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이 창궐하던 곳, 프랑스 최고 관광지가 되다

[프랑스기행 15]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 기행

등록 2017.06.28 16:11수정 2017.06.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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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동부의 아름다운 도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일(Ill) 강이 도심을 감싸고 돌아나가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일 강의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라인 강에서 오는 배들이 시내 한복판까지 들어오는 스트라스부르는 과거부터 수로를 통한 상품교역이 활발했던 상업도시였다.

이 역사 오랜 스트라스부르 구도심 한복판에는 '작은 프랑스'라는 의미의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가 자리잡고 있다. 쁘띠 프랑스는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최근에 여러 나라 여행자들이 찾는 여행 일번지가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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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프랑스. 작은 프랑스라는 뜻의 쁘띠 프랑스는 일 강이 둘러싸고 있는 구시가 지역이다. ⓒ 노시경


나는 쁘띠 프랑스를 향해 일 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을 따라 걷는 산책은 산책 중에서도 최고이다. 인간의 본성이 물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다. 강변을 바라보는 알자스 전통 건물들도 파스텔 톤으로 알록달록하게 운치가 있다. 건물들의 색감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하늘색, 노란색, 핑크색 건물들이 묘하게 감각적으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경치를 감상하며 편하고 유유자적하게 걷고만 싶었으나 나도 모르게 자꾸 사진기에만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정해진 코스 없이 편하게 쁘띠 프랑스에서의 산책을 즐겼다. 일 강을 따라 조성된 쁘띠 프랑스에는 6세기부터 중세시대까지의 알자스 전통가옥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가옥들이 일 강의 수면을 비추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동화의 나라같이 아름답다. 유럽을 오랫동안 여행하면 도시들이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쁘띠 프랑스는 알자스 지역만의 목조건물 특색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한눈에 다른 유럽도시들과 구별된다. 옛 모습이 잘 보존된 도시 안으로 내가 걸어 들어가는 길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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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프랑스의 일 강.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시원하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 노시경


물길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뒷골목도 정겹다. 그래서 길을 걷는 마음도 왠지 모르게 즐겁기만 하다. 작은 골목길이지만 골목 골목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여인이 걷고 있는 뒷골목 길은 그대로 사진작품이 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주변 경치만을 감상하며 유유히 걷는 것 자체가 힐링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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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프랑스의 식당. 쁘띠 프랑스에는 여행자의 발길을 유혹하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 노시경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곳에는 식욕을 자극하는 디저트 가게와 맛집으로 유명세를 날리는 레스토랑의 거리가 이어진다. 일 강 다리 앞에 한 자리를 차지한 예쁜 식당들은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활기가 넘친다. 어느 집을 들어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맛집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여행지의 포인트마다 알자스 가옥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눈길을 잡아 끈다. 나는 알자스 가옥 기념품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 섰다. 그 기념품 가게 안에는 나무기둥이 외부로 그대로 드러나는 알자스 가옥들이 앙증맞은 기념품이 되어 팔리고 있었다. 싸구려 기념품이 아니라 공인 받은 장인이 만든 정교한 예술품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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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가게. 쁘띠 프랑스 기념품 가게에서는 알자스 전통가옥이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 노시경


나는 쇼핑에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알자스 전통가옥만은 한 개를 사기로 했다. 이 운치 있는 프랑스 집을 서울 우리 집의 서재 안에 놓아두면 장식품으로 참 멋진 소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자스 가옥 기념품은 크기도 대, 중, 소로 다양했고 크기에 따라 가격대도 여러가지였다.

"이 알자스 가옥, 가격이 얼마예요? 좀 비싼데 가격을 좀 깎아주세요."

"스트라스부르의 유명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 할인은 안 됩니다. 포장을 해 드릴까요?"
"네, 한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갈 거니까 깨지지 않게 포장지로 여러 번 포장 해주세요."

