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고 볼일 봐라" 일할 때 이래야만 하나요

고용주의 언어생활 관찰기, 노동자로서 이럴 땐 정말 답답했다

등록 2017.06.30 11:00수정 2017.07.0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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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문 열고 볼일 보다가 손님 보면 나오라니, 개구리도 아니고... ⓒ pixabay


6월부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용주의 언어들을 기록해보았다.

"화장실 갈 때는 문을 열고, 혹시 손님이 그 사이엔 오지 않나 내다보면서 볼일 봐."

손님용 화장실은 가게에서 멀고 지저분한데 직원 화장실은 카페 안에 따로 있어 편하다. 화장실 갈 때 눈치 주는 구조는 아니지만 사장은 "화장실 가서 손님을 못 받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문을 열고 볼일 볼 것"을 주문했다. 까페에서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사장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지만 나는 문 열고 볼일 보며 하는 근무가 괴이했다. 화장실 청소는 시키지 않겠다며 자신이 자상한 고용주라는 듯이 얘기했는데 그다지 타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6월 2일

"연습할 때는 우유 반만 써."

아직 라떼에 하트모양을 못 올려서 손님 없고 심심하면 라떼를 연습한다. 연습 중에 사장이 감시차 찾아와 지켜봤다. 어깨가 바짝 굳어서 스팀을 만드는데 사장이 못마땅한 듯 컵을 쥐어 채고 우유를 들여다봤다.

"봐봐, 우유가 너무 많아서 버리게 생겼잖아. 연습할 때는 반만 써."

아아, 하고 나는 깨달은 자의 감탄사를 했다. 사장은 무언가 설명을 덧붙이기 좋아했다. 그것이 권위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할 말을 잠시 생각하더니 "우유를 많이 버리면 하수처리 하는데 세금 더 들잖아"라고 말한다. 차라리 우유가 아깝다고 경영자적 입장을 솔직히 말했으면 그러려니 동의했을 텐데 인색함을 숨기려고 빈약한 논리를 제시하니 나는 웃어야 할지 끄덕여야 할지 모르겠다. 어설픈 설명은 권위를 발가벗긴다. 고용주라 이런 얘기를 어디서 못 듣고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다니는 게 분명하다. -6월 9일

알바할 때 꼭 '풀메이크업'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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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 입술에 아무것도 안 발랐지?"라는 말에 "그럼 사장님처럼 쥐 잡아먹은 듯이 바를까요?"라고 당돌하게 올려붙이고 싶었다. ⓒ tvN


"너 또 입술에 아무것도 안 발랐지?"

틴트를 바르고 집에서 나왔지만 착색이 덜 되는 제품이라 그런지 출근길동안 색이 옅어져있었다. 출근해서 인사를 하자마자 사장은 엄하게 핀잔을 줬다. 진짜 쌩얼이면 몰라도 틴트색이 옅다고 혼나는 건 얼척이 없었다. 사장은 50~60대였고 화장도 그 나이 아주머니들처럼 눈썹과 입술이 확 띄게 진했다. "그럼 사장님처럼 쥐 잡아먹은 듯이 바를까요?"라고 당돌하게 올려붙이고 싶었다. 화장이나 옷이 자기 취향이 아니면 피고용인을 혼낼 수 있는 것일까? 엄마도 나에게 청남방 좀 작작 입어라,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진한 장밋빛보다 연한 주홍빛이 더 잘 어울린다고 느껴서 내 틴트를 고수할 것이다. 시급 6470원에 내 신체에 대한 자유를 양도하지 않았음을 숙고할 것이다. -6월 10일

"머리 좀 어려 보이게 바꾸지?"

인사하고 퇴근하는 등 뒤로 사장이 머리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냐고 완곡한 강권을 했다. 원래 염색과 파마를 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뚝 떨어졌다. 사장의 요구에 최소한으로 응하는 '시급루팡'이 나의 목적이다. 하루 임금이 3만3320원인데 내가 사장에게 잘 보이고자 이틀의 임금을 쓰기는 싫다. 근무공간에서 피고용인의 외모변화가 필요하면 사장이 지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하며 대답을 궁리하는데 사장과 같이 일하는 사장 딸이 멀건히 나를 보고 있었다. "중년에다 24살, 나는 편의점에서도 신분증 요구하는 22살인데 내가 더 어려지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고 묻고 싶었다. -6월 10일

"조심해! 다치면 안 돼."

사장은 위험한 기구를 만질 때 서너 번씩 안전을 당부했다. 실수할 법한 순간마다 안전을 유의시켜서 다행스러웠고 나를 직원 이상으로 챙겨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딸과 나이가 비슷해 내가 딸내미 같다며 불편할 만큼 내 신상을 캐묻더니 진짜 나를 딸처럼 챙겨주는구나. 깜빡하고 커피머신을 맨손으로 잡다가 뜨거워서 놀랐는데 사장은 "조심해! 다치면 일을 못하잖아"라고 소리쳤다. 나는 안전의 이유가 노동력의 상실인 것에 놀랐다. 피고용인보다 일의 효용을 중시하는 천박함이, 그걸 숨기지도 않는 더한 천박함이 놀랍다. -6월 13일

"오자마자 하품하면 되나, 안 되나?"

오늘 출근엔 무기력하고 머리가 멍했다. 웃는 낯이 아니면 사장이 또 한소리 할 것 같아서 혼자 설거지 하며 표정을 정리했다. 기분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따로 표정을 고쳐지을 시공간이 필요하다. 오늘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앞치마를 매다 문득 하품을 했다. 사장은 얼러서 혼내듯 "오자마자 하품하면 되나? 안 되나?"라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꾸중듣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게에서 제일 비싼 커피 원두'보다 못한 노동자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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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고 싶었다... 알바의 권리를 ⓒ 알바몬


오자마자 기침한다고 혼날 수 있나? 오자마자 재채기한다고 혼날 수 있나? 인간의 생리현상들을 다 대입해봤는데 혼나는 이유는 추론이 안됐다. 이해하지 못한 잘못에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어서 말을 돌렸다. 하품은 왜 잘못인가?

커피에 대한 설명을 전임자에게 들으면서 같은 원두도 날마다 맛이 달라져서 매일 머신과 그라운더를 조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끼손톱만한 커피콩도 매일 상태가 바뀌는데 하물며 사람은. 사장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AA케냐 원두를 대하듯 피고용자를 대하기를 바란다. -6월 13일

사장은 우리가 취해야 하는 모든 행동을 아주 세심하게 알려준다. 아마도 우리가 원숭이처럼 멍청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아닌 척, 당신을 좋아하는 척하는 대사로 그들이 내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핸드 투 마우스>에서 사장의 언어를 분석한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사장은 나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의 설명하는 행위를 위해 설명을 한다. 고용된 나는 고용주의 말이 비합리적이고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아도 긍정하는 행위를 해야 했다. 혹은 입이라도 다물어야 했다. 그것이 임금과 고용이 발생·유지되는 순간이었다.

임금이 생성되는 원리와 사장의 권력은 알겠으나 사장이 나를 원숭이 말고 좀 더 사람으로 대하기를 바란다. 다치지 않아야하는 건 내가 존엄하기 때문이고, 화장실에서 문 닫고 볼일을 볼 수 있으며, 머리와 입술색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사장도 존중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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