁘게 사는 사람은 손수 밥을 지어 먹을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밥을 손수 지어서 손수 차려 먹을 겨를에 다른 일을 하는 쪽이 보람이 있다고 여길 수 있어요. 밥짓기보다는 일이 더 뜻있거나 값있다고 여길 수 있지요.

이때에는 남이 지어서 차리는 밥을 사다가 먹기 마련입니다. 제법 커다란 회사에는 구내식당이 있고, 커다란 공공기관이나 회사 둘레에는 밥집이 무척 많아요. 일터에서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 손을 빌려서 사다 먹습니다. 많은 사람이 먹을 밥을 잔뜩 지어야 하는 일꾼(식당지기)은 날마다 엄청나게 많은 밥을 지어야 하니, 이 일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데에는 마음을 쏟기 어려워요.


a

겉그림 ⓒ 가지

밥짓기를 할 겨를이 없는 전문직 일꾼이 있고, 전문직 일꾼한테 밥을 차려서 주는 전문직 식당지기가 있습니다. 여기에 식당지기한테 밥감(식재료)을 대주는 일꾼이 있고, 땅에서 손수 먹을거리를 돌보아 거두는 일꾼이 있어요. 이들은 서로 만날 길이 없지만 늘 서로 이어집니다.

'수확이 한창 진행되는 시기에는 의료혜택이나 안전수칙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문으로는 '은폐된'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고도 했다. 노동자들이 장갑이나 다른 보호 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채 맨손으로 과일이나 채소를 따다가 피부질환이 생겨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모두 과일과 채소에 뿌린 농약과 다른 화학약품들 때문이다.'(52쪽)

'농약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기 때문에 음식에 남아 있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과 달리, 물로 씻거나 껍질을 벗겨도 잔류농약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잔류농약은 보통 과일과 채소 내부까지 깊숙히 스며들기 때문입니다.'(67쪽)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가지 펴냄)를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앤드류 웨이슬리 님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소비자 자리에 있는 이들이 잘 모르는 뒷모습을 차근차근 밝힙니다. 전문직으로 일하느라 막상 스스로 먹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여태껏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린 대목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가게에서 손쉽고 값싸게 살 수 있는 먹을거리가 누구 손으로 태어나는가를 보여줍니다. 도시에서 소비자가 손쉽고 값싸게 살 수 있는 먹을거리를 거두는 손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억눌리거나 짓밟힌 채 살아간다는 대목을 낱낱이 밝히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소비자는 무농약인가 저농약인가 친환경인가 유기농인가 자연농인가를 따지면 그만일 수 있지만,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는 아주 적은 일삯을 받고서 일할 뿐 아니라, 때로는 목숨을 잃고 때로는 두들겨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아주 아슬아슬한 터전에서 온갖 농약과 항생제와 화학약품에 둘러싸인 채 보호장비가 거의 없는 맨몸으로 일한다고 하지요.

a

속그림. 바나나 농장에서는 어떤 일이? ⓒ 가지


'미국은 정신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 대규모 기업식 농업의 고향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식품 회사 몇 곳의 근거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새롭고 더 급진적인 농부 집단이 종래의 기업식 농업에 저항하며 쟁기질을 시작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80쪽)

'육류의 생산 및 가공이 우리 삶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만약 당신이 공장형 축산 농장 근처에서 살고 있다면 매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고 실제로는 지구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85쪽)

가끔 방송에 잡힐 때가 아니면,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는 '공장형 축산 농장'이 어떤 모습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주 막혔어요. 단단히 틀어막지요. 사람들이 닭이나 달걀을 값싸게 사다 먹도록 하려고 닭을 어떻게 키워서 어떻게 죽이는가를 제대로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소나 돼지를 어떻게 키워서 어떻게 죽이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코기가 되어 주는 짐승만 빽빽히 갇힌 채 사료만 먹지 않아요. 곡식과 남새와 열매도 좁은 곳에 빽빽히 심어서 햇볕을 못 보는 채 비료와 농약을 먹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쌀은 논에서 해를 보고 바람을 마시지만, 웬만한 남새와 열매는 비닐집에 갇힌 채 해도 바람도 비도 모른 채 자라요. 공장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늘 고달프고, 공장 같은 농장에서 자라는 나무도 언제나 시달립니다.

a

속그림. 우리가 모르는, 아니 등돌린 곳에서는? ⓒ 가지


'콩, 특히 유전자조작 콩을 기업 규모로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살충제와 농약에 의존해야 한다. 환경운동가들은 공중 살포한 농약이 많은 농촌 지역에서 중요한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가축과 야생동물의 목숨을 빼앗으며, 토종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104쪽)

'젖소든 염소든 젖을 얻으려면 어미에게서 새끼를 떼어내야 합니다 …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대형 사육업체 중 단 한 곳에서만 염소를 방목해서 키웁니다.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산양유 대부분은 자연의 풀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공장식 축산 농장 안에서 자란 염소에게서 짜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0쪽)

