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마을 안내에 나선 수원 시민들

마을 탐방 버스 운영... 이것이 진짜 '주인의식'이다

등록 2017.06.23 11:19수정 2017.06.2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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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떠나는 '꿈틀버스'를 탄 지도 2년이 지났다. 그 뒤로 나는 수원 시민으로서, 수원 마을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지내왔다. 그러다 얼마전 마을만들기 주체들이 직접 버스투어를 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보자마자 내 행복의 시작점이 되었던 그 꿈틀 버스가 생각났다. 그래서 바로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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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마을 안내 버스 박미정(수원마을만들기 시민모임 대동계)씨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취지와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 강봉춘


지난 21일 아침, 수원 지속가능도시재단 주차장에 대추빛 관광버스가 한 대 들어왔다. 수원에서 마을만들기를 직접 이뤄낸 주민주체들이 모여, 마을 안내를 하기 위해 부른 버스였다. 이른바 마을안내 마주넷(마을주체들의 네트워크)의 행복한 마을 탐방 버스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수원 마을만들기 시민연구모임인 대동계 대표 박미정입니다. 마을 만들기를 함께 하며 이미 뵈었던 분들 말고도, 처음 뵙는 분들이 정말 많아서 너무 좋습니다. 오늘 이 버스는 따복과 마을르네상스 이름으로 알려졌던 수원의 마을들을, 그 곳 활동가들과 직접 함께 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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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 뒷면에 인쇄된 하루 일정과 코스 처음으로 시도된 마을탐방은 마을만들기로 이뤄낸 수원의 다섯지역을 돌아봤다. ⓒ 강봉춘


이 날을 위해 각 마을마을 만들기 대표들과 활동가들은 2달간 50여 차례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침 버스 출발은 늦어졌고, 점심값을 담은 잔돈통을 두고 출발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출발한 버스 안에선 다음 행선지를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이 이어졌는데, 기가 막히게, 프리젠테이션을 다루는 솜씨도 몹시 서툴렀다. 토끼 아빠로 알려진 서호천의 친구들 윤진석 대표가 말했다.

"저 오늘 일당 40만 원 포기하고 여기 왔습니다. 중간에 가실 땐 저한테 꼭 말하고 가주세요."

사실 난 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이 투어(Tour)를 마을 활동가들이 직접 기획했다는 것에 이미 감동했고, 많은 마을활동가들이 지쳐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도 다시 또 일어서는 이 근성의 비밀이 궁금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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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동 주민센터에 도착한 시민들 다울마을이 크게 커질 수 있었던 것은 행정의 지원이 컸기 때문이다. ⓒ 강봉춘


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은 인계동 주민센터였다. 다울마을은 수원 마을만들기의 얼굴이라 할 만큼 들어간 사업비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곳이었다. 이 곳을 안내한 송은정 다울공동체 대표는 마을 해설사로 활동할 만큼 오랜 활동가였다. 주민센터에는 대체 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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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진 인계동 코끼리 조형물 낡은 조형물의 모습이 다울마을의 지금을 알려주는 듯 했다. ⓒ 강봉춘


목소리가 상냥한 이 활동가는, 김유신의 말이 늘 가던 곳으로 갔듯이, 습관적으로 이 곳을 들른 게 아닌가 싶었다. 다울마을은 모범 사례로 여기저기서 많은 탐방이 이뤄져 왔었다. 공무원들이 오면 늘 이렇게, 취지를 설명하고 포인트를 강조하는 설명을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인 내 눈에는 눈 앞에 있는 코끼리 조형물이 인계동 마을 브랜드라기보다 지금 인계동 다울마을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로 보였다. 한 때 관심받을 때 깨끗하게 유지되었을 그 코끼리 피부에는 긁혀진 자국들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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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마을 골목으로 진입하는 곳에 붙여진 전단지 다울 마을이 있는 인계동은 재개발이 확정되었다. ⓒ 강봉춘


