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 교수는 왜 '만들어진' 간첩이 되었나

[서평] 김학민 지음 <만들어진 간첩>

등록 2017.07.07 09:29수정 2017.07.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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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공교육으로 철저하게 세뇌된 세대다. 반공포스터 그리기와 반공 표어 짓기는 학교의 연례 행사였다.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과 고무줄을 하며 놀았다.

학교에서는 '간첩을 알아내는 법'을 수시로 알려주고, 삐라를 주우면 학교로 가져오거나 경찰서에 가져다주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희생자가 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2017년 6월, 남산 중앙정보부(현 남산 유스호스텔) 앞에서 고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의 진혼제가 열렸다. 장순향 교수가 양쪽으로 갈라낸 긴 무명천을 하나로 묶어 잡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중앙정보부장 관저였던 문학의 집(당시 이후락 관저)까지 걸어갔다. 고문치사 후 간첩으로 둔갑된 법학자의 죽음을 기억하며 헌법 전문이 새겨진 철판이 붙은 길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조작 간첩 역사는 중앙정보부의 변천사와 맥을 같이 한다. 중앙정보부는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의 형태다. 하지만 유신헌법 이후 박정희 정권의 친위대 노릇을 하면서 '정보부장, 지부장, 수사관은 범죄수사권을 갖고 수사에 있어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정보부 설치 법령 6조 2항에 따라 초헌법적 권한을 갖게 됐다.

남산 중앙정보부는 조선 통감이던 테라우치 마사타케의 관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테라우치는 1910년 8월 22일 남산 통감부 관저에서 이완용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며 36년간 조선을 수탈하는 문을 열게 된다. 이후 일본군 앞잡이인 조선 순사들과 일본군은 수많은 민족 지사를 밀고하고 고문하고 죽이고 수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60여 년 후 바로 그 자리에 중앙정보부(현 유스호스텔)와 부장관저(현 문학의 집)가 들어섰다. 이후 언론과 사법 불법사찰, 장권에 비판적인 학생, 학자, 종교인, 재야인사를 불법 감금 고문해 간첩 조작의 희생양을 삼는 중심 장소가 됐다.

휴전선으로 남북이 분단된 후 휴전 이전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이들이, 때로 간첩으로 둔갑되는 '만들어진 간첩'의 역사가 시작된다. 남북한의 정치적 사회적 체제가 안정되어 더이상 남파 간첩이 나 북파 간첩이 먹히지 않자 다른 형태의 간첩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독재 정치에 정치적 위기가 몰려 몰 때마다 대형 간첩단 사건이 조작되었다. 일례로 민청학련 사건 등 학내 간첩 조작 사건은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 노동자들의 시위를 원천봉쇄 하려는 목적이었다.

동백림(동베를린 방문) 사건 등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이 조작된 것은 서독과 동독으로 갈라져있던 독일의 상황 때문이다. 당시는 동베를린만 방문해도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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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간첩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그리고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 ⓒ 서해문집

<만들어진 간첩>(서해문집)은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과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을 밝힌 기록이다. 통사적인 형태로 최종길 교수의 죽음의 배경이 된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에 직접, 간접으로 연결된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짚어나간다.

서울 법대 최종길 교수가 간첩으로 조작된 것은 1973년이다. 최종길 교수와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은 어떻게 엮이게 됐을까. 책의 내용을 따라가 보면, 1973년 서울대에서 시위가 일어났는데, 정보부는 시위를 잠재우려 평소 비판적이던 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을 불러 고문한다.

고문 중 최종길 교수가 사망하자 당시 조작 중이던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에 그를 끼워 넣었다. 최종길 교수의 서독 유학 경력, 호기심에 한번 갔던 동베를린, 그의 중학교 동창과 선배가 독일과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것이 그를 간첩으로 만든 씨앗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길 교수는 어떻게 간첩으로 만들어졌을까. 증거 없이 사람을 불러들인 후 자신들이 짜놓은 얼거리에 맞추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을 쓴다고 한다.

'먼저 백지를 앞에 놓고 '진술서'라고 쓴 후 원적, 본적, 주소, 직업, 성명, 생년월일 등 인적 사항과 전과 관계, 재산 관계, 학력과 경력, 가족관계 등을 쓰게 합니다. 그리고 서독 유학 동기, 유학 기간 중에 접촉한 사람과 동독을 여행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하나하나 제목을 줘가며 쓰게 합니다. 이렇게 같은 진술서를 밤새워 반복해서 쓰게 하면, 조금씩 내용이 달라지는 부분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달라진 부분을 별도로 기록해 두었다가 한 시점을 택해 '왜 이 부분에 대한 진술은 이렇게 달라지는가? 이 차이가 무엇이냐?'고 파고드는 것입니다.' - 19쪽.

