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회 부조리와 싸워 이긴 첫 사례로 남고 싶어요"

[내부고발자, 이제는 사회가 감싸줄 때 ③] 연구성과 되찾고자 거리로 나선 이영이 박사

등록 2017.06.28 19:32수정 2017.06.2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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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연구비 횡령, 논문 강탈... 현재 대학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교수들의 '갑질'은 위험수위에 육박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학원생 1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원생 10명 가운데 1명(10%)은 교수에게서 폭언이나 욕설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가운데 11.4%는 교수의 연구를 대신한 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논문 지도를 받아야 하는 데다 학위과정을 마친 뒤 교수 추천을 받아야 하는 처지임을 감안해 보면 자칫 문제제기를 했다가는 매장당하기 일쑤여서다.

상명대 이영이 박사는 대학사회 부조리에 맞서 3년째 거리로 나와 싸우고 있다. ⓒ 지유석


상명대 이영이 박사는 이런 현실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목소리를 냈다. 이 박사는 이진희 박사와 함께 '동북아시아 명승 보존관리 비교연구, 도서경관의 명승적 가치 해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승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건 국내 최초였다.

상명대와 지도교수인 이아무개 교수는 두 사람의 연구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에서 학술용역을 받았다. 학교 측은 이 박사에게 명승 외에 별서정원, 서원, 향교 등 조경공간의 조경기법 및 전통조경 모델(안) 제시 연구용역을 만들어 산학전임 연구교수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지도교수는 차명계좌를 만들어 이 계좌로 연구비를 받았다. 학생들의 연구비도 이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이 박사와 맺었다는 전임연구 교수 계약도 연구원 계약이었다.

이 박사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처음엔 학교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 측은 불통으로 일관했다. 문화재청은 연구용역을 다른 학교로 넘겼다. 이 박사가 재차 문제를 제기하자 문화재청은 상명대에 다른 연구용역을 줬다. 그러나 이 박사는 배제돼 있었다. 학교와 문화재청은 침묵을 강요했다.

결국, 이 박사는 거리로 나왔다. 처음 거리로 나온 때가 2014년 6월이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 동안 이 박사는 상명대와 국회를 오가며 피켓 시위를 벌인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시위 중인 이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당하신 일이 무척 충격적임에도, 아직 많은 분들이 사안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언론에 노출된 적도 별로 없어 보인다. 거리로 나오기까지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해달라.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도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학교와 지도교수가 연구교수직을 제안했다. 교수의 꿈을 품고 있었고, 학교에 계속 남고 싶어 수락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산학전임 연구교수가 아니라 연구원이었다. 이를 확인하고 처음 문제를 제기하고 계약파기요청을 했다. 그러나 지도교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2014년 2월까지 계약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잘못임은 알았지만, (거절하면) 이쪽에서 발붙일 수 없기에 요구에 응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총장 면담이 이뤄졌는데, 계속 말을 바꿨다. 처음엔 임명장 배달 사고라고 했다가 임명장 발부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이 도장을 찍지 않아 임용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난 임용계약서를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근로계약서를 체결했지만, 임용계약은 아니었다. 학교 측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문화재청 역시 처음엔 교수 연구자가 아니면 연구 발주가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보니 2014년 2월 연구발주가 나갔음을 확인했다."

- 최근 황망한 일을 당했다고 들었다. 
"이달 초 시위하러 학교에 가는데 상명대 총동문회 명의로 '천안캠퍼스 환경조경학과 졸업생 이영이는 개인적 목적으로 재학생 학습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뿐만 아니다. 중앙동아리 학생 명의로 비슷한 내용을 적은 현수막이 또 걸렸다. 처음엔 몰랐다. 다른 학생이 알려줘서 알았다. 소셜 미디어상에 개설된 '상명대학교 대나무숲'에 한 학생이 이 일을 공론화했고, 댓글 반응이 속속 달렸다. 결국, 학교는 현수막을 철거했다. 그러나 총동문회 명의의 현수막은 떼지 않았다.

상명대 총동문회와 중앙동아리는 학교 앞에 이 박사를 폄회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학생들이 이에 항의하자 이 현수막은 철거됐다. ⓒ 이영이 박사 제공


이 광경을 보고 학교가 왜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문제제기했을 땐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구체적인 사례 수집에 나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이 조사 대상자에게 강압적 태도를 취한 게 드러나 법적 조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학교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그러니까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불거지던 시점에서 학교 측이 만나자고 제의했다. 이후 매월 총장과 면담이 있었다. 학교 측은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찾아가니 학교에 현수막이 걸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현수막이 걸린 후 1~2주 지난 시점에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었다."