그런 감정이 커져서 그랬을까? 그 뒤로도 설명 포인트가 아닌 주변을 둘러보았다. 버려져가던 이 마을을 살려보고자 많은 돈이 투입되었지만, 여전히 마을엔 CCTV가 남아있고, 전봇대에는, 마치 소외된 시민들의 목소리처럼, 제거되지 않은 전단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놀라운 건, 이런 노력에도 이 곳의 재개발 사업이 번복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을 엄청나게 들여 놓고서, 어떻게 다시 부수고 새로 지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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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마을 골목에 붙어 있는 신축분양 광고 전단지 인계동의 마을르네상스 도전은 결국 재개발 카드로 넘어갔다. ⓒ 강봉춘


예쁘게 칠해진 벽 뒤로 '신축빌라 원가분양' 광고 현수막이 펄럭였다. 이 곳을 살려보려던 주민공동체의 노력이 정말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곳으로 떠나라는 소리가 스며들 틈은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아직도 이곳엔 벽화와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아이디어들이 그 노력을 증언하듯이 남아있었다. 나는 재개발이라는 말이 이것들을 부수지 않는 '재생'이길 바랬다. 마침 담벼락 너머 주민이 계시기에 말을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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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붙여진 액자 살고 있는 주민의 반응은 한마디로 쓸데없다였다. ⓒ 강봉춘


"선생님, 여기 이렇게 잘 꾸며 놨는데 어떠세요?"
"글쎄, 난 좀 그래. 이쁘긴 이쁘지만…. 누가 이런 거 해달라고 했나?"
"그럼 선생님은 뭐가 필요했다고 생각하세요?"
"길바닥이나 사람 다니기 좋게 했으면 싶었어. 이렇게 꾸미는 게 보긴 좋지만, 여기 사는 주민들에겐 정작 큰 도움이 안됐어. 헛 돈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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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예술가가 설치한 차단벽 조형물 조형물 뒤로 다른 길의 모습 보인다. ⓒ 강봉춘


그런 내 곁에 마을 안내에 함께 한 성말연(성화다사랑 대표) 선생님이 다가왔다.

"여기가 재개발 된다는 말에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어요. 빈집이 늘어나고 골목도 흉흉해졌죠. 어쩌면 처음부터 재개발할 때까지만이었는지도 모르죠 뭐. 여기 집들 대문에 빨간색 파란색을 구분해서 칠했어요. 파란색은 사람이 안 사는 집이란 표시에요."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의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이 옆에 '목요일'이란 곳이 있어요. 그 곳에 사는 예술가가 그래도 남은 사람이라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지원금을 받아 이 마을을 가꾸었죠. 여기 이 철문 보이죠? 골목마다 이런게 쳐 있어요. 이젠 그나마 이것도 다 사라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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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과 이야기 나누는 유문종 마을르네상스 센터장 할머니들의 진심을 듣고자 다가갔지만 냉담하거나 겸손히 사양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 강봉춘


함께 버스에 탔던 유문종 마을르네상스 센터장은 주민들에게 뭔가라도 듣고 싶었나보다. 할머니들께 좀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방금전 나보고 '어디 교회에서 나왔냐'고 물으셨다. '동네가 좋다는 소문듣고 와봤다'는 내 대답에 할머니들이 아무 대꾸를 하지 않으셔서 민망했다. 주황 모자를 쓴 센터장도 몇마디 말을 붙여봤지만 할머니들은 바라는 바를 분명히 말하기 보다 그저 공손하고 겸손히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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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가 끝나는 지점 당시 빌라건축이 진행중이라 손대지 못했던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 ⓒ 강봉춘


'꿈틀버스'로 처음 만났던 대추동과 '마돈나'가 있는 조원동이 반가웠다. 벽화는 그때 모습 그대로였다. 2년 전 그 때, 나는 수원을 돌아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었다.

