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 반대, 기득권 보장해 달란 것 아닌가요?"

[아이들은 나의 스승 105] 자사고·외고 폐지 방침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

등록 2017.07.01 10:51수정 2017.07.0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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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의식이 몸에 밴 경우가 아니라면, 자사고와 외고가 우리 교육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아마 없을 걸요. 자사고와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솔직히 말해서, 기득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 아닌가요?"

"말이 좋아 '수월성 교육'이지 사실 '격리 교육'과 다를 바 없어요. 협동 학습을 권장하지는 못할망정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막아서는 꼴이잖아요. 학교와 교실을 대학입시를 향한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등학교의 서열을 정해서 아이들 사이의 교류조차 못하도록 담을 쌓아버리는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해서 명문대 입학의 지름길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자사고와 외고의 차이점은 뭘까요? 학벌구조에 편승해 우리 교육을 농단한 대표적인 적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쩌면 애초부터 태어나서는 안 될 학교였는지도 몰라요."

정부와 일부 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고 폐지 방침에 대한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간추려 나열해 본 것이다. 지난 며칠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 아이들과 현재 일반고에 재학 중인 아이들, 그리고 졸업해 대학에 다니는 제자들의 생각을 두루 들어보았다. '특별한' 아이들만 다닌다는 자사고와 외고에 대한 '평범한' 아이들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더러 성적이 되고 가정 형편이 받쳐줬다면 자신도 주저 없이 선택했을 거라며 '지질한 뒷담화'는 하지 않겠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사고와 외고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아이는 중학교 때 학교가 그들을 별도로 '케어'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 담임 선생님께 대들었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명백한 편애이자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귀족 학교' 정도로 두루뭉수리 말할 뿐, 중3 아이들 중 자사고와 외고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이 자신과는 무관한 학교로 여겨선지, 이름만 익숙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학급 내에서 누가 자사고와 외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알지만, 남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자사고에 진학한 아이들, 그들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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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 학부모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시 교육청의 자사고 폐지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최윤석


자사고와 외고의 설립 취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고와 입시전형이 다르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모집 시기가 앞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낯설어했고, 심지어 자사고가 자율형사립고의 줄임말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무심함을 나무랐더니, 뉴스 볼 시간이 어디 있냐며 되레 눈을 흘겼다.

아는 거라곤, 자사고와 외고 출신들의 이른바 'SKY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다는 사실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 했을 뿐만 아니라 대개 집이 부유했다는 점을 들먹였다. 지금 자사고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는 한 아이는, 그가 애초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외고 아니면 자사고로 진학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확고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자사고와 외고에 합격하기만 하면 명문대 진학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떠들어대는 친구를 보며 그땐 순진하다고 손가락질했는데, 얼마 전 그가 '예상대로' 자사고를 거쳐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랍기보다는 씁쓸했어요. 그가 자격이 없다거나 나쁜 친구여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정해지는 것 같아 서글펐던 거죠."

호기롭게 명문대 합격을 운운하던 그의 자사고 진학은 언제, 누구에 의해 결정되었을까. 과연 그는 자사고의 교육과정과 자신의 적성과 흥미 등을 따져보고 선택했을까. 뻔한 자문자답이지만,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충실히 따랐을 뿐 어린 그가 판단할 개재가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금언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다.

일반고 아이들 무기력하게 만드는 온갖 괴담

무릇 아이가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 장래를 스스로 설계해가는 과정이다. 곧,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성숙한 모습을 지닐 때라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육의 본령이며, 가정과 학교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부모는 스스럼없이 아이의 미래에 개입한다. 그것도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되뇌면서. 하지만 미래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부모가 대신해줄지언정 그에 따른 책임은 결국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자신의 적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가엾은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양산된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일반고와는 비교될 수 없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그 이유로 내세우지만, 자사고와 외고의 존재 이유는 기실 '교육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특별한'에 방점이 찍혀있다. 단언컨대, '특별한' 아이들이 모여 있지 않다면, 그들이 자랑하는 '교육과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곧, 평범한 아이들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교육과정이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만약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있다면 일반고라 해도 자사고와 외고 못지않은 진학 실적을 낼 수 있다. 하긴 온갖 특혜로 특별한 아이들을 그러모은 일반고가 자사고와 외고 등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니 하나마나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자사고와 외고는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내세웠지만,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만든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위한 교두보에 불과하다.

