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 정말 끝내주게 괴롭다"

[서평] <핸드 투 마우스>와 <청춘의 가격>이 알려주는 노동 현실

등록 2017.07.05 11:22수정 2017.07.0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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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 마치 기적의 경계선이라도 되는양 최저임금에 집착한다고도 생각한다. 최저임금보다 더 번다면 사는 게 쉬워지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다. 최저임금보다 더 벌고 있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인데 그들이 얼마를 버는지 아는가. 시간당 7달러 25센트 대신 시간당 7달러 35센트를 번다."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라는 문구가 표지에 박힌 <핸드 투 마우스>에 나오는 말이다. 2017년 한국에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는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문제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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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티라도 저, <핸드 투 마우스> ⓒ (주)출판사 클

이 책의 원제는 'Hand To Mouth'다. 근근이 벌어 먹고사는 하루살이 생활을 가리킨다. 저자인 린다 티라도는 두 아이를 키우며 파트타임 일자리 두 개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간다.

저자는 어느 날,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인터넷에서 본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준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7년 현재 기준으로 시간당 6470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 측은 최저임금 1만 원을 제시했다. 반면, 사용자 측은 6625원을 주장했다. 현재보다 155원 더 많은 액수다.

155원으로 생활의 질이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런데도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는 이들을 보며, '노오력'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생각을 한다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대부분이 아르바이트하는 10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상 다수의 성인은 최저임금에서 단지 몇 푼을 더 벌 뿐이라고, 린다 티라도는 말한다.


이는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낭만 있게 배낭여행이나 떠나려고 편의점이나 요식업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보다, 당장 눈앞의 생계가 절박해서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몰린 이들이 더 많다.

<핸드 투 마우스>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청춘의 가격>을 보면 한국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한국의 청년들은 ) 날로 치솟는 주거비와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 노동, 학업과 맞바꾼 돈을 집주인과 대학에 고스란히 갖다 바친다."(5쪽)

학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작 공부에는 소홀해진다. 성적이 떨어져 장학금을 받기는커녕 기숙사에도 못 들어가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한다. 이런 악순환을 거치며 간신히 졸업해 봤자 남는 건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더미요, 기다리는 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이다.

자신의 미래에 투자할 자원이 없으면, 죽어라 노력해도 제자리 걸음이다. 수박과 좁쌀이 경주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수박이 한 바퀴를 굴러 앞서갈 때, 좁쌀은 아무리 구르고 또 굴러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수백 바퀴를 굴러도 수박보다 뒤처진 좁쌀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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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저 <청춘의 가격>. ⓒ 사계절

<청춘의 가격>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노인 빈곤이 가장 심각한데, 청년들의 삶은 그보다 더 팍팍하다. 이미 바닥이라 눈을 낮춰 직장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는 거다. 애당초 선택권이 없다. 경제력이 취약한 청년층이 결국 빈곤한 노인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핸드 투 마우스>의 린다 티라도는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한 것은 정말 끝내주게 괴롭다. 사방에서 벽이 나에게 조여드는 악몽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 - 61쪽

미국에 살든, 한국에 살든 저소득 노동자의 삶은 녹록지 않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멋모르는 사람들의 편견과 어쭙잖은 충고다. 게으르다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인식, 고생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는 조언, 서비스직 노동자를 아래 사람으로 보고 모욕하는 행위, 최저임금을 받는 패스트푸드점 직원에게 백화점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일. 애사심이 없다고 직원을 탓하는 고용주.

이런 사례들을 살피다 보면, 우리가 타인의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 든다. 딱 6470원만큼만, 그에 걸맞은 일을 시켰다면 노동자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보통은, 최저임금보다 더 과중한 업무량이 폭탄처럼 던져진다. 고용주가 임금을 30분 단위로 계산하는 '임금 꺾기' 편법을 써서 실제로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마저도 임금을 체불하기까지 한다.

"너희가 최저임금을 받을 만하니까 받는 거야. 쉬운 일 하면서 배부른 소리는."

혹시 이렇게 말하는 고용주를 만나면, 린다 티라도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들은) 무지막지한 금액의 임금을 받으면서 그만큼 받을 만하니 받는 거라고 우리에게 정당화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 중략 - 우리를 공정하게 대하고, 적절한 임금을 주고 우리가 죽을지 살지에 손톱만큼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밝혀 달라. 그러면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 부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중.

린다 티라도는 경제 정책이 하루아침에 좋게 바뀔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청년들도 정규직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건 하나다. 자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존중해 달라는 거다. 또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해결점이 아니다. 바로 시작점이다. 노동 가치가 제대로 평가된 건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은 8월 5일 확정고시 20일 전인 오는 16일까지다.
덧붙이는 글 <핸드 투 마우스> 린다 티라도 저, 클 출판사 / <청춘의 가격>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사계절 출판사

핸드 투 마우스 -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클, 2017


#핸드투마우스 #린다티라도 #청춘의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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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며 글 쓰며 세상과 소통하는 영상번역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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