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는 그 이름, 가족

[씨네밥상 19]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옥수수 튀김

등록 2017.06.25 12:04수정 2017.07.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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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어릴 때부터 살던 고향집 목조 주택의 마루, 차가운 보리차와 선풍기, 수박, 부엌에서 내내 음식을 하는 엄마, 내리쬐는 태양과 흔들리는 청록과 매미 소리... 여름의 심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영화감독이 있다면 단연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특출난 재능은 또한 묘하게 엇나가 서글픈 가족 관계의 파편을, 일상에서 포착해 내는 것에 있다.


기타노 다케시는 "누가 보고 있지 않으면 슬쩍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도 모른 척 해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다. 가족 간의 정, 사랑, 결국엔 돌아갈 홈 스윗 홈 같은 가족 윤리 따위는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 없이 짠해 울컥하는 것이 가족,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럼 그렇지"의 실망의 순간이 오는 것도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반짝이고 서글프고 엇나가는 가족 간의 순간순간을 영화에 담는다.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으로 <언젠간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최근의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고레에다 월드에서 주인공에게 부모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불편하면서도 응석을 부리고 싶고, 효도를 결심했다가도 화가 나고, 친해지고 싶다가도 도망가버리고 싶은 존재다. 누군가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 늙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고레에다 월드의 주인공들에게도 들어맞는다. 자신의 어린 자녀들을 보며,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부모를 보며 그것을 느낀다.

가족모임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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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무는 정말 유용해"
"그럼 감자는?"
"감자는 솜씨에 달려있고, 무는 졸이거나 구워도 되는 데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잖아."


큰아들 준페이의 기일에 맞춰 온 가족이 모이는 날,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 토시코와 그것을 거드는 딸 지나미, 지나미는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둔 가정주부이지만 토시코와 비교하면 여전히 철없게만 보인다. 그리고 기일에 맞춰 고향에 오는 또 한 가족, 주인공 료타와 그의 부인 유카리, 유카리의 아들 아츠시.


"사별은 죽은 남편과 비교당해서 힘들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싫어서 헤어진 거라던가."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무서운 소리를 하네."


토시코의 며느리이자 료타의 부인 유카리는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사별해 료타와 재혼을 했다. 아츠시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토시코는 나이도 차고 변변치 않은 료타이지만 그래도 초혼이 아닌 상대와 결혼한 것이 그리 탐탁지는 않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했던가.

니쿠자가와 감자샐러드, 청콩양하밥과 옥수수 튀김, 차고 넘치게 음식을 하면서도 부족할까 초밥을 배달시키는 토시코. "차린 게 없어서 어떡하니." 엄마들의 걱정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매한가지다.

10년 전 죽은 큰아들 준페이는 엄마, 아빠의 자랑이 되는 모범적인 자식이었다. 이에 비해 그림을 그리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료타는 엄마에게는 귀여운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는 탐탁지 않은 아들. 동네 의원을 하던 아버지는 아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직업을 물려받아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저는 커서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겠습니다. 형은 외과, 나는 내과. 아버지는 늘 가운을 입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싶다던 일기를 쓰던 어린 시절의 료타와 중년이 되어 아버지와 소원해 진 료타의 사이에는 몇 번이고 엇나간 몇십 년의 세월과 마음이 있다.

료타는 자신의 부인 앞에서 "애 딸린 과부는 재혼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나 지껄이는 아버지가 밉고 죽은 형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목욕탕의 깨진 타일이, 늙은 아버지의 건강이 신경 쓰인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쇼핑하는 것이 꿈이라는 엄마의 말에 "그깟 거 태워줄게, 하얗고 큰 SUV를 살게"라며 허세도 부린다.

형의 기일마다 모이는 것은 비단 가족 만이 아니다. 형 준페이는 고향집에 왔다가 바닷가의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구해주다 죽었다. 준페이가 구해 준 그 아이, 지금은 청년이 된 요시오가 십 년째 기일에 찾아와 절을 한다. 요시오는 취직에 실패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뚱뚱하게 살이 쪘다. 준페이를 위해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돌아가면서도 자신의 인생은 이미 망했다고 비관한다.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준페이가...!"
"하찮다니... 제발 사람 인생 비교하지 마세요. 의사가 그렇게 대단해요?"


싸해진 분위기, 다른 가족들은 농담을 건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본다. 가족 모임이란게 대게 그렇다. 누군가 뱉어내는 말에 누군가는 기분이 상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면 다시 이어지는 누군가의 힐난과 정적,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억지웃음 끝에 찾아오는 '정말로' 화기애애한 순간들. 울컥하게 만드는 부모의 사랑과 역시 아니다 싶은 것, 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는 타이밍과 마음들.

"있을 때 잘해"... 닿지 않는 우리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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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거리의 불빛이 무척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당신과 둘이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코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당신이 내게 주세요.