화려한 명문대 진학 실적을 바탕으로 자사고와 외고가 성채를 높이 쌓아 올릴수록, 일반고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온갖 조롱과 괴담이 쏟아지는 양상이다. 일반고에 다니는 아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찌꺼기'라며 자학하는가 하면, 자사고와 외고 아이들은 일반고와 그 아래 특성화고를 '소년원'이라며 비아냥거리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돈 있는 부모를 가진 것도 능력'이라던 어떤 이의 조롱과 정확히 겹친다.

일반고 아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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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런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할지가 관심이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대부분은 외고·자사고 폐지와 관련해 교육부의 지침이 내려오면 따르겠다는 유보하는 태도를 일단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외고는 31곳, 자사고는 46곳이다. 사진은 지난 15일 서울시내 한 외고. ⓒ 연합뉴스


한편, 특정 자사고와 외고의 경우에는 같은 학교 졸업생들끼리만 사귄다면서 다른 자사고와 외고가 아닌 일반고 출신과 어울리는 건 '프라이드'에 흠집을 내는 일이라고 여긴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어엿한 '성골'이며, 일반고 출신과 사귀면 '진골'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6두품'도 안 되는 일반고 아이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한 졸업생 제자는 '일반고 전성시대'라는 현 서울시 교육감의 공약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일반고가 자사고와 외고에 주눅이 들어있다는 걸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반고가 자사고, 외고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테지만, 그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는 명문대 진학 실적을 놓고 겨루는 경쟁이라면 일반고는 절대 자사고와 외고를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사안의 해법이 '고교 다양화'가 아니라, '고교 단순화'에 있다고 단언했다. 그가 자사고와 외고의 폐지 방침을 적극 환영하는 까닭이다. 이번 기회에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이어갈 사람들을 위한 일반고와 졸업 후 취업할 이들을 위한 직업학교로 양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학벌에 따른 급여 차이를 줄이는 노력이 병행된다면 어렵지 않게 정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또 선후배를 통틀어 공부가 정말 하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를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면서, 이를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규정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시족'이 되어 학원과 도서관을 전전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러려고 전쟁 같은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왔나 자괴감이 든다고 푸념했다.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닌 대학과, 그런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무한경쟁을 감내하는 아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었다.

그러면서도 자사고와 외고가 우리 교육을 파행시킨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향해 마구 손가락질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 특권의식에 시나브로 젖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 또한 오랜 교육의 결과라고 보면 그들 역시 잘못된 정책의 피해자라는 설명이다. 당장 폐지되면 모교를 잃게 되는 졸업생들의 상심 또한 적지 않을 거라 덧붙였다.

내 아이만 특별하단 그 생각이, 우리 교육을 망친다

요컨대, 중3부터 대학생들까지 요 며칠 간 만나본 아이들 중 열에 여덟아홉은 자사고와 외고의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들 중엔 '고교 다양화'가 모든 중고등학생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끼친 최악의 정책이라며 혹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나머지 한둘도 반대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조변석개하는 교육 정책과 현행 입시 제도에 대한 반대일 뿐, 자사고와 외고를 두둔한 건 아니었다.

사족 하나. 얼마 전 자녀를 자사고에 보냈다는 한 학부모와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자사고와 외고 폐지 방침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발끈했다. 그의 반대 논리와 바람은 단순했다. '특별한 내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왜 문제냐'는 것이다. '상식적인' 그의 항변이 순간 귀에 거슬려 훈계하듯 따져물었다. 수긍하기는커녕 대들었으니 자칫 다툼이 일 뻔했다.

"학부모님의 자녀만 특별한 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 특별해요.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공교육의 근간이에요. 일반고나 특성화고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며 다그치는가 하면, 자녀를 위해선 한 달 학원비 100만 원도 아깝지 않게 여기면서, 학교교육 개선을 위한 교육세 내는 건 10원짜리 한 푼도 아까워하는, 그런 이기적인 욕망들이 우리 교육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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