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지도하는 장동건을 보고 싶다

고소영도 녹색어머니 한다지만... 워킹맘 배려 않는 제도, 아쉽다

등록 2017.06.26 11:41수정 2017.06.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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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사하네?"


허름한 주택, 오래된 빌라의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한참인 학교 앞 풍경이다. 초등학교 정문을 바라보고 있는 골목엔 빌라 10채 정도가 늘어서 있다. 양쪽 길에 있는 약 20동의 건물 중 올 6월에만 세 채가 공사 중이다.

조만간 공사가 예정이라는 소문의 건물도 두 채나 된다. 근처 골목에도 공사 중인 건물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문제는 건물 공사를 하면서 각종 자재를 실어 나르는 차량이 오간다는 것. 게다가 먼지가 자욱해서 등하교 하는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된다.

우리 쌍둥이 남매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에는 중앙선이 있는 횡단보도가 9개나 된다. 그중 2개는 10차선이 넘는 넓은 도로다. 이렇게 중앙선이 있는 횡단보도에는 등교 시간마다 '녹색 어머니회' 복장을 한 어머니들이 교통지도를 한다. 교감선생님도 매일 아침마다 각 횡단보도에 녹색 어머니회 봉사가 잘 시행되고 있는지,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교하는 중인지 순회한다.

두 손 걷고 나서고 싶지만... 울상짓는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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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등하교길, 학부모들은 봉사를 자처한다. ⓒ pixabay


쌍둥이 남매가 등교하는 루트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중앙선이 있는 횡단보도 2개, 중앙선이 없는 횡단보도 2개, 횡단보도는 없지만 차가 다니는 이면 도로는 최소 2개를 지나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봉사를 자처한다.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반을 대표해서 학교 행사에 봉사할 어머니회를 조직한다. 반대표 2명, 도서관 봉사 2명, 녹색어머니 7명 등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에 관여해야 하는 엄마들의 숫자는 열 명을 훌쩍 넘는다(이 숫자는 학교의 행사 빈도, 종류와 학교 인근 도로 및 횡단보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쌍둥이네 학교의 한 학급은 아이들 수가 20~25명 사이인데, 그중 워킹맘이 30~40% 정도를 차지한다. 회사 때문에 이런 봉사 활동을 하지 못하는 워킹맘을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의 전업맘이 학교 어머니회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반 별로 엄마들의 분위기에 온도 차이가 있어서 열심히 참여하는 엄마들이 많은 반은 괜찮지만, 필요 인원이 부족한 경우 어떤 엄마는 두 가지 이상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부모 봉사활동 중 유일하게 학교 밖에서 활동하는 녹색 어머니회는 도로 환경에 따라 한 학기에 적어도 세 번, 많게는 다섯 번 정도 활동한다. 1년이면 최대 열 번, 10일이나 된다. 이르게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마음만 가지고는 쉽게 참여하겠다고 손들기 어렵다.

공개수업, 면담, 운동회 등 각종 학교 행사와 방학, 아이들의 아플 때 등을 대비하여 늘 '휴가 스탠바이' 상태인 워킹맘은 녹색 어머니회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을 둔 엄마들도 덥고 추운 날씨에 둘째를 데리고 봉사활동을 하는 데 난색을 표한다.

학교나 반별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전업맘, 워킹맘 상관없이 모든 엄마의 참석을 요구하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일까. 어느 지역의 학교 앞 문방구는 녹색 어머니회 봉사활동을 할 수 없는 엄마들이 적정 수수료를 내면 대신 봉사해줄 사람을 연결해주는 창구가 되기도 한단다.

교통봉사는 엄마의 몫? 또 찜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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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삼릉초 녹색어머니회 회원들과 학부모들. ⓒ 이희훈


찜찜한 부분은 또 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부모가 두 손을 걷고 나서는 것이 맞다. 그러나 봉사단의 이름은 분명 녹색'어머니'회다.

