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병역비리에 분노하는 이유

[헌법 쉽게 읽기 28]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국방의 의무

등록 2017.06.27 14:07수정 2017.06.2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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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9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2012년 2월 22일 18대 국회의원이었던 강용석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의원직 사퇴를 발표했다. 국회의원의 사퇴는 정치적 항의를 위해 단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단독으로 사퇴를 발표한 강용석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강용석의 사퇴 기자회견 몇 시간 전 세브란스 병원의 발표가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은 박주신이 병무청에 제출한 MRI 자료가 본인 것이 맞다고 밝혔다. 박주신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로 강용석으로부터 불법적 병역면제 의혹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강용석은 자신이 제기해온 의혹이 거짓으로 밝혀져 의원직을 사퇴한 것이었다.

강용석은 매우 집요하게 박주신의 병역의혹을 제기했다. 박주신은 허리 디스크 문제로 병역면제처분을 받았는데 이 때 병무청에 제출한 MRI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것이 강용석의 주장이었다. 강용석은 자신의 의혹제기가 사실이 아닐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결국 박주신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공개 신체검사를 받았고 병역면제 판정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강용석은 단순히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한 것을 넘어 명예훼손 등 형사처벌을 받을 위기까지 몰렸다.

강용석은 박주신의 병역의혹을 제기하기 얼마 전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제명당했다. 대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나운서는 다 줄 생각은 해야 한다. 근데 이대 이상 급은 자존심이 있어서 다 안 주더라"며 아나운서를 모욕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심지어 강용석은 자신의 발언을 문제 삼은 이들을 무고죄 등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저급한 언사와 행위로 소속 정당에서 제명까지 당한 강용석에게는 국면전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박주신은 강용석에게 국면전환을 위한 카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런데 박주신의 병역면제의혹 제기는 강용석에게 매우 위험한 카드였다. 허리 디스크는 병역비리에 주로 이용되는 병명이 아니었다. MRI라는 정밀진단 결과도 있었다. 더욱이 상대는 최고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거물급 정치인의 자녀였다. 그럼에도 강욕석이 자신의 의원직을 걸면서 까지 위험한 싸움을 걸었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에서 병역이 가지는 특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인사 후보자에 대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등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고는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혹들은 후보자를 상처 낼 수는 있으나 낙마시키기는 어렵다. 그런데 병역비리에 연류 된 후보자는 대부분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는 한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병역문제는 매우 민감한 주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가진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아야 한다.

헌법 제39조 제1항은 국방을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고 제5조 제2항은 국방을 신성한 의무라 수식한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이 되었다. 휴전은 남과 북의 군사적 대치 형태로 6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라는 군사대국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서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군의 사드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관계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군사적 긴장관계만이 아니다. 한국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수십 년의 군사정권을 경험했다. 군사정권은 권력유지를 위해 한국을 병영국가화 시켰다. 학생들은 군복과 다름없는 교련복을 입고 나무총을 손에 든 채 교련수업을 받아야 했다. 반공 글짓기와 웅변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로 북한을 비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첩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중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조작된 간첩사건들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는데 활용되었다. 사회는 점차 병영국가화 되었고 국가에 의해 고양된 반공의식은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만큼 국방의 의무 또한 강조되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는 국방을 신성한 의무라 강조하며 성실히 수행할 것을 강요했지만 정작 사회 지도층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고는 했다.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짧은 기간 단기 장교 복무라는 제도가 있었다. 석사장교라 불렸던 이제도는 석사학위 소지자 중 일부를 선발해 6개월 간 군사훈련과 전방체험을 받게 한 뒤 소위로 임관시킴과 동시에 전역시켜주는 제도였다. 병역의무를 6개월 만에 이수하고도 장교출신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는 파격적 제도였다.

