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맞아 죽은 열아홉 여성... 10년 지나도 변한 게 없다

끊이지 않는 결혼이주여성 사망 사건, 철저하게 고립된 피해자들

등록 2017.07.10 21:18수정 2017.07.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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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러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만 놓고 보면 크게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퇴행하는 실정이다. ⓒ pixabay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만 놓고 보면 크게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퇴행하는 실정이다.

2007년 6월, 한 결혼이주여성이 충남 천안에서 입국 한 달 만에 남편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 열여덟개가 부러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의 베트남 이주여성 후안마이였다.

베트남에서 결혼을 결심했을 때, 후안마이는 결혼중개업체가 보여 준 서류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남편이 번듯한 집과 직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사람은 변변한 직장도 없는 일용직이었다. 신혼집은 지하 월세방에 살림도구 하나 멀쩡한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걸 입국 후에 알았다.

그래도 후안마이는 남편과 행복하기를 소망했다. 반면, 남편이라는 사람은 후안마이가 한국어 교육을 위해 외출하는 것마저 금지했다. 후안마이는 남편의 구타로 죽기 전, 지하 월세방에 홀려 갇혀 지내며 말도 통하지 않는 남편에게 베트남어로 편지를 썼다.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 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합니다.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맘에 들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았을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뿐이었죠. 하지만 베트남에 돌아가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술에 취해 짐승처럼 어린 아내를 때렸다. 그는 아내의 갈비뼈를 열여덟 개나 부러뜨려 죽도록 방치하고 도망쳤다. 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에게 판사는 12년 형을 선고했다. 그때 판사는 판결문을 읽으며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잔인함을 참회했다.

"자괴감을 느낀다. 이 일은 타국 여성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대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일이다. 21세기 경제대국의 허울 속에 갇힌 우리는 열아홉 살 후안 마이의 작은 소망도 지켜줄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타국 여성을 물건 수입하듯 하고, 배우자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알고자 하지도 않은 채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배우자를 선택했다.… 후안마이의 편지는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10년 전, 대한민국은 열아홉 나이를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 결혼이주여성이 남긴 편지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결혼이주여성을 옥죄는 정책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 정책은 결혼이주민 일방에게만 사회통합과 정착을 요구했다.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국적과 연계해서 의무화했다. 결혼이주민,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정착지원서비스는 한국어 교육을 강제하는 것으로 포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결혼이주민의 애로사항을 한국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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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7월,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서 조아니따 필리핀 이주여성이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당사자들이 나선 이유

열아홉 결혼이주여성이 남긴 편지에 많은 이들이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복사판 같은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세상은 결혼이주여성의 죽음에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결혼이주여성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0년 7월 20일,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을 추모하는 기자회견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렸다. 당시 스무 살이던 탓티황옥은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을 숨기고 결혼한 남편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 이 사건이 터지고 온 국민이 공분을 일으키자, 정부는 범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국제결혼 건전화방안 마련을 위해 국제결혼 중개 시 당사자 간 건강 상태와 범죄 경력 여부 등과 같은 신상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했다. 더불어 혼인비자 발급 업무를 강화하고 불법 국제결혼중개 근절 방안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탓티황옥 사망 사건은 폭력이 일상이고 살해까지 당하는 현실에 대해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발언하게 만들었다. 추모제에 참석한 결혼이주여성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가정폭력이 일상인 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나도 그 베트남 이주여성일 수 있습니다"라고 울부짖었다.

이처럼 이주여성들은 탓티황옥 사건 이후, 공개적인 자리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리라"고 다짐하며 한국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주여성들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빌려 끊임없이 일어나는 처참한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변화를 요구했다. 더불어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한국 사회가 함께 추모하길 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주여성들은 매해 살해당하고 있고, 이주여성 추모제는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주여성의 울부짖음은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방송 카메라가 있는 자리에까지 나와서 그런 말을 하겠느냐'는 소리는 빈말이 아니었다. 첫 추모제가 열린 지 7년이나 지났지만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추모 기자회견에 섰던 그녀, 죽음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6월 2일, 탓티황옥을 추모하며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씨(31)가 시아버지 김아무개씨(83)에게 살해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파트에서 며느리 A씨의 목과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한다. A씨는 남편 김아무개씨(48)와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두고 있는데, 사고 당시에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며느리와 아들이 용돈을 주지 않고 구박했다며 '우발적인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후, 경찰과 언론은 A씨가 시어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내용과 함께 "아들 부부가 용돈을 주지 않았고, 자주 구박했다"는 김씨의 설명을 전했다. 검찰 역시 김씨가 A씨와 문화, 언어적인 차이로 상당 기간 갈등의 골을 키워온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이나 언론은 사망한 A씨가 겪었을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시아버지를 두둔하고, 죽음의 원인을 마치 A씨에게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비난하는 형국이다. 7년 전에 "나도 그 베트남 이주여성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던 자리에 왜 A씨가 있었는지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결국 죽은 사람만 억울하고 바보가 되는 셈이다. 그런 형편을 알고 있기에 이주여성들은 7년 전에 이미 "한국 땅에서 또 다른 탓티황옥이 생기지 않도록 남아 있는 우리가 지켜내겠다"고 울부짖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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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7월,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한국에 있는 이주여성들이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을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27일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 '결혼이민자·귀화자의 사회적 관계 맺음이 12년에 비해 약화됐다. 이들의 30%가 사회적 관계 맺음에 취약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결혼이민자·귀화자의 30%가 도움이나 의논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2012년과 비교해보면, 이와 같은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응답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이주민의 사회적 소외가 심화되는 추세다.

심각한 것은 한국 거주기간이 늘어나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좋아지고 있음에도 한국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이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40.7%로 2012년(41.3%) 대비 낮아지긴 했으나 유의미한 변화는 아니다. 직장과 공공기관, 학교 보육시설 등에서 차별은 일상적이었다.

차별을 경험한 결혼이주민들의 75.3%는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결혼이주민의 사회적 소외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설정해야 하며, 차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결혼이주여성이 남성보다 차별을 경험한 적이 많았다는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결혼이민자·귀화자 남녀 성비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통계 월보에 따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올해 4월말 기준으로 15만3672명의 결혼이민자 중 남성은 2만4376명(15.9%), 여성은 12만9296명(84.1%)을 차지하고 있다. 즉, 결혼이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사회적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 소외가 점차 강화되는 상황에서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주여성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호소를 그냥 흘러버려선 안 된다.

한국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를 역임한 한국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아직까지 이주여성 폭력과 살해 사건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 조사가 없었다면서 "한국 사회의 무관심이 희생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행위는 개도국에 대한 한국인의 과도한 우월의식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시선과 성차별적인 인식이 원인"이라며 "인식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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