가게 주인 아저씨는 기념품 가격은 깎아주지 않았지만 정말로 정성스럽게 나의 기념품을 포장해 주었다.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는 아저씨여서인지 그는 다른 프랑스인들과는 다르게 영어도 유창했다. 그래서 나는 여행준비를 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몇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쁘띠 프랑스는 듣기에 낭만적인 이름인데, 프랑스 안에 있으면서 왜 '쁘띠 프랑스', '작은 프랑스'라는 이름이 붙었나요?"

"그 지명의 유래가 그리 간단하지 않아요. 16세기 초에 유럽 전역에 성병인 매독이 창궐했고, 프랑스도 프랑수아 1세(Francis I) 시기에 스트라스부르를 포함한 알자스에 매독이 넓게 퍼졌어요. 이 당시 수많았던 매독 환자들은 강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의 병원에 격리 수용되어 치료를 받았는데, 그 병원이 있던 섬이 바로 현재 쁘띠 프랑스가 있는 자리예요."

"매독 치료 병원이 이곳에 있었는데 그 병원이 '쁘띠 프랑스' 이름과 연관이 있는 거군요."

"'쁘띠 프랑스'라는 이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 쪽에서 붙여준 이름이에요. 당시 알자스에 살던 독일 사람들은 독일어로 매독을 프랑스인의 질병이라고 불렀고, 매독으로 아픈 프랑스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이곳에 '쁘띠 프랑스'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당시 독일인들은 매독이 창궐한 프랑스를 풍기 문란하다는 의미로 조롱하듯이 말했던 것이지요."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알자스 지방을 뺏고 빼앗겼던 프랑스와 독일의 갈등의 역사가 이 지명에도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명에 얽힌 역사를 알고 나니 '쁘띠 프랑스'라는 관광명소의 어감이 영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몇 분에 걸쳐 기념품 포장을 열심히 해주신 아저씨에게 알자스 집들을 많이 팔라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쁘띠 프랑스 이름의 유래는 어두웠지만 그 유래와는 다르게 현재의 쁘띠 프랑스의 외관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거뜬히 걷어내고 그 이름마저도 아름답게 들리는 명소로 변화한 것이다.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면서 이름의 이미지를 바꾸어버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쁘띠 프랑스는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 이미지로 바꾸어버린 당당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이런 역사에 대한 당당함이 결국 한 나라의 문화적 자부심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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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프랑스 운하. 수로를 통한 상품교역이 이루어지던 스트라스부르의 심장부이다. ⓒ 노시경


쁘띠 프랑스 구도심 한복판으로 더 걸어 들어가자 골목길같이 구획된 좁고 긴 운하가 나왔다. 나는 운하가 흐르는 매력적인 강변을 천천히 걸었다. 이 운하는 일 강과 연결되어 와인 등의 물자를 운반함으로써 스트라스부르를 상업도시로 발전시킨 일등공신과 같은 곳이다. 이 운하는 도심에 청명한 물의 흐름을 공급함으로써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는 기능도 하고 있었다.

운하 주변을 걸으면서 보니 운하를 가진 도시는 낭만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일 강은 작은 강인데도 마치 우리나라 장마철 강물처럼 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물이 가득 찬 강은 눈으로 보기에도 참으로 시원해 보인다. 도심 한복판 사이사이에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는 것도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 운하의 수로에는 어두운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중세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중죄를 지운 죄인들을 이 운하에 빠트려 죽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일종의 익사를 시키는 형벌인데 길 옆 운하의 수심이 워낙 깊어서 죄인을 익사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운하에서 죄인을 잔인하게 처형함으로써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이곳에서 과거에 죄인을 처형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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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라마. 일 강의 유람선 바토라마가 수로를 통과하기 위해 수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 노시경


이 역사적인 운하를 보고 있으려니 스트라스부르의 작은 유람선 바토라마(Batorama)가 다리 밑을 지나간다. 스트라스부르를 효과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유명한 관람수단이 바토라마인데, 이 운하가 바토라마가 지나는 길인 것이다. 바토라마는 운하의 지형에 맞추어 낮은 높이로 잘 만들어졌다. 운하의 수심이 깊고 다리가 물 위에 낮게 있어서 바토라마는 다리와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 운하에서는 좁은 수로에서의 운전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바토라마를 운전하는 선장이 될 것 같다.