진술서를 받은 후 원하는 답을 받아내기 위해 잠을 재우지 않고, 모욕을 주고 구타하고 물고문 전기고문 등 고문을 가한다는 것이다. 최종길 교수는 저런 과정에서 고문으로 죽음을 맞고 투신 자살로 조작 당한다. 당황한 중앙정보부가 사망 닷새 후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에 최종길 교수를 간첩으로 끼워 언론에 발표한 것. 유럽거점 간첩 최종길 교수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7층서 투신자살했다는 각본이었다.

지인들 증언에 따르면 최종길 교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편이었다. 그의 전공인 민법은 자본가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이라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다. 그를 고문했던 이들은 고문으로도 간첩이라는 증거나 자백을 단 한 줄도 받아내지 못했다. 그들도 최종길 교수를 간첩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그를 간첩혐의로 조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더 비극적인 것은 당시 최종길 교수의 막내 동생 최종선씨가 중앙정보부 감찰실에 근무 중이었다는 것이다. 동생은 형을 직접 중앙정보부로 안내한다. 동생이 데려간 지 3일 후 형은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동생 최종선은 조작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거들을 낱낱이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감시를 피하기 위해 세브란스 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해 형 최종길을 고문한 이들을 비롯 당시 중앙정보부 실체를 낱낱이 기록한 '양심수기'를 기록한다. 1년 뒤 그 수기를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의 함세웅 신부에게 전달한다.

사건 15년이 지난 후 최종선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중앙정보부의 거짓 발표를 뒤집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한다. 싸움은 '양심 수기' 전격 공개로 시작되었다.

'수기의 전격 공개에는 여론을 들끓게 만들어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이 이 사건 조사를 유야무야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수기'가 <평화신문> 10월 9일자와 16일자에 연이어 전문 게재되자 엄청난 반향이 몰려왔다. 중앙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들이 교계에서 발행하는 이 작은 주간지를 인용해 후속 보도를 이어갔고, 국민들은 소문으로만 들어 왔던 민주 인사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고문, 그리고 간첩 사건의 조작과 은폐가 백일하에 드러난 데 대해 충격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다가 그 희생자가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서울법대 교수였다는 점, 중앙정보부의 직원인 동생이 그를 정보부로 데려갔다는 점, 동생이 근무하던 공간 내에서 형이 고문치사 당했다는 점, 그리하여 동생이 정신병원에 들어가 그 실상을 낱낱이 '수기'로 기록해 놓았다는 점 등, 거대 정보 조직 내에서 한 개인이 조직의 부조리와 힘겹게 싸우는 할리우드 첩보 영화를 연상케 하는 광경도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게 했다.' - 393쪽.

책에는 수많은 가해자와 피해자, 제보자, 피해자 가족과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운 이들의 시간과 고통, 아픔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가해자들이 진정한 사죄와 반성 양심 고백 대신, 침묵과 변명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들어진 간첩의 가족과 주변인들은 수십 년 간 고통과 침묵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간첩 가족이라는 누명은 가족들과 친척 지인을 보이지 않는 옥에 가두고 정신적인 고문을 가했다. 삶은 피폐해지고 영혼은 상처로 갈기갈기 찢겼다.

그들은 혼자 울어야 했고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조작 간첩이었음이 드러났다. 비록 누명이 벗겨졌지만 죽은 자는 증언할 수 없고 가해자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다.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한 남은 가족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을 것이고 가슴으로 우는 울음도 그칠 수 없을 것이다.

'199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5년이 지나서야 서울대학교 교정 안에서 추모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서울대에서 아버님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가족끼리만 모임 자리에서 중앙정보부 직원들의 감시 하에서 치러졌던 25년 전의 장례식을 생각하며 나는 준비도 되지 않은 인사말씀을 올리는 도중, 계속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나의 눈물이 다 말라버린 줄만 알았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어머니와 동생 희정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 우리는 모두가 혼자서 울어 왔다.' - 아들 최광준 471쪽.
덧붙이는 글 <만들어진 간첩>/김학민 지음/ 서해문집/ 19,500원

만들어진 간첩 -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그리고 최종길 교수 죽음의 진실

김학민 지음,
서해문집, 2017


#만들어ㅗ진 간첩 #최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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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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