걸어도 걸어도 작은 조각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요 당신의 품 속에서
발소리만이 따라와요
요코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번 더


걸어도 걸어도 작은 조각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요 당신의 품 속에서
좋아하는 당신의 담배 향기
요코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둘 만의 세계 언제까지나


무뚝뚝한 아버지를 평생 참고 산 엄마 토시코는 그런 부부 사이어도 둘 만의 노래가 있다며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레코드를 튼다. 영화의 제목 <걸어도 걸어도> 도 이 가사에서 따온 것.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언제 산 거지?"
"레코드요? 그때 기억나시죠, 이타바시 말이에요. 그 여자 아파트까지 료타를 업고 찾아갔죠 그 때 방에서 당신 노랫소리가 들렸어요. 걸어도 걸어도 라고요. 방해될 것 같아 그냥 돌아왔죠 그리고 다음날 역 입구의 카나리아당에서 샀어요."


고레에다가 그려내는 가족의 따뜻한 순간들은 뭉개진 마음, 속상함, 어긋나는 균열의 순간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된다. 그의 일련의 영화에서 이 역할은 전적으로 어머니와 부인 등 여자 구성원이 떠맡고 있기에 기분이 나쁘지만 감독 자신도 그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 그래도 주인공은 여전히 '철 없는 아들, 남편, 아빠로서의 나'라는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부모의 고향집에 들어와 살 생각을 하는 철없는 딸 지나미와 사위, 그들의 아들·딸은 우르르 돌아가고 정신 없는 하루가 지난다. 붙을 듯 붙을 듯 붙지 않는 균열을 지닌 채 료타 내외는 고향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떠나기에 앞서 아버지와 료타, 료타의 양아들 아츠시 세 부자가 함께 바닷가로 산책을 간다.

"요금 야구 베이스타즈 어때요?"
"요즘은...마리노스가 대세지."
"아버지가 축구를 봐요?"
"요코하마 구장에도 갔지. 기회 되면 같이 갈까? 저 녀석 데리고."
"뭐 봐서요."


료타 내외가 터미널로 떠나는 버스를 타자마자 무뚝뚝한 아버지는 못내 아쉬운 듯 "이제 설에나 보겠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료타 내외는 버스를 타자마자 안도의 한 숨을 쉬며 "설은 건너뛰자. 일 년에 한번이면 충분해"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삼 년 뒤,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함께 요코하마 구장을 가지도, 엄마에게 SUV를 태워주지도 못한 채다. 언제나 유효하게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지만, 알면서도 절대 실천하지 못하는 "있을 때 잘해"라는 말.

"어 노란 나비다. 노란 나비는 말야, 겨울이 되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흰 나비가 이듬해에 노랗게 변하는 거래."
"누가 해준 말이에요?"
"누구지? 글쎄다."


3년 전 큰 형 준페이의 산소에서 내려오며 어머니와 나눈 말을, 이제는 어머니의 산소에서 내려오며 자신의 자식에게 해주는 료타.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걸어도 걸어도 어긋나고, 닿지를 않는다. 

[씨네밥상 레시피] 옥수수 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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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옥수수튀김 ⓒ 강윤희


"옛날에 이 옥수수 튀김을 하면 말야, '팝! 팝' 소리가 나면서 저녁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다들 2층에서 내려와 먹어 치웠어. 한 번은 너네 아버지가 한밤중에 옆집 옥수수를 서리해 와 다음날 튀기고 있는데, 글쎄 그 옆집에서 옥수수를 수확했다고 가져 왔지 뭐야. 그때도 부엌에서는 '팝!' '팝!' 소리가 나고..."

토시코의 엄마가 만드는 옥수수 튀김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영화를 보며 옥수수를 튀긴 것이 무슨 맛일까 궁금하던 것을 이번에야 해 보았다. 일반 찰옥수수로 튀기면 맛이 없고 초당 옥수수로 튀겨야 겉은 바삭, 고소하면서도 입 안에서 단물이 팡팡 터져 별미가 된다.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차가운 보리차와도, 맥주와도 어울리는 여름 간식이자 안주로 그만이다. 하기도 간단하다. 단, 튀김요리를 하다보면 더워지니 아직은 서늘한 아침이나 해가 느긋이 넘어갈 때쯤 하는 것이 좋겠다.

재료분량: 2인분
재료: 초당옥수수 1개, 튀김가루 1 작은술, 식용유 적당량, 소금 약간
튀김옷: 튀김가루 2큰술, 물 2큰술

1. 옥수수를 낱알로 떼어낸다.
2. 낱알로 떼어낸 옥수수에 튀김가루 1작은 술을 뿌려 섞는다.
3. 차가운 물에 튀김가루, 소금 약간을 넣고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재빨리 뒤섞는다.
4. 튀김 옷에 옥수수를 넣고 섞는다.
5. 옥수수 반죽을 숟가락으로 떼어내 170℃의 기름에 넣고 튀긴다. 어느 정도 튀겨질 때까지 반죽을 건드리지 않아야 알알이 흩어지지 않는다.
6. 옥수수알이 노랗게 익으면 건져내 기름을 빼고 그릇에 담아낸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걸어도걸어도 #태풍이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초당옥수수 #바닷마을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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