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차 사줘야지" 어머니가 주신 3만원에 눈물이 났다

치매 어머니의 '자식사랑' 기억은 마음에 새겨있었다

등록 2017.06.22 21:12수정 2017.06.2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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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자식 사랑'이라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셨던 치매 어머니를 기억해본다.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시는데 향기가 진동했다. 진한 꽃향기가 어머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에서 나는 것 같았다.


화장을 하시면서 스킨을 많이 사용하신 모양이다. 어머니가 화장하시며 외모를 가꾸시는 모습을 보면 머릿결도 가다듬고 갈색 눈썹, 그리고 파운데이션, 진한 빨강색 립스틱도 바르신다. 특히 머리는 스킨으로 향을 내기도 하신다. 아마 오늘은 스킨을 많이 사용하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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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처럼 순수한 어머니 모습 ⓒ 나관호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난, 화장이 좋아, 좋아."
"어머니, 예쁘세요. 귀엽기도 하시구요."
"머리 하얀 거, 싫어."


자세히 보니 눈썹 균형이 안 맞는다. 어머니는 출입구 앞 거울을 보며 머리를 꾹꾹 누르신다.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어머니의 눈썹을 고쳐드리며 말했다.

"어머니, 예쁘세요. 정말 예뻐요."
"니 아버지가 나, 화장품 얼마나 많이 사줬다고."
"그러셨어요."



어머니는 젊은 시절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으셨다. 손이 귀해 자식 낳으라고 몸보신 약부터 좋은 것은 항상 어머니에게 먼저 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마음 깊은 곳에 두고 계시다.

여러 번 접히고 구겨진 만 원짜리 세 장

갑자기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신다. 따라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차곡차곡 쌓아 놓으셨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하시는 일이다.

"어머니! 또 옷 쌓아 두셨네요?"
"응, 내 옷이야."


어머니가 가방을 열더니 지갑을 꺼내신다. 여러 번 접히고 구겨진 만 원짜리 세 장이다.

"이거, 아들 써. 돈 많이 못 줘서 미안해."
"어머니! 저는 이제 학생이 아니에요."
"어, 그래? 내 정신 좀 봐. 호호호."
"어머니 손녀도 둘 있잖아요."
"맞아, 맞아. 예나, 예린이. 우리 새끼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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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놀이공원에 전시된 빨간 자동차 앞에서 ⓒ 나관호


어머니에게 왜 화장을 하셨는지 여쭈어 보았다. 혹 무단가출의 신호는 아닌지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화장하시고 어디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아냐, 안 나가."
"그럼 왜 화장하셨어요?"
"어, 나 화장하는 것이 좋아. 그리고 아들 차 사줘야지."
"무슨 차요?"
"아들. 빵빵거리는 차 말야."
"저, 차 있는데요."
"아니, 하얀 차 사야지. 그게 좋아. 하얀 색."


어머니의 말씀에 난 놀랐다. 몇 개월 전 내 차를 타고 병원에 가실 때, 차 이야기를 했었다. 어머니를 위해, 뇌운동을 하시라고 소소한 일도 대화를 많이 했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꽃과 나무 이야기, 구름과 햇빛 이야기도 했었다.

다음에 차를 바꾸면 어머니 좋아하시는 색깔의 차로 바꾸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신 어머니에 대해 다시 놀랐다. 다른 것은 기억 못하시는데, 왜 차 이야기는 기억하시는 것일까? 그때도 차 사려면 3천만 원 필요하다고 하니까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주셔서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마음에 새긴 자식 사랑

자식의 필요나 자식을 위한 희생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은 머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매 어머니의 기억력이 놀랍다. 웃으며 스쳐가며 한 얘기인데도 어머니에게는 심각한 일인가 보다. 어머니는 '아들, 차 사주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새기고 또 새겨 놓으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에 뭉클한 그 무엇이 내 속에서 올라왔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어머니가 웃으신다. 내 눈에는 이슬이 고였다.

"어머니! 화장하신 모습이 너무 예쁘세요. 화장품 사드릴까요?"
"아냐. 난 많아. 니 아버지가 사준 것 많아."


어머니가 다시 3만 원을 꺼내더니 나에게 주시며 말했다.

"아들, 이거로 차 사."

난 입을 굳게 다물고 이를 악물었다. 울음을 참아야 했다. 그러나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어머니의 그 마음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자식에게 그렇게 하고 있나 반성도 해보았다. 어머니는 가끔 그렇게 나를 울렸다. 불편한 몸과 생각을 가지셨지만 마음은 청춘이셨다. 아니, 자식을 향한 마음은 파릇한 새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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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 할머니' 별칭가지셨던, 예쁜 어머니 모습 ⓒ 나관호


어머니가 주시는 3만 원을 받았다. 지갑에 넣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 '사랑 지갑'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3만 원은 차를 다시 살 때 꼭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치매는 자식에 대한 사랑 앞에 항복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자식을 챙겨주고 베풀어 주실 것들을 의도적으로라도 찾아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 지갑에 5만 원을 몰래 넣어드렸다. 또 다시 나에게 베풀어 주실 그 기쁨을 저축해 놓은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마음은 어떤 과학적 실험이나 수학적 계산으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비하다. 신묘막측하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마음의 기억에 자식 사랑을 담으셨던 어머니를 추억합니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다.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대중문화연구를 강의하고 있으며, '생각과 말'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로 기업문화를 밝게 만들고 있다.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어머니 #자식사랑 #치매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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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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