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지키기', 문재인 대통령 지키는 길 아니다

[게릴라칼럼] 문 대통령의 '성평등 정책' 의지를 퇴색시키지 않으려면

등록 2017.06.27 20:47수정 2017.06.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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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삼철'로 불렸던 최측근들은 청와대에 없다. 청와대 안살림을 맡은 7급 공무원 출신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 고작 1992년부터 법무법인 부산 소속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인권변호사 출신 김외숙 변호사가 청와대 법제처장에 지난 9일 임명됐을 뿐이다.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도, 조국 민정수석도 박수현 대변인도 문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을 자랑했던 인사들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문 대통령도 참 외롭지 않을까도 싶다. 국정을 운영하면서 편히 마음 털어놓고 고민을 나눌 측근, 속내도 좀 내비치고 하소연이나 농담도 늘어놓을 수 있는 인사도 청와대 내에 필요하지 싶기도 하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실 선임행정관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 역시 참여정부 시절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삼고초려를 통해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측근'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디 청와대가 그런 곳인가. 먼저 국정농단 사태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그래서 국민들의 일말의 자존심까지 뭉개버린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는 깨끗이 잊을 필요가 있다. 지난 정권과 비교하는 것 자체로 이 정부의 격을 초반부터 떨어뜨리는 일이니까. 더욱이 권위주의의 상징이자 구중궁궐로 느껴졌던 청와대를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국민들은 지금 청렴은 물론 일 잘하는 청와대를 원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를 향한 환호도 그러한 신선함과 믿음에서 비롯됐다. 더불어 정권 초기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 인기에 흠집을 낼 만한 인사나 잡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 측의 대응에 "왜 빨리 진화하지 않고 잡음과 논란을 키우는 건가" 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납득할 만한 상황이다. 

물을 만난 듯 탁 행정관과 청와대 때리기에 나서는 일부 야당과 언론이 야속할 수도, 정치 공학의 일환이라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성누리당'으로 불렸던 새누리당의 후신이 자유한국당이 이 논란에 숟가락을 얹으며 청와대를 비판하는 것은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사태의 추이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오늘(26일) 국민의당 제11차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발언에 나선 김정화 비상대책위원의 일침이 결코 먼 나라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성평등 대통령'과 '탁현민 논란'이란 리트머스 시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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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 출마선언 행사에서 현장 지휘를 하는 탁 행정관의 모습. ⓒ 연합뉴스


"더 이상 부끄러움의 몫은 국민의 것이 아니기에 먼저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후보시절부터 성평등 대통령을 외쳤던 것이 국민에게 환심을 사려는 일시적인 구호가 아니었다면 부디 탁현민 행정관을 보듬고 가기를 포기하고, 책임정치를 금과옥조로 삼아 보듬고 가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에게도 요구한다. 더 이상 묵언수행을 포기하고, 청와대 밖으로 걸어 나와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후보 시절부터 천명했던 '고위공직자 5대 배제 원칙'은 인사청문회의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 탁 행정관과 관련한 논란도 결국 '성평등 대통령',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내세웠던 문 대통령의 진의를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사용되고 있는 분위기다. 

결과적으로, 김 비대위원이 "임기 내에 남녀동수 내각, 페미니스트 선언, 동일노동 가치, 동일임금 등 사실 성평등 대통령을 표방했던 문재인 대통령이기에 <남자마음 사용설명서>로 처음 논란이 일어났을 때 탁 행정관이 스스로 지금은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입장을 뛰어넘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발언의 빌미도 문 대통령이 준 셈이 된 것이다.

향후 확실한 정책과 철학으로 증명해야 할 '성평등 대통령'의 가치가 초반부터 탁 행정관 논란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또 묵묵부답으로 인해 증명을 요구받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정치권과 반여 성향의 언론들의 공세도 이러한 관점과 대동소이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과 같은 비유로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돼지발정제' 논란을 경험하고도 사퇴는커녕 당당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를 목도하며 열패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반면 2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긴 소설가 이외수는 그 반대편에 선 것으로 보인다.

"자기들이 무슨 성자라도 되는 양 남을 헐뜯기 좋아하시는 분들께 날리는 돌직구. 트친들의 필독을 권합니다."

그가 인용한 <머니투데이> 박종면 대표의 칼럼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일부 문 대통령 지지자들 역시 이러한 관점에 동의를 보내고 있다. 다소 길지만, '안경환과 탁현민의 성의식'이란 칼럼 중 탁 행정관과 관련한 내용은 이러하다. 

"안경환에 이어 야당과 여성단체는 물론 일부 여당 의원까지 나서 사퇴를 압박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비서관이다. 그도 죄명은 똑같다. 여성비하적이며 천박하고 왜곡된 성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와 뒤태가 아름다운 여자가 끌리는 여자다. 내 성적 판타지는 임신한 선생님이다.' 10년 전 그가 쓴 수필집에 나오는 이런 내용들이 과연 여성비하적이며 왜곡된 성의식의 발로일까.

