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에는 개, 닭, 무덤이 없는 섬이 있다

교사 김상현·약사 고채훈 씨 부부가 일군 '쑥섬' 고흥 애도

등록 2017.07.03 15:00수정 2017.07.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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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의 비밀 정원에서 본 외나로도 풍경. 산정의 화원에 하얀색과 진분홍색이 버무려진 백합이 활짝 피어 있다. 지난 6월 24일이다. ⓒ 이돈삼


전라도 '고흥'을 생각하면 '우주'가 먼저 떠오른다. 나로우주센터 덕분이다. 소록도와 나로도, 팔영산도 연상된다. 요즘 뜨는 섬도 있다. '쑥섬'이다. 쑥섬은 섬 자체가 정원이고, 꽃밭이다. 전라남도 지정 제1호 민간정원이다. 눈이 호강하고, 안구를 정화시킬 수 있는 섬이다.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올해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섬 33'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쑥섬은 고흥반도의 끝자락,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딸린 섬이다. 외나로도항 바로 앞에 보이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에 속한다. 외나로도항에서 배를 타면 5분도 안돼서 데려다주는, 섬 속의 섬이다.


'쑥섬' 애도에서 본 외나로도항 풍경. 쑥섬은 외나로도항에서 배를 타면 5분도 안돼 닿는 섬이다. 섬 외나로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 이돈삼


쑥섬 마을 풍경. 오래 된 집과 어우러진 빈 터에 철 따라 꽃이 만발한다. ⓒ 이돈삼


쑥섬의 면적은 32만6000㎡, 해안선의 길이가 3㎞ 남짓 된다. 주민등록상 인구는 30여 명이지만, 실제는 11가구 14명이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쑥이 지천이었다고 쑥섬(애도·艾島)으로 이름 붙었다.

섬에 개와 닭이 한 마리도 없다는 게 눈에 띈다. 무덤 하나도 볼 수 없다. 예부터 내려오는 당제와 관련된, 섬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섬이 대개 그렇지만, 쑥섬 사람들은 전통 풍습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했다. 당제를 지내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내려와 목욕재계를 했다.

개와 닭의 울음소리도 신성한 제사에 방해된다고 기르지 않았다. 지금도 개와 닭을 키우지 않는다. 마을 뒤 당산에도 제사 때 외에는 출입을 못하게 했다. 이렇게 지켜 온 당산이 지금은 소중한 난대림의 보고가 됐다. 마을에 무덤을 쓰지 않기로 한 것도 규약이었다. 지금도 섬에 무덤을 쓰지 않는다. 이런 약속이 없었다면 지금쯤 섬이 온통 무덤으로 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쑥섬 마을 풍경. 마을에는 오래 된 돌담이 줄지어 서 있다. 돌담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 이돈삼


쑥섬 마을의 돌담길. 암석 정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 이돈삼


쑥섬은 겉보기에 아주 작고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섬에 들어가 보면, 금세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을의 돌담길은 수십 년에서 100년 세월의 더께가 묻어있다. 암석정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마을 뒷산은 귀한 난대수종 수천 그루로 숲을 이루고 있다.

쑥섬에 있는 비밀의 정원은 압권이다. 이 섬의 산등성이(해발 80m) 널따란 평지가 천상의 화원이다. 발품을 팔아 산정까지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꽃밭이다. 섬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비밀 정원이다.


쑥섬의 산정에서 내려다 본 외나로도항 풍경. 그 사이로 배 한 척이 지나고 있다. ⓒ 이돈삼


쑥섬의 산정에 있는 천상의 화원. 섬 아래에서나 밖에서는 일절 보이지 않아 비밀정원으로 통한다. ⓒ 이돈삼


산등성이 꽃밭의 면적이 3300㎡ 남짓. 여기에서 300여 종의 꽃이 철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지금은 하얀색과 진분홍색이 버무려진 백합과 탐스러운 수국이 지천이다. 개패랭이꽃과 참나리꽃, 기생초, 페튜니아, 우단동자도 흐드러져 있다. 형형색색의 꽃 50여 종이 피어 있다.

