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중반에 쓰는 나의 술이야기

술에 얽힌 형제와 남매의 헤프닝

등록 2017.06.22 10:34수정 2017.06.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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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겐 치명적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이롭기만 한 술 ⓒ 위키피디아


올해로 제 나이가 벌써 불혹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뭐 대단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과거를 반추하면서 '내 인생에서 임팩트 있는 것이 뭐가 있지?'라는 질문을 근래 들어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요. 사람이깐 뭔가 족적을 남겨 볼 만한 것이 있을까 라고 생각을 했더니 몇 가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네요.

그중에서도 술이란 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나중에라도 술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이 아비의 행태에 대해서 나의 자녀들이 "하필이면 왜 술이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애주가로서 술과 함께한 스토리는 저희 아이들에게 조금의 반성을 함과 함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하고자 함입니다.

'술', 그 첫 번째 이야기

저의 고향은 전북 군산 서쪽에 위치해 있는 조그만 섬마을입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여느 섬마을과 마찬가지로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먼 고즈넉하고 인심 좋은 섬마을이었습니다. 저희 섬마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구와 2구인데 저희 마을은 2구이고 초등학교는 1구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집에서 약 2km 떨어진)를 다니면서부터는 두 살 터울 형과 곧잘 할아버지 술 심부름을 했습니다. 술을 파는 점방과 초등학교는 1구에 있었습니다.

형과 술 심부름을 하면서 즐거웠던 것은 할아버지께서 쥐여준 용돈으로 불량식품을 사 먹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점방 주인 할머니에게 형이 말을 합니다. "댓 병 1병 담아주세요." 그러면 그 할머니께서 댓 병에 있는 뚜껑을 따고 익숙한 자세로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 말 통에 재빨리 붓습니다.

지금도 기억 속에 뚜렸한 갈색의 플라스틱 말통, 유리병 댓 병의 술은 점방 주인 할머니에 의해서 플라스틱 말 통에 부어졌습니다. 플라스틱 말 통에 술이 부어지는 동안 형은 불량식품 이것저것을 고릅니다. 반반씩 나눈 불량식품을 입에 물고는 할아버지 댁까지 무사하게 도착하곤 했지요.

매회 동일하게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웠는지 어느날엔가 형이 나에게 기묘한(?) 제안을 했습니다.

"생곤아 술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 데 우리 한번 먹어보자."

두 살 터울이지만 정신적인 성숙도는 항상 10살 이상이었습니다. 실제로도 형은 친구들보단 그 위의 선배들과 잘 어울렸었죠. 술을 먹어보자는 제안에 항거할(?) 힘이 제겐 없었습니다.

뚜껑을 열고 그 뚜껑에 술을 따르고 서로 한 잔씩...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전혀 없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집 안방이었고 아침이 되었더군요.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더니 풀숲에 쓰러져있던 저희를 1구 주민들이 발견하여 저희를 업고 저희 집까지 와서는 웃으면서 그랬답니다.

"이 집은 할어버지가 술을 징허게 잘 마신 게 애덜도 술을 잘 마시는 게벼요."

그 뒤로 술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술', 그 두 번째 이야기

아버지께서는 젊어서부터 마을 이장 일을 보셨습니다. 당시 섬마을 주민들 중에서 글을 깨우친 분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름 고학력이었던 아버지께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이장 일을 보셨다 합니다.

이장 일을 보셨기 때문에 바깥일에 신경을 쓰시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저희집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바깥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어머니의 내조가 크게 한몫했음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역시 육지 손님들 대접을 하느라 술이 곁들여진 한상차림이 준비되었고 거나하게 드신 손님들이 집을 나선 이후에 저로 인해서 사달이 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상을 대충 치우고 생업을 위해서 일을 보고 있는 사이에 세 살 터울 여동생을 방으로 불러서 몰래 술을 먹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 8살, 동생 나이 5살, 초등학교 들어가기 한참 전인 그 어린 동생에게 술을 왜 먹였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식겁해집니다.

어릴 적 부모님 앞에서는 "네네" 말은 잘하면서도 뒤에서는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꼬맹이, 제가 바로 그런 아이였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어린아이가 술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 그 호기심이 매우 발동했던 것 같습니다. 한잔 먹이고 두 잔 먹였더니 몇 분도 안되어서 막 히죽히죽 웃으면서 안방 벽에 부딪치고 다닙니다. 그 모습이 웃겼던지 몇 번 더 먹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집에 오신 부모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그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겠지요.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봤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잘 살고있는 여동생, 문화컨텐츠학을 전공(박사)한 여동생은 나중에 책을 낼 때 이 이야기를 꼭 쓰겠다고 고집을 합니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회식할 때 남들이 술 먹으라고 하면 울 오빠가 어릴 적 먹인 술때문에 질려서 안먹어요" 라고 한답니다. 위트와 유머가 있는 멘트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술 #맥주 #양주 #막걸리 #기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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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의 열혈남아... 백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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