- 그동안 싸움을 해오면서 정말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점이 있다면?
"가장 부조리하고 억울한 점이라면 연구교수 계약이 허위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학교와 문화재청이 행정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이렇게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 또 학교 측이 지도교수가 개설한 차명계좌의 등록을 승인해 연구비를 지급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연구비는 국고에서 지급된 국민 세금인데 말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연구비를 착복 당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다. 문제를 제기하면 피해자더러 수사당국에 고발하라는 말만 한다. 내 경우 문화재청은 연구결과를 받았으니 환수할 의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 인건비가 생활비이기도 하겠지만, 노동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조차 보호받기 어렵고,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마땅히 호소할 정부 기관이 없다. 결국,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란 말인데, 이런 식이면 누가 싸우려 하겠는가?

요사이 비선 실세 최순실의 부정은닉 재산을 환수한다, 방위산업 비리 조사해 몇 부정축재 재산 환수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학원생들의 경우 떼인 돈이 몇백만, 혹은 몇천만 수준이어도 전국의 피해사례를 합치면 엄청난 액수고 사례도 훨씬 많다. 그런 이들을 보호해 줄 장치조차 없으면서 이들에게 모든 걸 희생해서 연구에 매진하고 꿈을 꾸라고 말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부조리에 무방비 상태인 대학원생들

- 사실 대학사회에서 자행되는 비리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고발에 나선 이유가 있다면? 
"처음엔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반응은 싸늘했다. 어떤 교수는 '이것도 배움의 과정이야'라고 훈계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측이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작업'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동안 힘들게 공부했다. 그래서 끝까지 버텨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지도교수를 찾아가 '나도 당신의 제자이지 않은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지도교수는 이런 내게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봐'하고 말하시더라. 아버님께서 교수가 한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교수를 만났다. 교수는 아버님께도 똑같이 말했다. 여성이라는 점도 싸움을 힘들게 만든 원인이었다. 문제제기를 하니 온갖 악성루머가 나돌았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싸울 수밖엔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 대학원생들을 제대로 보호해줄 제도가 있는가? 그리고 그동안 싸워 오면서 현행 제도의 미비점을 인식했다면 말해달라. 

상명대 이영이 박사는 대학사회 부조리에 맞서 3년째 거리로 나와 싸우고 있다. ⓒ 지유석


내가 겪고 있는 문제는 아마 대학원생들이 할 수 있는 내부고발 사안이다. 비리를 인지했다면 섣불리 대응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국민권익위원회를 먼저 찾아가기 바란다. 권익위에 제보하면 공익제보자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대학원생들은 언론에 보도되면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언론에서 관심 가져주면 고맙지만, 그러나 이건 역으로 당하는 거다. 이런 제도를 아는 대학원생이 많지 않다.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나 스스로도 잘 몰랐다.

현행 제도에서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만약 교수가 연구비를 횡령했다고 하더라도 액수가 미미하고,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면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대게 연구비 횡령은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의 처분으로 종결되는데, 연구비를 반드시 환수토록 해야 한다.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연구는 교수가 하지만 계약은 대학이 한다. 그런데 현 제도는 대학에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연구용역의 계약 당사자는 학교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은 교수 한 사람이 짊어지도록 규정돼 있다. 연구용역을 수주하면 학교가 5~25%의 간접비를 받아가는데도 말이다. 학교에 제재를 가하는 규정이 있어야 학교가 교수를 관리하고, 만약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 대학원생들의 연구 성과물 및 인권, 노동권 보호 등을 전담할 기구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은 국가의 지원사업을 따내야 하고, 그래서 국가의 눈치를 볼 수밖엔 없으니 말이다. 지난해 10월 비슷한 처지의 대학원생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때 연구윤리위원회 같은 상설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영이 박사는 꼭 학교로 돌아가 학내 부조리를 고발해도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했다. ⓒ 지유석


- 끝으로 본인이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대게 내부고발하면 다른 인생을 살라고 조언하는데, 난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애초에 학교에서 약속한 연구교수직, 그리고 빼앗긴 연구성과를 되찾기 원한다. 이를 위해 오랜 시간 싸워왔다.

비록 내가 당한 일이 크게 쟁점화되지는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학교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사회에서 승리할 수 있고, 연구성과를 지킬 수 있구나, 쫓겨난 이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줄 수 있어서다.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하면 신뢰가 떨어지고 절망감을 준다. 그러면 싸움도 꺼리게 된다.

제 싸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저서 비슷한 처지의 대학원생들이 찾아오면 이들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주고 싶다. 궁극적으로 대학사회의 부조리와 싸워 이길 수 있고, 공익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를 준 선례로 남고 싶다."
#이영이 #상명대 #문화재청 #내부제보실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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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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