녹색 어머니회는 1969년 초등학교 '자모 교통 지도반'으로 시작됐다. 이후 1971년 치안본부가 '녹색 어머니회'라는 명칭을 짓는다. 현재 경찰청 산하 '사단법인 녹색어머니 중앙회'를 중심으로 전국 5700여 개의 초등학교가 참여해 각각의 지부를 만들고 경찰서에서 그 활동을 돕고 있다.

녹색어머니회의 정관을 살펴보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어머니'에게 회원자격이 부여된다고 적혀있다. '어머니회'라는 이름을 바꾸자는 건의를 학교, 교육청, 경찰청에 하면 중앙회가 자발적인 봉사단체이고 학교는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어 이름변경이 어렵다는 얘기를 듣는단다.

현재 녹색 중앙회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2016년 12월까지 녹색 어머니회 명칭 변경을 요구하는 게시글이 한 페이지에 가득 채워져있다. 하지만 중앙회는 별다른 대응도 하지 않을뿐더러 현재는 글쓰기 기능도 차단된 상태다.

교통지도는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기꺼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며 드물게 조부모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섭외된 도우미도 활동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참여하더라도 봉사단의 이름은 '녹색 어머니회'다. 지역마다 교통지킴이 등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사례가 무척 드물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186만여 기혼 가구 가운데 맞벌이는 521만 가구(43.9%)에 달했다. 또 맞벌이 가구 중 47.3%가 18세 미만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맞벌이 여성 가운데 약 절반이 이른바 '워킹맘'인 셈이다.

그런데 여전히 학교나 사회는 육아를 엄마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자녀를 위한 봉사활동이 주 목적인 단체의 이름이 '어머니회'라는 이름을 고수한다는 것은 맞벌이로 여성의 사회적 책임은 커졌는데 육아의 책임은 전혀 덜어지지 않은 분위기를 방증하는 것이다.

'초품아'라는 신조어가 있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중앙선이 있는 도로를 건너지 않아도 학교까지 등교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일정 세대수 이상인 단지만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으로, 당연히 아파트 가격은 그렇지 않은 주거지에 비해 매우 비싸다. 모든 초등학교 학생들이 '초품아'에서 등하교할 수 없으니 아이들을 위한 교통지도는 필수다.

녹색어머니회 하는 남자 배우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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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온라인커뮤니티에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는 배우 고소영씨의 사진이 올라왔다.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학교에서 어른 손이 필요한 각종 봉사 활동은 부모로서 해야 할 수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워킹맘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봉사 일정과 '어머니회'라는 이름으로 아빠의 육아 참여를 가로 막는 시스템은 바뀔 필요가 있다.

가정마다 처한 환경 차이로 하고 싶어도 봉사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꼭 그 역할을 엄마에게 한정할 필요도 없다. 육아란 엄마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부부의 몫이며 사회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출산장려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인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도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공개수업, 선생님 면담 등 육아를 위해 유치원이나 학교에 나타는 아빠가 신기함의 대상이고, 육아를 이유로 회사에서 휴가를 내거나 조퇴하는 남자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져야 한다.

자녀의 등하교 교통지도를 위해 늦은 출근, 이른 퇴근을 할 수 있는 쿠폰이 일 년에 두 번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또 아픈 자녀의 병 간호를 위해 일 년에 두 번, 방학 때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자녀들을 위해 연차를 5일 이상 붙여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만들 수 있는 근무 규정을 상상해본다.

얼마 전 배우 고소영씨가 자녀의 초등학교 근처에서 녹색 어머니회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이 기사로 전해졌다. 배우이기에 앞서 아이의 부모 역할에 충실한 모습이 인상깊었다. 녹색 어머니회가 엄마의 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부부가 함께 하는 활동이라는 인식이 마련된다면 우리는 조만간 아빠인 남자 배우의 교통지도를 목격할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0점엄마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녹색어머니회 #육아는엄마혼자하는게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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