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너가 병들었어"
돌연 과거로 돌아간 치매 어머니

치매환자에게 사랑 담긴 스킨십과 친밀한 대화는 좋은 명약

등록 2017.07.09 16:33수정 2017.07.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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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서재에 들어오셨다.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갑자기 말씀하신다.


"우리 아들..."

나를 순간적으로 일곱 살 아들처럼 대하신다. 나는 웃었다. 옛 생각도 스쳐 가고 그냥 그 상황을 풋풋한 생각으로 넘겨 버렸다. 어머니는 조금 먼 길을 가야 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차 조심, 물 조심, 사람 조심하라는 당부를 몇 번씩 하시곤 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셨다. 어린 시절의 여러 상황을 기억하시는 것 같다. 나는 어머니에게 상황 설명을 해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우신다.

"엉엉엉. 아들 먹을 것 줘야 하는데... 미안해."
"어머니, 울지 마세요. 괜찮아요."


학창시절 공부하고 있는 내게 간식을 챙겨주셨던 기억을 떠올리신 모양이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가볍게 포옹해 드렸다. 어머니가 내 품에 안겨 우신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공부하고 있는 내 옆에서 직접 깎아주시곤 했었다.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신 것은 아마 내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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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브이를 표시하는 어머니 ⓒ 나관호


발을 씻겨드렸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우리 집 생활형편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지, 생활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험악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지 막막해하셨다. 어머니는 여린 마음씨에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손해 보고, 혼자서 마음속에서 풀고, 괜한 일에 염려가 많으신 분이다. 지난 시간의 그런 성품이, 오늘의 치매를 만들어낸 원인일 수도 있다.

나는 어머니를 다시 꼭 안고 얼굴을 만져드리며 눈물을 닦아드렸다.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잠시 집 안이 숙연해졌다. 어머니에게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의도적으로 대화를 많이 했다. 치매 환자들에게 친밀한 대화는 좋은 명약이다.

"어머니! 오늘, 참 좋은 날이에요."
"엉엉엉. 나 때문에 병들었어..."
"어머니, 울지 마세요. 사랑해요, 어머니."
"아들! 엉엉엉."


그제야 나는 어머니의 서러운 눈물의 의미를 명확히 알았다. 잘 못 먹고, 입시 공부한다고 무리를 했는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에 걸려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었다. 그때가 아버지 돌아가신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당시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이미 자식 넷을 잃었고 이제 다 키워 놓은 17살짜리 아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됐으니 어머니 마음에는 우주만 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계셨다. 큰 충격의 기억은 치매 환자들에게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마 어머니의 마음의 기억일 것이다.

어머니의 발을 씻겨 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옛날 아버지가 하셨던 섬김이다. 미지근한 물에 어머니의 발을 담겨드리고, 발을 씻겨 드렸다. 어머니가 좋아하신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치매 어르신들에게 발을 씻겨 드리는 것은 좋은 치매 방어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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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앉아 계신 어머니 ⓒ 나관호


스킨십과 친밀한 대화

발을 씻겨드리고 잠시 쉬시면 좋을 것 같아서 어머니를 침대로 모셨다. 어머니를 눕게 해드리고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이 가슴을 토닥이며 잠을 청하시도록 해드렸다. 금세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이 드신다.

서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옛날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한 컷 한 컷 지나간다. 그런데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 방에서 나오셨다.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없다.

"어머니! 행복하고 좋은 날입니다."
"좋긴 뭐가 좋아!"
"안 좋으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들 먹을 것 챙겨줘야지."
"여기 많이 있어요. 그리고 아까 주셔서 먹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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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드시고 빨래하시는 어머니 모습 ⓒ 나관호


나는 태연하게 연기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어머니 마음을 풀어드린 후 퍼즐을 맞추시게 했다. 어머니는 금방 웃으신다. 간식으로 우유와 초코파이를 드렸더니 나 먹으라며 반을 자르신다. 어머니는 나눠 먹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한입만 먹었다. 어머니는 점점 더 어려지신다. 어머니의 얼굴을 만져드리고,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신다. 손에도 힘이 들어가 내 손을 꼭 잡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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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치유방법 '퍼즐'을 하시는 어머니 ⓒ 나관호


치매 환자들에게 사랑이 담긴 스킨십과 친밀한 대화는 좋은 명약이다. 마음과 생각의 영역을 운동하고 훈련하시는 것이다. 어머니는 손을 잡아 드리고, 발을 씻겨드리면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그립다. 가볍게 포옹하고, 대화하고, 얼굴을 만져 드리며 사랑 고백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얼굴 만져 드리고, 안아드리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다. 역사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대중문화연구를 강의하고 있으며, '생각과 말'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로 기업문화를 밝게 만들고 있다.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어머니 #스킨십괴 대화 #나관호 #퍼즐 치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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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과속운전은 살인무기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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