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들'은 어떻게 '광장의 곡'이 되었을까

[음악을 읽다 4] 민중가요와 5월운동 이야기,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

등록 2017.06.27 19:47수정 2017.06.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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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맞서 행해진 '태극기집회'의 아이러니처럼, 5·18 공간에서 <애국가>의 아이러니는 지독하다. 5월 18일, 광주에 계엄군이 들어오고 광주가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자 시민들은 여러 투쟁의 현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광주를 지키는 것이 애국이었다. 그런데 5월 21일 정오 무렵, 계엄군은 도청에서 <애국가>가 울려나오자 금남로의 시위대를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상상해보라,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국 군대가 자국 국민을 학살하는 장면을. -9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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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 책표지. ⓒ 한울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한울 펴냄)는 촛불집회와 같은 지난날의 여러 민중운동 그 현장에서 특히 사랑받은 곡들이나, 민중운동가 그들이 사랑했던 곡들에 얽힌 특별한 사연들을 통해 만나는 우리의 민중가요사입니다.


5·18연구소 학술총서로 출간됐는데, 책은 5·18민주항쟁이나 6·10민주화운동 등과 같은, 지난날 우리나라 주요 민중운동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민중가요 55곡을 시대순으로 나열, 노래는 물론 우리의 지난 민중운동사까지 쉽게 정리해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들려줍니다.

책이 51번째로 소개하는 곡은 한 사형수에게 바치고자 만든 박종화-파랑새'입니다.

박종화의 곡 중에는 강경대열사(1972~1991.4.26)가 가장 좋아했던 곡으로 알려진 '투쟁의 한길로'를 비롯하여 제주 4·3과 광주 5·18의 아픔을 노래한 '지리산', '바쳐야 한다' 등 지난날 여러 민중운동 현장에서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곡들이 많은데요.

그의 곡들이 민중운동가들에게 워낙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워낙 많은 곡들을 만든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노랫말로 쓴 곡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파랑새도 그처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 중 하나로 가장 절절한 사연의 곡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수감되어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면서 이미 접어든 운동가의 길에서 자신의 무기는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투쟁의 현장에서 결핍을 느꼈던 민중가요가 떠올랐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주신 납부금으로 기타를 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것으로 노래를 만든 경험이 있는 만큼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그러나 정식으로 작곡을 하거나 악보를 그리는 방법은 전혀 알지 못했다. 노래를 만들기로 결심하고는 옥바라지를 해주었던 친구에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 교과서 반입을 부탁해 독학에 들어갔다. 뾰족한 것은 연필도 불가능했던 감옥에서 30분간의 운동시간에 운동장에서 주운 핀과 못으로 책의 빈 공간에 나름의 기보법으로 작곡한 노래들을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작곡한 곡이 200여곡이 되었다. 1988년 12월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되자...-223~224쪽에서.


고등학생으로 5·18 그 날것을 그대로 겪은 박종화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당시 '데모를 제일 잘하는 서클'로 유명했던 '탈춤반'을 찾아가 가입한 후 열심히 데모, 1988년에 세종로 종합청사 점거투쟁에 참여했다가 검거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됩니다.

그때 노래의 주인공인 김성만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는 노태우 군사정권이 일련의 학생운동들이 북한 세력들에 의한 것이라고 포장하는 것으로 학생운동을 누르는 한편 정권을 견고히 하고자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구속, 죽는 것이 정해져 있는 빨간색 명찰의 공안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성찰, 의연하게 생활하며 도리어 후배들의 걱정거리를 함께 고민하는 김성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존경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의 존재만으로 수감 생활을 견디는 힘을 얻는 사람들도 많았고.

박종화도 그중 한사람이었다는데요. 그런 그에게 김성만은 이감 선물로 나비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까지 합니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무엇이든 귀한 감방에서 무엇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것은 지지 또는 응원의 마음을 최대한 담은 최고의 표현이었습니다.

