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속 왕자는 정말 인어를 사랑했을까

[서평] 동화 속에 이렇게 깊은 뜻이, <동화독법>

등록 2017.06.27 18:38수정 2017.06.29 14:06
0
원고료로 응원
<동화독법>이라니, 읽기 전에 '동화를 읽는 방법이 따로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만한 책이다. 그런데 작가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총 11편의 동화와 우화, 민담 속에 감춰진 의미를 톺아보다 보면 <동화독법>이라는 제목을 달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을 떠올리며 그 이야기 속에 감춰진 역설과 반전, 미처 몰랐던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a

책 표지 <동화독법> 김민웅 지음. (주)이봄 ⓒ (주)이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인 저자 김민웅은 이 책을 독자들에게 건네는 이유를 '고정관념은 때로 세상을 공평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나 민담에서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새로운 생각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독자들께 건네는 이유입니다."-23쪽


저자가 고정관념을 걷어내기 위해 첫 번째로 택한 동화는 안데르센의 대표작 '미운 오리 새끼'다. 잘 알려진 대로 우연히도 오리들 틈에 끼어 태어난 아기 백조가 실상은 오리가 아니라 그 어떤 오리도 따를 수 없는 우아한 백조였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자기와 다르게 생긴 오리를 못살게 구는 오리들의 고정관념이 가한 폭력과 배타의식을 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동화를 읽으며 일반 독자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던 부분을 지적한다.

"백조의 특권적 위상을 설정해놓은 거예요. 이는 백조로 태어나지 못한 존재에게 본질적 절망과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오리로 판정되는 존재는 죽었다 깨어나도 백조와 달리 차별받는 세상을 넘어설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54쪽 

저자의 해석대로라면 오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흙수저요, 백조는 흙 속에 있어도 진주 같은 존재라는 계급적 설정이 작품 속에 있던 셈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다들 백조가 되고 싶어 하는데…. 저자는 여기에서 어쩔 수 없이 동화의 기능에 충실하게 접근한다. 어린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교육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동화 말이다.

"부디 겉모습만 백조처럼 되려 하지 말고 어떤 내면을 지닌 백조가 되려는지, 그런 백조가 되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함께, 행복해지는지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8쪽 

목숨 걸고 사랑하다 실패했다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꾼다. 백마 탄 왕자와 공주가 만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의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경험하고 나서,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동화독법>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적나라하게 해석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희망고문이나 주는 나쁜 왕자와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인어공주 이야기다. 저자는 왕자가 인어공주를 '마음 내키면 아무 때고 손 뻗쳐서 꺼내 입을 수 있도록 언제나 자기 옷장에 걸려 있는 옷 한 벌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인어공주는 목숨을 걸고 왕자를 사랑했지만, 왕자에게 인어공주는 감정의 떨림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귀중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나 다른 소중한 것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남자의 사랑입니다. 인어공주가 사랑한 상대는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남자의 맹세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146쪽

인어공주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는 '사랑에 실패했다고 모든 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온몸으로 사랑하다 그로 인해 고통을 받은 이들의 영혼이 허망한 물거품으로 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나 그 마음이 쏟아내는 기운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거지요." -156.

<동화독법>은 일방적인 교훈과 훈계를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에서도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으로만 알고 있던 '양치기 소년'에 대한 해석은 무릎을 치게 한다. 저자는 양치기 소년을 일종의 경보장치로 본다. 상습적인 거짓말로 동네 사람들의 신뢰를 잃은 소년은 고장난 경보장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에 대한 비난이 과하다는 점과 함께 어른들이말로 무책임했음을 지적한다. 경보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어른들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을 공동체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마을사람들은 망가진 경보장치를 고치든가 아니면 다른 것으로 바꾸든지 또는 갈아치운다고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제3의 대안을 마련해야지요. 이른바 '플랜B'라는 것 말입니다. " -208쪽

사유의 촛대에 불을 켜라

그 밖에도 심청전이나 토끼전과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해석은 사건 이면을 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민중, 당대 독자들의 관점에서 사안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해석에 감탄하다 보면 저자의 능력에 기가 죽기도 하고, 괜히 딴죽을 걸고 싶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들이 읽는 동화까지 '읽는 법'을 익혀서 감춰진 의미를 들춰내야 하는 걸까, 싶은 거다. 그냥 쉽게 읽혀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눈물 찔찔 짜기도 하고, 그 가운데 교훈도 얻는 줄로만 알았던 동화. 여기서 깊은 뜻을 찾아내야 한다면, 동화는 더 이상 동화가 아니지 않나.

김민웅의 <동화독법>은 단순히 동화 '읽는 법'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에게 친숙하고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새로운 생각의 단서를 발견하여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사유의 촛대에 불을 켜는' 안내서라고 하는 게 맞겠다. 한 마디로 <동화독법>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훈련교재인 셈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가 대단하다. 말재주꾼이다.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국제정치학과 신학,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을 공부하여 동화, 우화, 민담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해석이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현대미술을 열었다는 마르셀 뒤샹은 "예술가가 뭔가를 예술이라고 명명하기면 하면 예술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예술을 해석함에 있어서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품 해석이 오롯이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몫이 된다 해도 낙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술이 예술가 자신의 정신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해석은 감상하는 이의 몫이다. 동화 역시 읽는 이의 수준에서 낄낄거릴 수 있으면 좋고, 눈물 짤 수 있어도 좋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지 않겠는가? 읽되,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지만 않으면 된다.

동화독법 - 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 개정판

김민웅 지음,
이봄, 2017


#동화독법 #김민웅 #고정관념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