"수원 장안구의 마을에서 광주 광산구의 마을과 약간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광산구의 경우 주민들이 나와 맞이하고 행정가는 뒤에서 박수쳤는데, 주민들이 무척 즐거워보이고 자부심도 강했어요. 그런데 수원은 활동가들의 모습이 지쳐보였습니다. 그래서 행정가들이 주민들을 내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진짜 자치는 아직 아닌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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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운동장 탑에 써있는 휴먼시티 수원 종합운동장 맞은 편에 조원시장이 있다. ⓒ 강봉춘


그래서 그랬을까? 길을 걷다 문득 돌아보니 '휴먼시티 수원' 이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 글자가 새겨진 수원 종합운동장의 조명판은 마치 십자가처럼 보였다.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뭇사람들에게 비판세례를 받는 그 상징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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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제일교회의 위엄있는 모습 교회 첨탑에 있는 노을빛 전망대는 유명하다. 일행은 교회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 강봉춘


사실 교회는 지금 마을 만들기가 걷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오랜 원형일 것이다. 버스 참가자 일행들은 수원의 명소 중 하나인 제일 교회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키가 훤칠하게 크신 교회 장로님은 우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 곳은 1953년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198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때 함께 하셨던 분들이 아직도 여기서 함께 예배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감격스럽지요."

마을 안내를 준비한 주체들은 땡볕을 피해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다 이 교회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흔쾌한 허락을 받았다. 오늘의 예정지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교회는 늘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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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꿈 도서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성식씨 아이들 책 읽어주던 아빠는 작은 도서관장이 되었다. ⓒ 강봉춘


길을 안내해 준 연두색 옷을 입은 아저씨는 그 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검은 안경테를 쓴 젊은 아빠는 한 빌라 주차장으로 우릴 안내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꺼내놓은 책들과 책장들을 보여주며 여기가 '하꿈도서관'이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내 안의 바보같은 편견을 또 하나 찾아내고 말았다. 입소문으로 들었던 하꿈도서관이 우리집 주차장과 똑같이 생긴 장소에 펼쳐져 있는 곳이란 걸 전혀 몰랐던 게다. 아니 상상도 못했다. 도서관이라고 하니깐 정말 도서관 같았다. 아니 맞다, 도서관.

"제가 여기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사실 그게, 이렇게 자랑할 만한 것이 되리라고 상상하진 못했습니다. 뭔가 해보고 싶었고, 해야할 것 같았어요. 주변에 작은 도서관들을 찾아 다녔죠. 아이들이 먼저 알고 많이 찾아왔어요. 하고 싶은 것들이 더 생겼지요. 가을에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여수·순천 쪽을 기차로 다녀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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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1층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하꿈 도서관 입구 주차장에도 도서를 전시해놓고 동네 아이들 모두가 함께 한다. ⓒ 강봉춘


빌라 안, 아니 도서관 안에는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활동해 온 흔적들과 더 많은 책, 그리고 사진과 주방이 보였다. 가정집에서 흔히 쓰는 싱크대였다. 콜롬버스가 달걀을 세우는 걸 본 선원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 그건 나도 할 수 거잖어."

그러나 하꿈샘, 하성식 관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안의 선원들'은 이렇게 말을 바꿔 갔다.

"음, 재밌다. 근데 귀찮아지겠다. 난 게을러 터지니까 안하는게 맞아."

다음 코스가 없었다면 나는 이 마음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가 간 곳은 여기보다 컴컴한 대형빌라 지하 주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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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하시는 성화 다사랑 박선숙 선생님 이 곳에 오래 사셨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 공간을 너무 사랑하신다. 다사랑에 찾아온 손님까지 정말로 다 사랑해주셨던 어머님. ⓒ 강봉춘


나는 여기서,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인가에 이끌려, 박수를 마구 쳤다. 이 컴컴한 지하 주차장에서 우릴 기다리던 하얀 만찬 테이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성스레 내놓은 빨간 수박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오신 손님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며칠동안 모여서 만드셨다는 두부같은 빨래비누 때문이었을까?

그 감동의 박수가 끝나자 이번엔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대체 우리 어머니께서, 이모님들께서, 이렇게 훌륭히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께서, 고작 이런 지하주차장에 마을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맞는가? 시청 시장실을 내줘도 시원찮을 판인데. 아니, 이 공간을 만드는데 누구 하나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공무원이 없었다고? 마음의 혼란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 곳의 이야기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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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성말연 선생님 당차고 똑부러지게 원하는 것을 이뤄내신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만 빼고 다 알고 계셨나보다. ⓒ 강봉춘


"건축과에서 설계도를 변경해야 했어요. 그러려면 여기 동 주민들 인감증명 다 받아 제출해야 했어요. 준비하고 심사받고 그러는데 뭘 알아야죠. 여기저기 정신없이 물어보러 다녔어요, 2달 동안. 저 안에 컴퓨터는 어떻게 구입했는지 알어요? 제가 컴퓨터도 없는데 인터넷부터 신청했어요. 거기서 인터넷 설치하면 현금 40만 원 준다했거든요. 그 돈 받아 컴퓨터를 샀어요. 어때요, 영리하지 않아요? 재봉틀도 기부 받았어요."