퍼덕퍼덕 거리는 새_푸른하늘 좋다고_높이높이 날더니_왜 날개 접었을까__퍼덕퍼덕 날고 싶어도_날 수가 없네_울고 싶어도_울 수가 없는 새야__못다한 사랑이_못 다 이룬 약속이_못다한 청춘이 애달퍼_파랑새는 울어 예으리__못다한 사랑이_못 다 이룬 약속이_못다한 청춘이 애달퍼_파랑새는 울어 예으리('박종화 곡-파랑새' 노랫말 전문)

그런 김성만에게 '노래를 만들어 선물하자'고 마음먹지만, 이제 막 독학으로 노래 습작을 시작한 것에 불과했던지라 마음속에만 간직한 채 어떻게 만들까. 고민의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거센 비가 내리던 어느 밤, 빗속에서 퍼덕이는 새 한 마리를 떠올리게 되고, 그 모습에서 김성만을 보게 됩니다. 거센 빗줄기를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모습에서 시대의 아픔이기도 한 사형수란 굴레를 이겨내고 어떻게든 자신을 추스르려는 김성만을 보게 된 것이겠지요.

그날 이후 김성만에게 바칠 노래는 훨씬 순조롭게 풀려나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래가 완성되기도 전에 김성만은 사형을 앞두고 다른 구치소로 이감되고 맙니다. 그에게 구치소에서 사 먹은 빵의 비닐봉지들을 길게 늘이고 꼬아서 만든 나비와 함께 김성만 자신과 함께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된 양동화가 역시 그처럼 빵 봉지로 만든 짚신을 선물한 후.

그래서 자신의 영웅에게 노래를 선물하겠다는 것을 마음속 소망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는데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노래를 완성한 그는 그래서 노래 제목에 '사형수'를 덧붙였고,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원래의 제목은 '파랑새(사형수)'라고 합니다.

이 곡이 귀에 들어왔던 것은 인터넷 접속 후 인터넷이 연결해주는 신세계에 한없이 빠져들었던 2000년 겨울. 노랫말 때문에 '어떤 꿈이나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한 어떤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 아닐까?' 지레짐작하며 듣곤 했습니다.

청소년기부터 빠져들었던 퓨전 국악 느낌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서 즐겨듣곤 했으나 10년 넘게 잊고 있었는데요. 책 덕분에 요즘 며칠 변절 전의 김지하가 쓴 시로 만들었다는 '녹두꽃(49쪽~)'과 5·18 당시 중학생으로 아버지를 잃은 박용주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목련이 진들(240쪽~)과 함께 즐겨들었습니다.

드라마틱하면서 의미 남다른 사연을 접한 덕분에 파랑새가 더욱 의미심장에게 와 닿고 있습니다. 노래가 훨씬 맛깔스럽게(?) 들리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어떤 곡인가 알고 들을 때와 모르고 들을 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는데요. 책은 파랑새처럼 남다른 사연을 지닌 민중가요들을 관련 인물이나 사건과 함께 누구나 읽기 쉽게 녹여 들려줍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곡들 중에는 민중운동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아침이슬'이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상록수', '직녀에게', '타는 목마름으로' 등도 있고,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지난 몇 년간 5·18기념식 때마다 논란이 될 정도로 중요한 곡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술도서로 출간됐음에도 일반 대중서처럼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파랑새 한 곡으로 강경대열사를 비롯하여 김성만과 박종화에 대해, 그리고 그들과 관여된 5·18민주항쟁을 비롯하여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1985년), 학원 자주화 완전 승리와 총학생회장 구출 투쟁 및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1991년)에 대해 쉽게 풀어쓰고 있습니다. 민중가요 역사는 물론 지난날 우리의 민중운동을 정리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그런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정유하)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05-15 | 정가 23,000원.

그래도 우리는 노래한다 (반양장) - 민중가요와 5월운동 이야기

정유하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17


#5·18민주항쟁 #박종화(민중음악가) #파랑새(민중가요) #김성만(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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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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