두꺼운 채색 유리로 만들어진 유람선의 천장 위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유람선은 옛 모습 그대로인 스트라스부르의 구시가 안을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 유람선이 워낙 강변과 붙어 운항하고 있어서 쁘띠 프랑스 이곳 저곳을 알려주는 유람선의 안내 방송이 나에게까지 들렸다. 안내방송 중에는 낯익은 한국어 방송도 들려와서 괜히 반가웠다. 

재미있는 것은 바토라마가 수면 높이가 다른 운하를 만나면 바토라마 앞쪽의 운하 수문을 닫는다는 점이다. 바토라마는 수로의 물이 차 올라서 양쪽의 수면 높이가 맞춰질 때까지 운하 안에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양 수면의 높이 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물이 차오르면 다시 출발하려고 유람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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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 다리. 운하에 유람선이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움직여 수로에 길을 열어준다. ⓒ 노시경


이윽고 물이 차서 배가 다리 앞을 지나갈 때가 되자 내가 걸어서 건너가려고 하던 다리도 마치 철도 건널목처럼 통제가 된다. 다리 건널목 관리인이 기계를 작동하자 운하 양쪽을 잇던 다리가 180도 회전을 시작했다. 회전다리가 다리 옆 골목길과 수평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자 대기하던 유람선이 수문을 열고 천천히 운하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운하의 배를 통과시키기 위한 중세시대로부터의 모습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 다름 없이 회전다리가 작동하고 다리가 사라진 공간에 작은 유람선이 열심히 운하를 통과하고 있었다. 작은 이벤트지만 수량 풍부한 운하와 목조가옥 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이 참으로 운치가 있다. 이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해 다리 주변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있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이벤트를 배경으로 인물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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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강 하류. 일 강의 하류 쪽으로 갈수록 강폭이 넓어지면서 시원스런 풍경이 나타난다. ⓒ 노시경


나는 일 강을 따라 유유히 계속 천천히 걸었다. 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걸어가니 강폭이 점점 시원스럽게 넓어졌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 보니 넓어진 강 위에 다리같이 생긴 구조물이 나타났다. 창문이 여러 개 있는 2층 건물이어서 마치 다목적 다리 같이 보이는 이 건축물은 도시 방어를 위해 1690년에 건설된 보방 댐(Barrage Vauban)이다. 강줄기가 모이고 넓어지는 곳에 건설되어 있어서 일 강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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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 댐 내부. 과거에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던 보방 댐은 이제 성당의 조각상을 전시 중이다. ⓒ 노시경


나는 현재 보방 댐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댐 실내는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복도가 있고 그 좌우에 무수히 많은 작은 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방들에는 스트라스부르의 여러 성당 건물에서 떼어온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댐의 내부에는 무언가 모를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 댐에 대한 설명문을 보니 이곳은 과거에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내가 느꼈던 음침한 기운은 과거의 죄인들이 내뿜은 기운이 전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죄인들이 갇혀 있던 곳에 현재는 천사와 성인들의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수세기만에 건물의 기능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지만 원래 건축물이 가지고 있던 콘텐츠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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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 댐 야경. 저녁이 되면 보방 댐 주변에 아름다운 야경이 내려 앉는다. ⓒ 노시경


해가 점점 저물어가면서 이 보방 댐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나는 앞서 간 여행자들의 추천대로 보방 댐 옥상의 테라스에 올라가 보았다. 댐 옥상에서 보는 야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댐 위에 서서 일 강을 감상하며 잠시 여행 속의 상념에 빠졌다. 한 숨을 돌리며 눈 앞에 내려다보이는 쁘띠 프랑스의 풍경을 차분히 감상했다. 야경 속의 쁘띠 프랑스는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시 봐도 쁘띠 프랑스가 없는 스트라스부르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에 비친 보방 댐의 야경은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수많은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오늘 저녁은 깨끗하고 고요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프랑스 #프랑스 여행 #스트라스부르 #쁘띠 프랑스 #알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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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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