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대학교 '지방' 캠퍼스라는 낙인에 대하여

[지방 청년 이야기④] '서울캠퍼스 학생인 척 한다'는 세간의 시선... '자기검열' 심해지던 나날들

등록 2017.07.08 21:02수정 2017.07.0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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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방 청년 이야기'는 수도권 지역 이외에 살고 있는 '지방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여러분의 생생한 '사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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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교 캠퍼스의 전경 ⓒ 유투브 영상 캡처


"OO대 OO캠퍼스 다녀요."
"아, OO대?"
"아, OO대이긴 한데 캠퍼스가 달라요."


본교인 '척' 하려는 우리?

학교에 대해서 소개할 때면, 자세하게 부연을 할 때가 많았다. 서울 소재 대학교의 지역 캠퍼스에서 공부한 나는 학교를 소개할 때 캠퍼스까지 이야기했고, 그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역 캠퍼스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받는 시선은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본교인 척을 해보려는 것 아니냐'다. 글의 서두에 제시된 예시와 달리 캠퍼스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들이나 '본교'에 다니는 이들이 특히 그런 시선을 보냈다. '대나무숲'과 같은 곳에서는 본교생들이 분교생을 비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글을 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고려대는 세종 캠퍼스 총학생회의 '통합' 표현으로 대나무숲 페이지 내에서 안암-세종 캠퍼스 학생 간의 분쟁이 있었다. 후에 세종캠퍼스 총학생회는 이 안을 두고 단어를 잘못 표현한 것에 대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그러나 우리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는 소위 본교인 척하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본교와 분교를 딱 잘라 나누기를 원했다. 본교생인 척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흔했다. 그것은 사회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반응이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라는.

본교-분교로 엮여 있는 관계를 풀고 싶은 경우도 많았다. 서울에 있는 캠퍼스에서 안 좋은 사건이 터져도 '그런 일이라면 분캠에서 벌어진 거 아니냐'라는 시선을 대신 받는 일도 있었다. 우리의 등록금이 일부 본교 시설에 쓰인다는 의혹이 짙었을 때도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등록금 멀티냐'며, '차라리 아예 나눠서 운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질타의 대상인 분교생 그리고 지방대생

종종 유명인사가 같은 대학교라고 하면 분교는 질타의 대상이 됐다. 싫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분교라던데'라며 조롱했다. '고작 분교 출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누군가가 분교 출신인데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분교면서 본교 행세하려고 한다'는 비난도 흔했다. 그 사람은 애초에 자신의 대학 자체에 대해서 밝힌 적이 없는데도 그랬다. 캠퍼스 통합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 통합에 대해서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본교의 총장이 추진하는 것이어도 그랬다. 

문준용 씨 의혹 당시 충주캠퍼스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절친으로 밝힌 오민혁 씨는 직접 그 사실을 해명하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 오민혁 씨 페이스북


물론 'OO캠퍼스'를 다니다 보면 그러한 시선에는 익숙해지고 '업보려니' 하는 법을 익힌다. 모든 대학을 일렬로 줄 세워 그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당연한 이 나라에서 'OO캠퍼스'는 개중에서도 툭 튀어나온, '정 맞기 좋은' 무언가다. 그 법칙 속에서 'OO캠퍼스'는, 아니 전국의 '지방대'들은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다. '우린 안 될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 경험이 만들어 낸 패배감이자 자기검열이다.

'지방대생'의 자기검열

나는 학교에 다니며 이런저런 많은 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추천할 때마다 주변에서는 '난 지방대니까' '난 캠퍼스니까'라는 이야기를 하며, 시도 자체를 꺼렸다. 그것은 실제 실력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에서 심어준, 형체가 없는 공포감이었다. 그 공포감을 딛고 실제로 뛰어들면 그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건 인서울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자신을 낮추는 일이 더 흔했다.