'누구에게 흥분을 느낄지는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맛의 아이스크림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섹스는 본래부터 이상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이자 '연애학 박사'로 평가받는 스위스 태생의 천재 작가 알랭드 보통이 '인생학교,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알랭드 보통의 지적대로라면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하든 임신한 선생님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든 그건 취향의 문제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커피를 마실 때 아메리카노를 마시든 라떼를 마시든 시비를 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권이나 언론 또는 시민단체가 어떤 사람을 공격할 때 섹스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건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취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성과 섹스에 대한 공격을 받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처럼 비열한 짓도 없다. 어떤 사람의 행위가 아닌 그가 쓴 저작물의 내용에 대한 공격이라면 더 그렇다. 현대판 분서갱유일지도 모른다. 문재인정부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2017년 6월 대한민국은 야만의 시대다."

그럼에도 확고한 문 대통령의 '성평등 정책'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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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4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강당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미래, 성평등이 답이다'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후 이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 남소연


야만의 시대 맞다. 아직도 이런 논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 국한된 야만의 시대. 그러나 미안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성적 취향은 개개인의 문제지만, 그것을 공적인 영역이자 인세까지 벌어들이는 저술활동으로 공론화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10년 전의 저술일지라도, 그가 이후 여성인권과 관련한 행사를 기획하고 활동을 해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더더욱, 탁 행정관이 의전비선 행정관이란 직함을 달고 입성한 청와대는 '성평등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아닌가. 성공회대 겸임교수이자 문화예술 기획자이면서 '문재인 지지자'인 탁현민의 이런 저술과 언술이 2017년에 논란이 됐다면, 이런저런 논쟁들도 불필요하지 않았겠는가.  

탁 행정관의 10여 년 전 성적 판타지나 성의식을 구구절절 훑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명한 것은 1980년대에 10대를 보내고,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그가 30, 40대에 '리버럴'과 '문화예술인'이란 타이틀을 달고 당당하게 여성 비하에 해당하는 발언들을 저술을 통해 쏟아낸다는 점이리라.

가부장제와 남녀 불평등을 몸소 겪어 낸 '진보' 남성이 '생활 속 불평등적 성경험'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니 오히려 '남자들은 다 그래'와 같은 스탠스를 가지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성의식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각을 용인했던 사회와 그런 사회를 바꿔보자는 2017년의 성평등 의식. 그것 자체가 문 대통령이 공약사항으로 내건 '성평등 대통령'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요체이리라. 그런 점에서, '성평등'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소식은 꽤나 상징적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26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성평등 추진 체계 강화 간담회'를 열었다.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자문위원회 형태로 출범시키는 한편 상설 사무국과 전담 인력을 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공약 이행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정권 초기 불거진 탁 행정관 논란이 이러한 '성평등' 정책의 진의를 두고두고 퇴색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내로남불', 문재인 정부에서는 불필요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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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이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해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과 여성 의원들에게 쏟아졌다는 문자폭탄 혹은 문자행동의 파장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백 대변인은 지난 22일 탁 행정관과 관련,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청와대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탁 행정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진행자의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한편 같은 날 야3당 여성의원들도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탁현민 행정관을 해임하고 상처받은 여성들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들에게 일부 여당 지지자들의 반대 문자가 쇄도했다고 한다.   

과연 여당 여성 의원들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일인가. 과연 탁 행정관 논란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확대 재생산은 과연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논란이 부지불식간에 확대되는 '문재인 vs. 반문재인' 노선의 기이한 확장 혹은 변질에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명확한 목표는 달성됐다. 이후 각자의 철학과 입장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준과 요구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탁 행정관의 경우, '성평등 대통령'이란 공약과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의 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과 결부돼 있다. 이들이 지금 '탁현민=문재인' 공식이 성립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구도와 전선의 확대는 청와대와 정국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줬거나,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전체를 놓고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는 복잡다단하다.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현 청와대와 정부 여당 역시 정교함을 요구받고 있고, 정권 초기 국민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다단한 문제지만,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다. 인사청문회 3차 라운드가 한창이 이번 주, 탁 행정관의 거취 문제에 청와대가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해명이 필요하다면 해명을 할 일이다. 국민들에게 묻는다면 또 물을 수도 있는 일이다. 놓아줘야 한다면 놓아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탁현민=문재인' 공식이 성립될 리 만무하다는 점이다. 비록 인지상정의 측면에서, 능력을 갖춘 측근을 청와대에 두고 싶은 대통령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태의 파장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지자들 역시 탁 행정관을 지키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지킨다"는 정서는 동일한 맥락일 수 없다는 점 역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반면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70%까지 떨어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탁 행정관의 거취 문제가 이토록 파장을 낳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인사들에 대한 논란과 잡음은 오히려 깔끔히 털고 가는 것이 맞다. 논란 끝에 취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파격 행보와 같이 좀 더 긴 안목을 가지고 '문재인의 사람들'이 이뤄내는 정책과 변화, 그리고 안정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현명한 길일 것이다. 정권 흠집 내기에 몰두하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에게 빌미를 주기보다 말이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40여 년 전 행동으로 "대선 후보 사퇴" 요구를 받은 것이 불과 두 달여 전이다. 아무리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란 자세가 한국사회에 만연한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생각은 분명 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청와대의 신중한 선택을 기다린다.
#탁현민 #성평등 #문재인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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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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