당시 병사의 복무기간이 3년 정도였고 군 장교 출신에 대한 사회적 우대가 컸던 점을 고려한다면 석사장교의 혜택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데 석사장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의 자녀들이 이를 통해 군복무를 마치자 곧 폐지되었다. 때문에 대통령 자녀의 군복무 혜택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지만 정작 자녀들은 아버지가 만든 제도를 이용해 6개월 만에 장교로 복무를 마쳤던 것이다.

1997년 12월에 치러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은 겨우 1.6%의 득표차로 김대중에게 패했다. 이회창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 체중미달로 병역의무를 면제받았다. 김대중 측은 이를 끈질기게 문제 삼았다. 두 아들이 모두 체중미달로 병역의무를 면제 받은 것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두 아들의 병역면제의 문제점이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었지만 국민들은 대통령 후보의 아들들이 모두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점에 분노했다. 병역의혹은 이회창의 결정적 패인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대선 직전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의 참사 박충을 만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총풍사건이다. 대통령 선거 직전 휴전선에서 북한에 의한 무력도발이 일어나 공안정국이 조성되면 보수정당 후보인 이회창 측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국가안보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이들이 정작 자녀들은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에 국민들은 또 다시 분노했다.

한국이 병역문제에 민감한 이유에는 전쟁과 병영국가라는 역사적 경험과 병역회피라는 사회지도층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매우 크다. 그런데 매우 유사한 경험을 가졌음에도 한국과 정반대의 길을 걸은 국가가 있다. 중앙아메리카 남부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운하로 유명한 파나마(Panama)가 있다. 파나마의 북쪽에는 중국 자본에 의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새로운 운하를 건설하고 있는 나카라과(Nicaragua)가 위치하고 있다.

니카라과 운하가 완공되면 파마나운하의 매우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대형 운하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니카라과와 파나마 사이에는 코스타리카(Costa Rica)라는 면적 51,100㎢로 한국의 절반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가 있다. 코스타리카의 인구는 500만이 채 되지 않으며 1인당 GDP 또한 1만 달러에 못 미친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니카라과와 파나마 사이라는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위치의 작은 나라임에도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국제인권분야에서 코스타리카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런데 강력한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다.

코스타리카의 외교적 영향력과 군대가 없다는 것은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 대통령 부정선거가 발단이 되어 내전의 아픔을 겪었다. 내전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전국민의 약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망자를 만들어냈다. 내전 후 정권을 잡은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José Figueres Ferrer)는 반전 여론에 힘입어 군대를 폐지해 버렸다. 다시는 같은 국민들끼리 총구를 겨누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대의 폐지는 단순히 군대라는 물리적 실체를 없애는 것을 넘어 안보관 자체를 변화시켰다. 군대가 없기에 대외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 해야만 했다. 코스타리카는 외교력의 신장에 집중했다. 국내에서는 국방예산을 국민들을 위한 교육, 보건, 문화 등에 투자했다. 그 결과 현재 코스타리카는 국제적 인권이슈를 선두에서 이끌어나가는 인권 선진국이 되었다. 물론 군대를 폐지한 1948년 이후 단 한 번의 전쟁도 경험하지 않았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군대를 없애자 전쟁도 없어진 것이다.

물론 코스타리카의 경험을 그대로 한국에 대입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코스타리카 역시 한반도 못하지 않은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위치에 있으며 내전이라는 국가적 비극을 경험한 국가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국가의 비극을 군대의 폐지로 발전시켜 평화와 인권의 국가가 되었다. 반면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경험을 군사국가화로 발전시켰다. 그 결과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군사적 긴장상태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가 되었다. 만약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발전시켜 남북 간 군사적 화해로 이어갔다면 한반도의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국가에 군대가 필요하다면 그 짐은 국민 모두가 나누어지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한 번쯤은 군대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그랬다면 최소한 사회 지도자들이 병역비리로 공격당하는 일도, 국민을 지켜야 하는 청와대가 자국 군대를 겨냥한 총격을 요청하는 일도, 국회의원이 무고한 이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다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사회지도자들의 도덕성에 대해 분노하느라 힘을 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병역비리 #국방의 의무 #군대 #코스타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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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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