사람들이 손수 먹을거리를 짓지 않는 살림을 잇는 동안에 사람들은 스스로 땅하고 멀어집니다. 전문직 일터가 커지는 동안 도시하고 시골은 자꾸 벌어지고, 쌀나무인지 고추나무인지 모르는 어른이 부쩍 늘어나요. 풀 한 포기조차 먹지 못한 채 젖만 내놓는 젖소가 많은 터라,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은 풀을 먹은 씩씩하고 튼튼한 소한테서 얻은 젖이 아닌, 사료와 항생제만 먹어대는 소한테서 뽑아낸 젖을 먹는 셈이지만, 이를 깊이 살필 틈이 없어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손수 밥짓기를 못하니, 땅짓기는 아예 엄두를 낼 수 없는 문명사회 터전입니다. 너무 바쁜 전문직에 몸을 담느라, 시골지기가 제대로 거둔 먹을거리인지 아닌지를 살필 틈이 없어요. 더 값싸면서 부피가 많은 먹을거리를 찾는 손길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대로 가도 될까요? 우리 사회는 이처럼 전문직 얼거리로 흘러도 좋을까요? 어느 땅에서 어떤 이웃이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어떤 일을 하여 거둔 먹을거리인지 하나도 모르는 채 더 값싼 것만 찾아도 즐거울까요? 우리가 사는 땅이 잔뜩 망가지면서 우리 이웃들이 모진 푸대접과 막대접에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안 쳐다보아도 아름다운 삶이 될 만할까요?

a

속그림 ⓒ 가지


a

닭은 어떤 곳에서 사는가? ⓒ 가지


'(소규모 전통) 농부들은 농약을 아예 쓰지 않거나 거의 뿌리지 않고 나무에 물도 거의 주지 않으면서 기계를 적게 사용해 올리브를 키운다. 땅에 떨어진 올리브를 손으로 수확해 맷돌이나 압착기로 갈아 기름을 짠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농가들은 이제 대량생산된 값싼 기름을 찾는 수요에 떠밀려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181쪽)

'영국에서 해마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수평아리 3000만∼4000만 마리가 독가스를 마셔서 죽거나 산 채로 전기분쇄기 속으로 던져져 목숨을 잃는다고 추산됩니다. 이는 '합법적인' 행위입니다. 사실 생명을 쓰레기 취급하는 이런 끔찍한 행위 없이 달걀 산업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187쪽)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라는 작은 책이 내놓을 수 있는 길은 아주 작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은 길이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 우리가 소비자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비자 자리에 서더라도 더 값싼 것이 아닌 제대로 된 것을 찾는 손길이 된다면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책하고 짝을 이루는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패션>은 옷을 둘러싸고 이 지구별이 얼마나 고단할 뿐 아니라, 큰 농장 일꾼은 얼마나 힘겨운가를 다룹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손수 겪어 보아야지 싶어요. 돈으로 사다가 먹기만 하는 살림을 넘어서 손수 지어서 먹어 보는 살림이 되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조그마한 마당이나 텃밭을 마련해서 우리 손으로 씨앗을 심어 거두는 길을 갈 수 있어야지 싶어요.

바쁘다는 말은 이제 접어야지 싶어요. 바쁜 쳇바퀴를 멈추고, 이웃하고 손을 맞잡으면서 기쁨을 나누는 길로 넘어갈 수 있어야지 싶어요. 바쁜 쳇바퀴에 갇힌 채 소비자로만 머물기보다는, 넉넉하게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새로운 살림을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a

속그림 ⓒ 가지


'네,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건강한 전통 빵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가 간단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입니다.' (191쪽)

'차든 커피든, 신선한 과일주스든 탄산음료든, 심지어 와인이나 맥주, 사과주이든지 간에 윤리적인 소비자라면 자신이 마시는 것들에 관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 있다.' (203쪽)

아이들하고 손수 빵을 구워서 먹어 보면 아이들은 빵맛이 다른 줄 압니다. 아이들하고 손수 밀반죽을 해서 국수를 삶아서 먹어 보면 아이들은 국수맛이 다른 줄 알아요. 아이들하고 우리 집 마당이나 밭에서 열매를 거두어 효소를 담그거나 그 자리에서 바로 깨물어 먹어 보면, 아이들은 바깥에서 사다 먹는 열매가 얼마나 밍밍한가를 온몸으로 알아요. 집에서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면서 함께 지은 밥이 가장 맛있는 줄 바로 아이들이 압니다.

a

속그림.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할까? ⓒ 가지


우리는 예부터 누구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였어요. 우리는 오늘날에도 누구나 소비자이면서 생산자가 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다 지을 수 있으면 아주 훌륭할 텐데, 아주 작은 것부터 손수 짓는 살림을 해 보면, 바로 이 작은 살림 하나가 사회를 바꾸는 밑힘이 되리라 봅니다.

빈터나 주차장을 텃밭이나 꽃밭으로 바꾸어 봐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익혀 봐요. 가게에서 사다 쓰기만 하는 삶을 가끔 멈추고 느긋하게 집에서 뚝딱뚝딱 두 손으로 지어 봐요. 우리는 모두 지음이(짓는 사람·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음님(짓는 님·생산자)이 될 수 있습니다. 손수 짓는 사람이 온누리를 바꿉니다.
덧붙이는 글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앤드류 웨이슬리 글 / 최윤희 옮김 / 가지 펴냄 / 2015.3.25. / 13500원)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푸드

앤드류 웨이슬리 지음, 최윤희 옮김,
도서출판 가지, 2015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앤드류 웨이슬리 #숲책 #환경책 #삶짓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