그것도 드넓은 바다와 다도해를 배경으로 피어 있다. 오른편으로는 고흥 발포와 지죽도, 시산도, 거금도, 소록도가 펼쳐진다. 왼편으로는 여수 거문도와 백도, 손죽도, 초도가 보인다. 앞으로는 완도 평일도와 생일도,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가 아스라하다. 뒤로는 외나로도항과 외나로도가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정원의 이름도 환희의 언덕, 별정원, 태양정원, 달정원으로 예쁘다. 꽃을 감상하며 잠시 쉴만한 의자와 평상도 있다. 군데군데 적어놓은 좋은 글귀를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섬과 아주 잘 어울리는 소박한 정원이다.

쑥섬 숲길에서 만난 육박나무. 나무껍질이 얼룩무늬처럼 생겼다고 ‘해병대나무’라 불린다. ⓒ 이돈삼


쑥섬의 당할머니나무로 불리는 후박나무. 지난 2003년 불어닥친 태풍 ‘매미’한테 험한 꼴을 당하고도 의연하게 살고 있다. ⓒ 이돈삼


쑥섬 선착장에서 산정의 비밀정원까지 거리는 1㎞ 조금 넘는다. 싸목싸목 걸어서 산정의 꽃밭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1시간 30여 분 걸린다. 산정으로 오르는 길이 다소 오르막이지만, 숲에 귀한 나무들이 많다.

나무껍질이 얼룩무늬처럼 생겨 '해병대나무'라 불리는 육박나무는 남해안에서도 진귀한 나무다. 2003년 불어닥친 태풍 '매미'한테 험한 꼴을 당하고도 의연하게 살고 있는 후박나무도 있다. 당할머니나무로 통한다. 남부지방에만 자생하는 푸조나무와 구실잣밤나무도 많다.

비밀정원을 보고 신선대, 남자산포바위, 여자산포바위를 거쳐 성화 모양의 등대, 동백숲으로 돌아 내려와도 좋다. 2시간 남짓 걸린다. 산포바위는 오래 전 섬사람들이 놀던 바위다. 쑥섬에서는 경치 좋은 데서 놀거나 잠시 쉬는 것을 '산포'라 한다.

여자들이 명절이나 보름날 음식을 싸와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곳이 여자 산포바위다. 남자들이 놀던 곳은 남자 산포바위다. 두 바위의 거리가 200m 남짓 된다. 남녀가 따로 놀다가 중간에서 만나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던, 요즘 말로 썸을 탔던 곳이다. 신선대는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거나 거문고를 타며 놀던 자리다.

쑥섬지기 김상현 씨가 비밀정원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쑥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오후다. ⓒ 이돈삼


고채훈 씨가 손수레를 끌고 가다 뒤를 돌아보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오후 쑥섬에서다. ⓒ 이돈삼


쑥섬을 꽃밭으로 만들고 가꾼 사람이 김상현(49)·고채훈(46)씨 부부다. 김씨는 동일면 내나로도의 고흥백양중학교 국어 교사다. 고씨는 봉래면 외나로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다. 이들 부부가 16년 동안 조성했다.

김씨의 고향은 고흥 외나로도, 고씨의 고향은 구례군 토지면이다. 쑥섬은 김씨의 외가동네다. 이들 부부는 혼인 직후부터 전국의 수목원을 답사하며 식물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했다. 틈나는 대로 쑥섬의 땅을 조금씩 사들이고 꽃과 나무를 가꿨다. 고 씨는 약국 옆에 작은 하우스까지 지어놓고 모종을 키웠다.

정성들여 심고 가꾼 꽃이 태풍에 사라지고, 가뭄에 말라 죽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매 주말과 휴일, 방학 기간을 이용해 꽃을 가꿨다. 숲길도 정비하며 비밀정원을 만들어 왔다.

쑥섬의 비밀 정원은 지난해 6월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다도해를 배경으로 활짝 핀 꽃을 볼 수 있는 천상의 화원이 세상을 향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쑥섬의 비밀 정원이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봄이면 빨간 동백꽃이 양탄자처럼 깔리는 쑥섬의 동백숲길. 왼쪽으로 보이는 항구가 외나로도항이다. ⓒ 이돈삼


#쑥섬 #애도 #김상현 #고채훈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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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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