시원한 수박만 없었으면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을지 모른다.

"이리뛰고 저리뛰다보니 도움주시는 분들 만났어요. 고비 때마다 그 분들 도움을 받았죠. 잊을 수 없죠. 돌아보면 여기 언니들이, 언제나, 늘, 청소 깨끗히 해주면서 계속 지지해주는 게 가장 큰 힘이 됐죠." 

내 마음이 너무 들떠서 그랬을까. 정갈했던 성화 다사랑의 사진들이 죄다 흔들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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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천 옆에 세워진 솟대와 바람개비 정자3동 '서호천의 친구들'은 쓰레기로 가득찬 이 공터를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 강봉춘


그 다음 우리는 다시 환한 하늘이 기다리고 있는 정자 3동의 솟대공원으로 갔다. 아침에 잔돈통 두고 오셨던 토끼아빠 윤진석(서호천의 친구들 대표)씨는 이 곳의 이전 사진을 못 보여준 걸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여기가 예전에 저 아파트 건설이네 뭐네 해서 침대 매트리스부터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쓰레기장이었어요. 여러분이 꼭 그걸 보셨어야 했는데…."

진심으로 옳은 말이다. 그 어려움을 봐야 했다. 오늘 보았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떡하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단 걸 그 자리에 남아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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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천 정자 아래에 피어있는 토끼풀 솟대공원에는 염소와 닭 토끼를 키우는 농장과 작은 정원, 공연무대까지 있다. ⓒ 강봉춘


내가 지난 겨울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 서호천의 솟대공원에 놀러왔을 때, 토끼들이 굴을 파고 낳은 새끼들을 보았다. 지금은 흑염소와 닭들에게도 울타리가 잘 쳐져 있지만 그때는 '친구들에게 돌던지지 말라'는 팻말만 있었다. 토끼 아빠의 말대로 이 곳에도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관심들을 좋다고 반길게 아니라, 무척 조심스럽게 대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내가 오늘 하루 오며가며 만난 한 참가자께 이런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아요. 이런 주민들의 노력을 자기공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요. 오늘 같은 날 같이 함께 했어봐. 내가 그냥 이뻐서라도 주겠다. 일하지 않고 숟가락 얹으려는 사람들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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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감을 나누는 참가자들 사진에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따복공동체 지원센터 박수미씨 ⓒ 강봉춘


누군가를 위해 혹은 내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주민 주체들의 이야기 투어는 여기까지였다. 아름답던 서호천의 솟대공원에서 우리는 모두의 소감을 빠짐없이 나누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감이 있었다.

"저는 마을 만들기를 해본 적 없어요. 말로만 듣다가 오늘 이런 자리에 왔네요. 아쉬움이 구멍처럼 계속 남는 게 있었어요. 과연 저 공간들이 주민들에게 계속 지속될까? 저렇게 돈만 쓰고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런 것들이요."

"어떤 것들은 새마을 운동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마을 만들기가 새마을 운동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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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마을안내 주민주체들 왼쪽부터 하꿈도서관 하성식씨, 사회적기업 마돈나 정순옥씨, 수원마을만들기 시민모임 대동계 박미정씨, 꽃뫼 징검다리기타 앙상블 김경이씨, 그리고 성화 다사랑 마을코디네이터 성말연씨 ⓒ 강봉춘


내가 위에서 주민센터를 왜 갔는지 모르겠다고 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주민센터를 처음 방문하는 게 맞았다. 다만 주민들이 주민센터를 제대로 '점령'해야할 일이 남았을 뿐이다.
#마을만들기 #새마을운동 #따복 #마을르네상스 #마을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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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겹겹이 쌓여 그가 위대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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