대학교가 '지방'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는 여러 가지 있다. 놀 거리가 부족하다거나 문화생활 거리가 부족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방'에 있는 'OO캠퍼스'를 다니며 느낀 진짜 문제는 기반이 부족하고 시설이 부족한 게 아니다. '지방대'라는 단어가 좀먹는 그들의 자신감과 능력이다. 그들이 '지방대생'에만 머물게 하는 환경이다.

'지방대'는 벗어나야만 하는 곳이 되고,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곳을 뜰 궁리'가 우선이다. 그렇다 보니 교내 세미나나 학회, 동아리 활동은 위축된다. 안 그래도 대부분의 활동들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교내 활동조차 위축되니 학생들은 더욱더 '학교를 뜰 궁리'를 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금요일과 주말에는 대외활동과 알바 등을 위해 학생들이 서울로 가니 학교는 텅 비어버린다.

학교를 다니며 많은 학생들은 "우리 학교에는 괜찮은 사람이 없다"며 "역시 지잡대"라고 했지만, 사실은 대부분은 서울에 가 있고 '학교에 없을 뿐'이었다. 학교가 조용하니 사람들은 더욱 바깥으로 돈다. 학생들은 다시 '역시 지잡대'라며 확신한다. 활동을 하면서 인서울 대학교들을 수십 차례 방문했을 때 느낀 차이점은 '외부 자극'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지방대'에서 그 외부 자극은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었고,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플래카드와 포스터 하나가 붙어있나 안 붙어있나의 차이는 크고, 그것이 내가 느낀 실제 '서울-지방 대학'의 격차였다.

환경이 다르니 사람들은 뭉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니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사람들은 다시 '우리는 이래서 이 모양'이라고 이야기한다. 언론이 다루는 대학생은 인서울 4년제 대학생이고, 지방대생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쟤가 공부를 안 해서 겪는 건데 그게 왜 문제야?"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지방대생은 그 비판을 내재화하고 주변 환경을 개선하려고 하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대신 "내가 1등급을 받지 못한 게 문제지 뭐"라고 모든 원인을 자신으로 돌린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그 환경이 진짜 '지방대생'을 만든다.

OO캠퍼스를, 지방대를 떠나며

'징글징글'했던 이 학교를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느새 졸업식을 이야기하는 처지가 됐다. 학교 졸업식은 서울 캠퍼스에서 통합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은 그것을 비웃곤 했다. '다른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다. 교내 커뮤니티에서 본교 이야기가 올라올 때마다 결국 주류 의견은 '어차피 거긴 다른 학교'였다.

우리 돈은 가져가고, 안 좋은 소식은 우리에게 떠넘기게 되는 '다른 학교'. 그 학교의 존재 덕분에 원하지도 않은 누명까지 써야 하는 '다른 학교'. 통합 이야기가 나오면 '공짜로 무임승차하는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만드는 '다른 학교'.

나는 OO대학교랑 '다른', OO대학교 OO캠퍼스를 졸업할 예정이다. 동시에 지방대학교를 졸업할 예정이다. 그 대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나를 결정짓는 사회에서, 그 프레임을 안고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내가 졸업을 할 때가 돼서였다.

지금도 많은 '지방대' 학생들은, 'OO캠퍼스' 학생들은 사회가 만들어 준 프레임에 허덕이고, 자신을 검열하고, 패배감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그것은 '입시에 실패했다'는 사회의 시선이 준 '징벌'이었다.

때로는 캠퍼스, 지방대 생은 명문대를 간 학생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존재로 치부된다 ⓒ sbs 힐링캠프


징벌이 공정하지 않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이 말하듯 "고등학교 때 공부를 덜한 네가 잘못 아니냐"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이 물음에 변명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건 OO캠퍼스의 필수 과목이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그들의 노력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군가 "그러니까 지방대생이지"라며 이죽거릴 때 한 가지만이라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는 우리 사회의 생각처럼 단순히 수능점수가 낮아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수능점수라는 등급으로 평가받고 수능점수에 따라 살도록 강요되는 환경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벌 안 보고 뽑아도 똑같더라"는 말은 '애초에 환경이 다르다는 점이 작용한다'는 생각을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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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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