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B급 선생'... 교원성과급은 '분열'이다

[로또교실28] 학교를 멍들게 하는 돈... 학교공동체는 붕괴됐다

등록 2017.06.24 11:55수정 2020.01.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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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원성과급 이거 안 없애주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에 A 선생님이 한 마디 던지셨다. 평소 같으면 침묵을 지키거나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갈 소리인데 웬일로 주변 사람들이 "그러게요" "바꿔야지요" 하고 조금씩 거든다. 정치적 발언에 조심스러운 교사들이 사회적 쟁점에 의견을 보탠다는 건 그만큼 불만이 쌓였다는 의미였다.

교사에 상처 주는 '교원성과급'

성과급 이야기는 경력이 짧은 선생님들끼리 모일 때 뒷담화처럼 오가는 소재였다. 학교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무래도 중견급 이상이 주요 보직을 맡는 경우가 많으므로 성과 등급도 높은 편이었다. 불만은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업무를 쪼개 가져간 저경력 선생님들 입에서 나왔다. 방과후, 생활, 돌봄 같은 업무는 학교에서 따로 부장 보직으로 배정하지 않는 한 점수 없이 몸만 피곤한 분야였다. 소위 실속 없는 업무를 맡은 교사들은 높은 등급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나도 올해 B등급이야. 우리 같은 막내급들은 어쩔 수 없지. 공정한 게 말이 되나."

이런 사정을 선배 교사들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급 문제를 공론화하기란 어려웠다. 성과급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사안을 만들어 논란을 키우면 학교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사람, 남들 다 견디는데 혼자 유난 떠는 사람으로 분류될까봐 몸가짐을 삼갔다. 이렇게 속내를 꼭꼭 숨겨도, 성과급 기준을 정하는 회의 날이 되면 곪았던 문제가 터졌다.

"영양교사 차별 아닌가요? 매일 급식지도하고 시기 별 급식모니터링하는데 인정해줘야죠."
"왜 6학년만 생활지도 만점인가요? 유치원생이나 다름없는 1학년 지도는요?"
"부장교사는 교과전담에 수업시수도 적은데 점수가 너무 세지 않아요?"



성과급 기준 회의는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는 자리였다. 교원성과급을 강제한 건 교육부였는데 정작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주체는 같은 학교 동료들이 되었다. 의무적으로 선생님들을 S, A, B 등급으로 나눠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 기준을 세워도 상처받는 사람이 나왔다.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회의시간은 서로에게 뾰족한 말을 던지는 갈등의 장이 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무거웠다. "왜 우리가 이런 짓을 하고 있어야 하지?" 하며 자문하는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선생님들은 '교원들 간 협력과 경쟁을 유도하여 사기를 진작하는 교원성과급'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어떻게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하냐고 분개했다.

교총도 전교조도 성과급 사안에서 만큼은 한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원들은 교육부의 지시를 받아들여야 했다. 성과급 자체를 거부하거나 균등 분배를 하면 최고 파면까지 가능하다는 처벌조항을 무시하고 소신껏 행동할 수 있는 공무원은 드물었다.

교원성과급 제도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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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과급 기준을 세우더라도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pexels


무엇으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 누구도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한다. 교육의 성과는 단기간에 확인할 수 없고, 나타난다고 해도 수치화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교원성과급은 개념도 불명확한 교육 성과를 근거로 하여 돈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S등급 받은 사람은 주변에 미안해하고, B등급을 받은 사람은 속상해했다. 교원 성과급 제도에 '성과'는 없고 '분열'은 있었다.

2001년 교원성과급이 도입된 이후 개인 간 차등 지급 폭이 17배 이상 증가했다. 본래의 의도대로라면 돈의 액수 차이가 커질수록 열심히 하는 교사들의 사기가 올라가고, 매너리즘에 젖은 교사들은 자극을 받아 교육활동이 개선되어야 했다. 16년이 지난 지금, 성과급 제도는 교직 사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그로 인해 학생들의 교육력이 올라가고 학교생활이 행복해졌을까?

지난 5월 10일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이 유·초·중·고 교사 10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초중고 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실시돼야 할 정책을 3가지만 선택해 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2.7%가 '교원성과급 폐지'를 1순위로 꼽았다. 새 정부 이후 일제고사가 폐지되었고, 세월호에서 제자들을 구하러 갔던 기간제 선생님이 순직처리되었다. 교원성과급 폐지를 외치는 현장의 절실한 목소리가 청와대까지 닿길 바랄 뿐이다.
#교원성과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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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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