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점심식사 때도 승객들에게 미안하죠"

[인터뷰] 용산01번 마을버스 운전기사 박동환님

등록 2017.07.03 16:59수정 2017.07.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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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운수 01번 버스 내부 ⓒ 설혜영


마을버스 기사님의 도시락 가방


햇살이 좋은 날, 시내버스 옆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마을버스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니 앉을 자리는 버스 운전기사 바로 옆자리만 남아 있다.

마을버스 우측 앞바퀴의 만들어낸 실내의 돌출된 부위를 넘어서 오른쪽 첫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잔돈주머니, 도시락 가방 등 기사님의 업무공간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반찬 그릇의 내부가 보이는 투명한 도시락통을 오랜만에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다.

내밀한 소지품을 보고 난 후에 기사님의 모습을 살펴보게 되었다. 유난히 오르막길, 좁은 길, 개구리 주차가 일상화된 도로환경을 달리는 마을버스. 어르신들도 많아 승하차에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 만만치 않은 마을버스 운전을 하고 계시는 기사님과 말씀을 나눠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유난히 바쁜 시간이라 말을 걸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간단히 인사만 드린 후 다음에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며칠 후 마을버스에 올라탔고 다행히도 기사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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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환 마을버스 기사님 운행 모습 ⓒ 설혜영


인사를 건네고 잠시 후 기사님이 쓰고 계시던 마스크를 벗으셨다.


- 마을버스 운전하시면서 회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간격유지를 잘 해달라는 것을 가장 강조한다. 배차간격 12분을 맞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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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 주차된 차량사이를 어렵게 통과하는 마을버스 ⓒ 설혜영


- 버스 이용하시는 분들은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서 힘들어 한다.
"마을버스는 보통 12분이다. 증차를 해야 하는데 차 1대 증대하려면 서울시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서울시에서도 알고는 있지만 증차를 할 수 없다."

운전하시는 기사님을 옆에서 살펴보니 속력을 내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밟는데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차 운행 소음도 꽤 큰 편이다.

- 차 소음이 꽤 크다. 차가 오래됐나?
"올해 새 차로 바뀐다. 1대는 이미 바꿨고, 2대 교체 예정이다. 8~9월이면 새 차로 교체할 예정이다. 잘 나간다. 꽉 밟아야 한다."

- 혼자 올라오시기 어려우신 분들도 많은 것 같다.
"내려서 부축해줘야 되는 경우도 있다. 옆에서 같이 탈 때 건강한 분들이 부축해줄 때가 많다. 자리양보도 많다. 나이가 많아서 자신도 불편하면서도 어르신들이 오시면 비켜준다. 이 동네는 그런 게 잘 되어 있다."

- 승객들 중 기억에 남는 분은?
"매일 타는 분들이 타니까 거의 기억이 난다. 1년 정도 하면 어디서 타고 내리는지 거의 다 안다. 이 동네분들은 친절하다. 음료수 같은 것도 잘 챙겨준다. 인심이 좋은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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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승차 풍경 ⓒ 설혜영


동네 인심 얘기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기사님의 인심이 떠올랐다.

지난번 버스에 탔을 때 길이 막혀 배차 간격이 벌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와중에서도 승객 민원을 처리해주시던 모습이 기억이 났다. 골목길에서 한 어르신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마을버스를 붙잡고 하시는 말씀이 "방금 전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버스에 비료포대를 두고 내렸다"며 "앞차 기사님께 연락을 좀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길을 막히고 시간은 촉박한데 일일이 사정 들어주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으시고 응대하시고 바로 앞차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다 전해주셨다.

- 그 때 비료포대는 찾으셨나?
"자기 거 아니면 안 가져간다. 손 안 대고. 누가 안 가져가니까 걱정 마시라고 했고 바로 찾아 드렸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을버스를 타시는 분들

- 승객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
"어르신들이 한남동 성당을 다니시거나 한남동 복지관에 점심 드시러 많이 가신다. 취미생활 하게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보광동 주민센터 노래교실도 그렇고, 노인들의 일과가 거의 그렇게 이루어진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 이야기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 복지센터에 많이 가신다. 하루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어르신들도 많다. 어쩔 때는 4~5번도 타고 내리실 때가 있다. 집에 들어갔나 보다 하면 또 나오신다."

"그래서 저희가 이해를 해요. 답답해서 나오셨나 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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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사원앞을 지나는 마을버스 ⓒ 설혜영


- 승객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류장 지나가는 곳에서 어중간하게 뛰어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어쩔 수가 없다. 거리가 너무 멀고 그러면 기다릴 수가 없으니까 미안하다. 그래도 시간 간격상 어쩔 수 없이 출발해야 할 때가 있어서. 대부분은 이해해주시는데 뛰어올 때 그냥 갔다고 섭섭해 하시고 어쩌다가 이해 못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는 이해 좀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 마을버스 기사는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마을버스 하기 전 시내버스 운전을 했다. 정년 돼서 옮겼다."

- 급여 차이가 얼마나 되나?
"절반 정도 차이가 난다. 복리후생은 엄청 차이 난다. 일은 더 힘든데 급여는 더 작고 낮아진다. 명절 수당이나 그런 게 전혀 없다. 마을버스는 조합 같은 게 없다. 어디다 하소연 할 데가 없다."

- 휴게실이 없나? 식사는 어떻게 하시나?
"식당 같은데 갈 시간이 없다. 마을버스 특성상 자기가 간식 준비해가지고 먹을 수밖에 없다. 손님들 타고 있는데 함부로 먹기도 그렇다. 식사시간이 되면 김밥 같은 거 싸 와가지고 먹는 마을버스가 많다. 식사처리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마을버스는 차량 수도 적고 해서 어쩔 수가 없다. 식사시간이 제일 애로사항이 있지 않은가 싶다."

식사 처리?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말씀 중에 나온 식사처리라는 단어는 기사님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을버스 기사에게 점심시간은 휴식, 만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하루 종일 다리 한번 펴고 못하고 일한 그 자리에 앉아서 승객들에게 미안해 하며 '어떻게든 빨리 해치워야 하는' 처리 대상인 것이다.

이게 최선인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그래서 아련하게 관심이 갔던 마을버스 기사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생각이 깊어졌다. 열악한 상황을 방치한 채 개인의 선함과 인내심을 기대하는 건 도박과 같은 일이 아닐까?

지난 2014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서울시 마을버스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강석호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에서 발생한 마을버스 사고는 모두 252건이었다. 1년 전인 201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202건에서 약 25% 증가한 수치였다고 한다. 당시 강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마을버스 사고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 열악한 근무여건, 인건비가 낮은 초보·고령 기사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다.

마을버스 노선 조정은 서울시의 승인 사항이다. 요금 조정은 꿈도 못 꾼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시내버스와는 다른 민영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들의 처우문제는 회사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동네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고 있는 마을버스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문제다.
#마을버스 #점심시간 #서울시 #마을버스민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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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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